“요즘 연예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매체가 뭘까?” 주저 없이 ‘인터넷’이라 대답할 것이다. 요즘 KBS2 <개그콘서트>에 ‘왕비호’라는 이름으로 출연 중인 개그맨 윤형빈은 “10만 안티 팬을 모으러 왔소이다”라며, 아예 대놓고 미움을 받기 위한 몸부림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왕비호의 개그는 인기 많은 젊은 연예인에게 말실수했다가 실제로 수많은 팬과 네티즌들의 공격을 받는 일들에서 비롯됐다. 6월 7일 열린 ‘2008 드림 콘서트’에서 동방신기, SS501, 슈퍼주니어의 팬클럽이 소녀시대가 등장하자 야광봉을 끄고 침묵해 팬들 간의 싸움으로 번진 ‘소녀시대 침묵사건’은 한동안 인터넷 뉴스의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다. 문제의 중심에 선 ‘소녀시대’는 일주일 뒤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를 했지만, 팬들의 공방은 멈추지 않았다. 이에 앞서, 연예계 독설가로 정평이 난 가수 신해철은 6월 10일 자신이 진행을 맡고 있는 SBS 러브FM <고스트 스테이션>에서 “‘소녀시대 침묵사건’은 저질 3류 나부랭이들의 만행”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끝으로, 신해철은 이날 방송의 엔딩 곡을 소녀시대의 음악으로 장식하며 “방송에 대해 불만이 있는 사람은 나한테 마음대로 욕해라. 욕이 접수되면 1년 365일 소녀시대 노래를 틀겠다. 방송제목도 ‘소녀 스테이션’으로 바꾸겠다”며 자신에게 악플을 퍼부을 예정인 네티즌들에게 ‘선전포고’했다. ■ 입 열기 전에 정선희를 떠올려라 개그우먼 정선희는 최근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말실수(?)로 네티즌들의 미움을 단단히 샀다. 데뷔 이래 재치 있는 입담으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온 그녀는 하루아침에 ‘네티즌의 적’으로 돌변했다. 요즘 가장 민감한 사안인 ‘촛불집회’를 건드린 정선희의 발언에 청취자 및 네티즌들이 격노한 것이다. 정선희는 대다수의 여론을 거스르면 네티즌의 무시무시한 공격을 맛보게 된다는 본보기가 됐다. ‘정선희 발언 논란’은 김민선, 이동욱, 김희철 등 ‘쇠고기 파동’과 관련해 대다수 네티즌과 의견을 같이한 연예인들에게 “소신 발언 용감하다. 멋있다”라며 네티즌들이 절대적으로 칭송하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정선희는 사건 발생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한 영화 포털사이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DJ는?”이라는 이색 설문에 35%의 높은 지지를 받아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하지만, 5월 22일 자신이 진행하는 MBC 라디오 FM4U ‘정오의 희망곡, 정선희입니다’에서 정선희는 뚝섬유원지에서 자전거를 도난당한 청취자의 사연을 읽은 후 공감하며 “인사동에 있는 석상 같은 걸 밤에 들고 가는 사람이 있다. 육교의 쇠붙이나 맨홀 뚜껑 등을 갖고 가는 사람도 있는데 위험한 일이다”라며 꺼낸 말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 그는 이어, “아무리 광우병에 애국심을 불태우면서 촛불집회에 참석하더라도 환경오염시키고 맨홀 뚜껑을 가져가는 사소한 일들이 사실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 범죄다. 큰 일 있으면 흥분하고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어떻게 단정하겠는가? 작은 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큰 것만 생각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방송을 들은 청취자들은 “정선희가 촛불집회 시위자들을 싸잡아 비하했다”고 비난의 글을 올렸고, 이 글은 순식간에 퍼져 전국의 수많은 네티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해당 방송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정선희 실망이다” “공식사과하라”는 등 비난의 글과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라며 그녀를 옹호하는 네티즌들의 댓글 공방이 이어졌다. 시청자 게시판에만 만족하지 못한 네티즌들은 급기야 미니홈피가 없는 정선희 대신 남편인 안재환의 미니홈피를 찾아 방명록에 항의하는 글을 남겼고, 안재환은 같은 날 오후 미니홈피 메인에 “죄송합니다. 올려주시는 모든 말씀들 겸허히 받아들이고 가슴 깊이 반성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사과문을 남겼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선희는 다음날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통해 공식적으로 사과의 인사말을 전했다. 보이는 라디오로 진행된 이날 방송에서 마이크 뒤로 몸을 감춘 정선희는 화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등 불편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본의 아니게 시기적절치 못한 오해의 여지가 있는 표현들로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친 점 죄송하다. 때로는 내 진심이나 의도가 다르게 전달돼 마음고생할 때가 있다. 어제는 하루가 참 길었다. 서면보다는 생방송을 통해 직접 말씀 드리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늦은 사과에 대해 이해해주기 바란다”며 자신의 말실수가 빚은 오해에 대해 거듭 사과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정선희는 네티즌들의 비난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의 업무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는 네티즌들도 있었다. 일부 네티즌들은 해당 방송의 협찬사에 협찬 중단을 요구했고, 실제로 ‘락앤락’ ‘한국야쿠르트’(팔도비빔면) 등 일부 협찬사들이 이 요구를 수렴하면서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들 기업들은 “협찬 중단 요구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고객과 네티즌들의 의견을 심사숙고해 내린 결정”이라며 협찬 중단에 대한 입장을 나타냈다. 정선희가 모델로 출연하고 있는 삼성화재 애니카 광고에도 방송중단 요구가 이어지자, 삼성화재 측 또한 “네티즌들을 비롯한 고객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 중이다. 향후 대책에 대해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곤란한 입장을 밝혔다. 이에 앞서, 현대홈쇼핑은 5월 28일 정선희가 판매하는 화장품 ‘세네린’의 31일자 방송분을 보류하기도 했다. 이처럼 방송활동에 큰 타격을 입은 정선희는 6월 6일 라디오 방송에서 “정말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저의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 믿었는데, 오히려 여러분들의 분노를 자아낸 것 같아 죄송하다. 진심이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눈물로 사죄했다. 그는 이어, “어느새 제가 여러분의 반대쪽에 서서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며 그 동안의 마음고생에 대해 고백하기도 했다. 정선희는 두 번에 걸친 공식사과 이후에도 네티즌들의 비난이 줄어들지 않자, 자신이 진행하는 몇 개의 TV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서 자진 하차하며 스스로 손해를 감내해야 했다. ■ 악플이 사람 잡는다 ‘얼굴 없는 테러’ 악플(惡+reply, 다른 사람이 올린 글에 대하여 비방하거나 험담하는 내용을 담아서 올린 댓글)의 대상이 된 사람은 심각한 우울증을 비롯, 자살까지 감행할 정도로 심한 고통을 겪는다. 지난해 4월 모 방송국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3개월 만에 몸무게를 87㎏에서 47㎏으로 감량, ‘성공한 다이어트 미녀’로 소개된 이모 양의 자살 원인이 ‘악플’이란 사실은 많은 이에게 충격을 줬다. 유서에서 이 양은 “그 동안 괴롭혀서 미안해요. 심적으로 고통을 줘 미안해요”라는 글을 남겼다. 이 양은 이 프로그램에서 국내 인기 가수 S그룹과 다정하게 사진을 찍은 이후, S그룹의 몇몇 팬들로부터 심한 악플에 시달려 주위 친구들에게 고통을 호소한 사실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줬다. 같은 해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유니도 악플 때문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악플러들은 유니의 사망 후에도 활개를 쳐 ‘유니를 두 번 죽이는 몹쓸 행동’으로 비난의 대상이 됐다. 지난 3월 안양 초등생 실종사건의 이혜진(11) 양과 우예슬(9) 양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하지만, 인터넷에선 이들의 죽음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얼마나 자식 간수를 못했으면…그런 일 당해도 싸다” “못생긴 것들은 다 죽어야 된다” 등 피해자와 가족들을 비난하는 악플이 판을 쳤다. 일부 몰지각한 네티즌들의 악플에, 일각에선 ‘악플러’를 처단하자는 서명운동이 일기도 했다. 지난 3월 ‘한반도 대운하’라는 노래를 발표한 후 악플에 극심한 고통을 겪은 가수 이은하는 한 언론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악플이 무섭다는 말은 익히 들어왔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며, “어떤 가수가 악플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면서 괴로운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그는 “XX 같은 X” “머리가 비었다” “운하가 통과하는 지역에 땅 사뒀냐” “고작 연예인일 뿐인데 이런 분란까지 만드느냐” 등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악플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주위로부터 보디가드를 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이은하는 “갑작스럽게 촬영 연기가 통보되는 등 활동 재개와 함께 밀려들던 방송 스케줄도 하루아침에 올스톱됐다”며 울먹거렸다. 그는 “내 신념을 밝혔다 해서 그것이 도덕적으로 지탄받고 몰매까지 맞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며 자신을 항변했다. ‘쇠고기 파동’으로 네티즌의 쓴맛을 본 이명박 대통령은 6월 17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장관회의’ 연설에서 “인터넷의 힘은 신뢰가 담보되지 않으면 약이 아닌 독이 될 수도 있다. 인터넷의 힘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때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를 우리가 경험하고 있다”며 인터넷의 부정적인 면을 지적했다. 김성철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는 “TV나 방송, 신문에 실명으로 기사가 나가듯이 네티즌도 자기 글에 책임을 져야 한다. 단계적으로 모든 인터넷 사이트를 실명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