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언제쯤 침묵을 깨고 정치권에 전면적으로 나타나게 될까? 미국산 수입 쇠고기 파동으로 국정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과 달리, 박 전 대표는 지난 6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의 한 음식점에서 친박연대, 친박 무소속연대 의원들과 회동을 가진 후 복당 문제와 관련해 “이 문제는 내게 모든 것을 일임해 결정한 뒤 행동통일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히면서 “앞으로 (친박) 의원들과 논의를 한 뒤 결정하겠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이후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과연 박 전 대표가 마냥 침묵만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측근을 통해 할 말은 하고 견제할 것은 견제하는 등 여당 내 야당 역할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물론 ‘박근혜’라는 이름 석 자에 뒤따르는 적지 않은 시너지 효과를 감안한다면 미국산 수입 쇠고기 파동으로 인해 국정난맥상을 초래한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서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6월 12일 한승수 내각의 사의 표명 이후 본인의 적극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총리설’이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내부에서 강력하게 흘러나왔다. 한나라당 내 계파를 막론하고 많은 의원들이 지금의 난국을 헤쳐나갈 가장 적임자라며 쌍수를 들어 환영의사를 피력하기도 했다. ■MB와 뿌리 깊은 불신, ‘총리설’ 물 건너가 심지어 친박 성향의 일부 의원들도 “천막당사를 세워 당을 일으킨 ‘철의 여인’ 박 전 대표가 이제 ‘계파 수장’이미지를 벗고 특유의 관리 능력과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해 정국을 수습할 지도자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두 손 들어 환영하는 이들도 이 대통령이 ‘진정성’을 갖고 총리직을 제안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표에게 총리직을 맡기려면 정치적 위상에 걸맞는 권한을 넘겨주어야 하는데, 과연 권력 독점력이 강한 이 대통령이 ‘제2인자’의 등극을 감수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또한,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의 뿌리 깊은 불신도 문제여서, 국정 파트너인 대통령과 총리가 사사건건 마찰을 빚어 불협화음이 일어난다면 또 다른 국정난맥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청와대 측이나 박 전 대표 측은 서로 간에 애드벌룬만 띄워본 채 “제의한 적이 없다”는 말 한마디로 또 다시 서로간의 불신만 확인한 채 물 건너간 것이다. 하지만 오는 7·3 전당대회에서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일 것으로 전망된다. 6월 26일 한나라당 당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합 중인 박희태 전 국회 부의장과 정몽준 최고위원이 박 전 대표를 향해 집중적인 ‘구애작전’을 했음에도 묵묵부답이다. 두 후보는 이날 나란히 박 전 대표의 아성인 대구를 찾아 경북도당 신임 당직자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 경북지역 당직자 및 한나라당 대의원 등과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박 전 부의장은 “2002년 대선 참패로 와해의 위기를 맞았던 한나라당을 집권 여당으로 탈바꿈시킨 한나라당의 영웅”이라고 박 전 대표를 한껏 치켜세우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표 경선에 출마하지 않은 것은 물론 당 대표 경선에 초연한 입장을 취하고 계시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최고위원도 이에 질세라 “박 전 대표가 2006년 지방선거에 앞서 나한테 한나라당에 입당해 서울시장에 출마할 것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며 박 전 대표에게 친근감을 표시하면서 “그러나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직을 맡고 있는 등 적절한 상황이 아니어서 요청을 수락하지 못했지만, 나한테 그렇게 (요청)해준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빅2’로 분류되는 두 후보의 이 같은 ‘박근혜 러브콜’은 당내 최대 영향력을 갖고 있는 박 전 대표의 마음을 자신들의 진영으로 돌려 친박 측 표심을 끌어모으기 위한 작전이란 분석이다. ■친박 의원 복당하면 지분 40% 넘어 또한, 한나라당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한 허태열 의원 역시 6월 19일 출마선언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 여부에 대해 “조용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짐작할 수 있도록 그런 정도의 성원은 있지 않겠느냐”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리고 허 의원은 23일 평화방송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친박 대표 후보’임을 자임하면서 “출마선언을 하고 나서 박 전 대표에게 보고를 드렸다”면서 “박 전 대표는 ‘이왕 출마를 하셨으니까 좋은 성적으로 당선되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라고 말했다. 그 속에 의도가 들어가 있지 않겠느냐”고 밝혀 ‘박심(朴心)’이 자기에게 있음을 은근히 과시했다. 이어 허 의원은 “박 전 대표는 그렇게 공개적이고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잘 안한다”면서 “지난 총선에서도 지원유세를 하지 않았지만, 유세를 한 결과가 나오듯 박 전 대표가 조용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짐작할 수 있도록 그런 정도의 성원은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덧붙이면서 거듭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따라서 한나라당 당권 경쟁은 ‘친박’ 인사인 허 의원의 공식 출마로 인해 지난 전당대회에 이어 또 다시 ‘박심’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실 허 의원은 앞서 박 전 대표에게 4차례에 걸쳐 전대 출마 여부를 타진했으나 그때마다 박 전 대표가 흔쾌한 답변을 하지 않아 당초에는 출마를 접었었다. 그러다가 주위의 권유로 고민 끝에 먼저 결심하고, 박 전 대표에게 사후에 보고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 전 대표는 허 의원의 출마 결심을 전해 받고는 “이왕 출마했으니 열심히 하시라고 하세요”라고 짧게 당부했다고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유정복 의원은 전했다. 이와 관련,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박 전 대표는 이제까지 기본적으로 전당대회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고, 다만 큰 틀에서 국정과 당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었다”면서 “전대와 관련해서 입장 정리를 하지는 않겠지만 대충 분위기는 정해진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해, 박 전 대표가 허 의원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를 표명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실상 계파 대표주자로서 출마에 대해 최소한 ‘묵인’ 또는 ‘소극적 지원’ 입장을 밝힘에 따라 친박 진영에서 허 의원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당권 주자들 사이에 ‘박심’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될 경우 박 전 대표의 주가는 상상 이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나라당 전당대회 이후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선 뒤 자연히 친박 의원들의 복당문제가 해결 수순을 밟으면서 박 전 대표의 향후 거취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친박 연대와 친박 무소속 연대 의원들이 전부 복당할 경우, 당내 친박 의원들과 합쳐 한나라당내 친박 의원들의 지분이 적어도 40%는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새로운 지도부는 친박 의원들의 도움 없이는 당을 순조롭게 이끌어 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측면에서 박 전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게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전대 이후에는 박 전 대표가 계파 내부를 정비하는 것을 발판으로 본격적인 차기 대권 도전 행보에 주력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