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 탤런트 김지호가 2년 만에 연극무대로 복귀한다. 그는 2006년 대학로를 휩쓴 연극 첫 도전 작 <클로져>의 흥행 이후 한층 안정된 연기로 브라운관을 통해 활동을 펼쳤다. 무려 8개월 동안 장수(?)하며 2008년 상반기에 높은 시청률을 올린 MBC 아침 드라마 <그래도 좋아> 종방 이후 김지호가 휴식기도 없이 연극 <프루프>를 선택하자, 작품에 대한 관심도 또한 높아지고 있다. 김지호가 맡은 역할은 천재 수학자의 딸 ‘캐서린’역. 아버지로부터 천재성과 동시에 광기도 물려받았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진 예민하고 난해한 캐릭터이다. 2시간 가까운 러닝 타임에서 캐서린이 등장하지 않는 시간이 7~8분에 불과할 정도로 극에서 캐서린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드라마를 할 때는 한 작품을 놓고 분석하고 알아 가고 표현하는 과정들이 거의 없다. 드라마는 내가 만들어 가는 느낌이 부족하지만, 연극은 소수의 배우와 스태프가 함께 참여하여 한 작품을 해부하고 완성시켜 간다는 데에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배우로서 관객과 직접 호흡하는 경험도 행복하다. 이런 까닭에 연극 무대를 계속 찾게 되는 것 같다.” 16일 오후 서울 혜화동 대학로 두레홀4관(구 아룽구지 소극장)에서 열린 미디어콜에서 김지호는 연극무대를 찾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김지호처럼 올해는 유난히 연극무대를 찾는 스타 연예인들이 많다. 이들이 TV 드라마, 영화 등 ‘부르는 게 값’인 높은 개런티를 마다하고, 배고픈(?) 연극을 선택하는 이유는 뭘까? 그 배경을 들여다본다. ■ 연극무대에서 사람냄새·희열 느낀다 지난 4월 공익근무를 마친 연기자 ‘고수’가 제대(소집해제) 후 처음으로 선택한 작품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그 작품은 연극 <돌아온 엄사장>(연출 박근형)이었다. 생애 첫 연극을 그것도 군 제대 후에 선택한 이유에 대해 많은 말들이 오갔다. 대체적으로 “군 복무 기간 동안 잊어버린 연기 감각을 ‘짧은 기간에 강도 높게’ 찾기 위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반응이다. 5월 7일 서울 혜화동 ‘동숭아트센터’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고수는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자연스럽게 무대로 이끌려 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예전부터 무대에는 서고 싶었다. 그 동안 극단 ‘골목길’의 지방 공연에 쫓아다니며 교회에 없는 즉석 무대를 만들고 동네 어르신과 아이들을 모아놓고 편안하게 공연하는 모습을 보면서 연극에 더욱 매력을 느꼈다”고 밝히고, “극단과 함께 생활하면서 뭔지 모르지만 많은 걸 얻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예전보다 사는 일이 편해졌고, 같이 이야기하고 고민할 수 있는 점이 좋다. 하지만, 연극을 하면서 특별히 ‘뭘 가져가야겠다’는 욕심은 없다”고 담담히 털어놨다. MBC 인기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야동순재’로 남녀노소에게 골고루 인기를 얻은 ‘원로 배우’ 이순재도 2006년 <늙은 부부 이야기> 이후 2년여 만에 연극무대를 찾았다. 그의 53년 연기경력은 반 세기를 넘는다. 5월 30일부터 계속되는 ‘연극열전2’의 여섯 번째 작품 <라이프 인 더 씨어터>에서 이순재는 자신과 닮은 한평생을 연극배우로 살아온 노배우를 연기한다. 출연자가 단 두 명인 이 연극에는 ‘새내기 배우’ 역에 아역 배우 출신 홍경인이 함께 한다. 홍경인에게 이번 작품은 연극 데뷔 작이다. 5월 14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이순재는 “70년대 후반 이후 연극에 자주 출연하지는 못했지만, 연극무대는 항상 마음의 고향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와 TV 드라마 일정에 쫓기다 보니 충분히 연습시간을 가질 수 없어 연극무대에 자주 서지 못했을 뿐, 연극을 떠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한 배우에게는 나처럼 연극무대가 ‘마음의 고향’인 사람이 많다”고 회고했다. 한편, 이날 이순재는 연기 재충전을 위해 해외여행 등으로 젊음을 ‘낭비’하는 후배 배우들에게 “끝까지 갈 수 있는 배우가 되려면 시간이 날 때마다 연극무대를 찾아 재충전하라고 권유하고 싶다”고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코믹하면서도 무뚝뚝한 캐릭터가 특징인 탤런트 양희경도 올해 초 연극 <민자 씨의 황금시대>에서 집 떠난 지 10년 만에 딸을 찾아온 카바레 가수 ‘민자’ 역으로 2년 만에 무대에 섰다. 30대 초반인 1985년 연극 <한씨 연대기>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그는 “연극은 내게 고향과도 같다. 연극무대는 내가 태어난 곳”이라며, “TV 화면을 통해 나누는 교류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현장의 매력 때문에 무대에 종종 서는 것 같다”고 출연 소감을 밝혔다. 약 두 달 간 공연하고 6월 29일 막을 내린 연극 <나생문>에서 인기그룹 god의 랩퍼 출신 데니안이 맡은 역은 무사이다. 이번 작품은 <클로져>에 이은 그의 두 번째 연극이다. 올 초 개봉한 영화 <기다리다 미쳐>로 배우 신고식을 치른 데니안은 두 편의 연극으로 가수의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영화나 드라마 연기도 어렵지만, 연극은 집중해서 감정을 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특히 힘든 것 같다. 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해 내는 일은 정말 쉽지 않더라”면서도, “어느 날 무대에서 나도 모르게 감정에 젖어 눈물이 나온 적이 있다. 스스로 깜짝 놀라 이런 게 연기의 매력이구나 하고 느꼈다”고 술회했다. 지난 2월 종영한 SBS 드라마 <황금신부>에서 엉뚱하고 덜렁대는 ‘강원미’ 역으로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벗은 탤런트 홍은희는 3월 28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개막한 연극 <클로져>에서 여주인공 ‘태희’ 역을 맡았다. 올해로 데뷔 10년째인 홍은희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에 연극 출연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연습하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드라마를 찍을 때 경험하지 못한 작업 과정들을 겪으며 이젠 연극의 매력에 푹 빠졌다”면서 “연극이 나를 배우로서 강하게 훈련시켜준다. 연극의 매력을 알게 된 이상, 앞으로도 출연 제안이 오면 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 것 같다. 이번 연극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무대에 서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 진정한 배우로 업그레이드하려면 연극을 하라 올해 연극무대로 눈을 돌린 뮤지컬 배우들도 눈에 띈다. 연극 <나생문>의 또 다른 주인공 이건명은 13년 경력의 뮤지컬 배우이다. 1996년 데뷔 이래 10년 넘게 뮤지컬의 외길을 걸어온 이건명은 “깊은 연기에 대한 갈증 때문에 연극을 선택했다. 뮤지컬에서는 깊은 감정을 음악과 노래로 표현하는 반면, 연극은 순수하게 대사로만 공연을 채우기 때문에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연극을 하면서 대본을 분석하는 힘이 강해졌다. 인물을 구상하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된다”며 연극의 이점을 강조했다. 서울 대학로 이다극장의 연극 <여보, 고마워>에 출연하는 서범석도 “뮤지컬 배우로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연극무대에 서봐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며 연극을 선택한 이유를 말했다. 국내에서 인기를 끈 뮤지컬 작품의 대개가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했다는 특징도 뮤지컬 배우를 연극무대로 이끄는 요인이 됐다. 대학로 정美소극장의 연극 <썸걸즈>에 출연 중인 이석준은 “<지킬 앤 하이드>나 <쓰릴미>와 같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김종욱 찾기> 같은 창작 뮤지컬이 모두 음악성보다 드라마적인 스토리에 힘입어 성공을 거뒀다”면서, “연극을 하게 되면 이러한 감각을 자연스레 익힐 수 있다”고 밝혔다. 쪽 대본, 밤샘 촬영 등 환경이 열악한 드라마보다 진득하게 한 작품과 캐릭터에 몰두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무대를 찾는 연기자도 많다. “TV 드라마는 작품과 캐릭터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이 돌아가기 때문에, 내가 만든다는 느낌이 거의 없다”고 말한 <프루프>의 주인공 김지호처럼 연극은 배우에게 완성했을 때의 만족감을 안겨준다. 2004년 모노 드라마 <우리가 애인을 꿈꾸는 이유> 이후 4년 만에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 <굿바이 걸>로 무대에 서는 하희라도 “TV에서는 짧은 시간에 작품을 급하게 만들어야 해서 연기하면서도 아쉬움이 많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국내 영화에서 흥행을 이끄는 배우들 대개가 연극으로 다져졌다는 요인도 한 몫 하고 있다. 상반기 국내 관객 500만을 돌파한 영화 <추격자>의 주역 김윤석, <너는 내 운명> <검은 집> 등에서 신들린 연기로 각종 영화제 남우상과 조연상을 휩쓴 황정민, <클래식> <말아톤> <타짜> 등 “그가 출연만 하면 대박”이라는 인식을 관객에게 강하게 심은 연기파 배우 조승우 등이 모두 극단 출신이다. 이들 외에도 유해진·성지루·임원희 등 오랜 무명생활 끝에 연기력을 인정받아 국내 영화계에서 감초 역을 톡톡히 하고 있는 개성파 배우들도 모두 연극인 출신이다. 예능인 ‘만능 엔터테이너 주의’가 만연한 요즘. 인기를 업고 무턱대고 연기에 나서는 스타가 많은 실정이다. 반대로, 연기자로만 살 수 없어 가수·MC 등을 겸업하는 배우도 많다. 배우들의 연기력 논란은 이러한 사회적인 영향도 없지 않다.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고 자신의 부족한 연기력을 짧은 기간에 향상시킬 수 있는 곳이 연극무대이다.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다, 배우 한 사람의 연기력과 배우들 간의 호흡이 성공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 주연으로 나섰지만, 언제나 연기력 논란의 중심에 놓인 연기자 한채영. ‘바비인형’ ‘8등신 글래머 미녀’ 등 연기보다 타고난 외모로 연기자인지 모델인지를 혼동하게 한 그가 결혼 후 연기 공부를 위해 지난해 연극 <서툰 사람들>(장진 연출)을 선택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처음에 연극을 선택한 후 두 달 동안 연습하면서 포기하고 싶은 적이 많았다고 밝힌 한채영은 최종 리허설 때 당한 발목 부상으로 오히려 연기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우려와 달리, 한 채영은 허름한 독신자 아파트에 사는 여교사 역을 안정감 있게 연기했다. 한채영의 발목 부상 투혼으로 <서툰 사람들>은 연일 매진 사례를 이어갔다. 3월 16일 종료한 연극무대에 3개월 동안 올랐던 한채영이 연극에 대해 남긴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닌 연기다. 연기자로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니, 그 답은 ‘연기’였다. 업그레이드된 연기로 당당히 서고 싶어 연극무대를 선택했다.” ■ 연극 ‘proof’ 소개 <프루프>(proof)는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천재 수학자 ‘존 내쉬’를 모티브로 하여 쓰여진 작품으로, 존 내쉬와 그의 가상의 딸 캐서린을 소재로 천재성과 광기, 그 속의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를 다뤘다. ‘유진 오닐’ 이후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주목받는 극작가 ‘데이비드 어번’의 작품이다. 2000년 미국의 맨해튼 극장에서 초연, 브로드웨이 첫 공연 매진기록을 세운 바 있다. 2001년 퓰리처상, 토니상, 뉴욕 드라마 비평가협회상을 포함한 8개의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었다. ‘진실’을 발견하여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가는 한 여자의 인생의 단편을 다룬 연극이다. 주인공 캐서린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순간, 그녀와 그녀 주변의 모든 인간관계, 천재 수학자 아버지와 캐서린의 관계, 아버지의 제자 할과 캐서린의 관계, 언니 클레어와 캐서린의 관계가 퍼즐처럼 맞아 떨어지면서 관객에게 희열을 느끼게 한다. 국내에서는 2003년과 2005년 두 차례 공연됐다. 당시 여주인공 ‘캐서린’은 탤런트 추상미가 열연해 호평을 받았다. 올해 선보이는 <프루프>에는 김지호 외에도 연극 <친정엄마><강철> 등에서 빈틈없는 연기력으로 언론과 평단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인정받은 실력파 연극배우 서은경이 캐서린으로 더블 캐스팅됐다. 여배우 기근현상을 보이는 연극 무대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배우이다. 두 사람의 같지만 다른 연기대결도 눈여겨볼 만하다. 연륜이 묻어나는 연극인 남명렬, 안정된 직장인 생활을 청산하고 배우의 길을 선택한 이경선, 연극계의 숨은 보석으로 급부상 중인 정원조가 공연한다. 연극 <아트> <날보러와요> <하이라이프> 등에서 호연했으며, 지난해 <나쁜자석> 이후 연출가 타이틀을 거머쥔 중견 배우 유연수가 연출을 맡았다. 7월 11일부터 9월 7일까지 서울 혜화동 대학로 두레홀4관(구 아룽구지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문의: 02)764-8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