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보호법(이하 비정규직법)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크게 늘어난 비정규직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 및 개정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그리고 ‘노동위원회법’을 말하며, 지난해 7월 1일부터 시행됐다. 비정규직법 시행 1년이 지난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의 수적인 감소와 함께 전체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중도 1.5% 하락해, 수치상으로는 법 시행 효과가 긍정적인 듯 보였다. 하지만, 법 시행 이후 고용 유연성이 떨어져 기업들이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 자체를 꺼리게 되고, 비정규직 일자리라도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특히, 중소기업 4곳 중 3곳은 비정규직의 시행에 따른 대책을 전혀 마련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법의 핵심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이 규정은 지난해 7월부터 5인 이상의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어, 법 시행 2년이 되는 2009년 7월이 되면 계약직이 정규직으로 자동 전환되는 대신 대거 해고되는 사태가 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둘째는, 정규직과 똑같은 업무를 맡는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해 임금·근로시간·휴일 및 휴가· 재해보상 등에서 차별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이다. 이 또한 지난 7월 1일부터 확대 적용됐다. 비정규직법 시행 1년이 지났지만, 사업장에서는 아직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 중소기업 77%, 비정규직 차별시정 대책 없어 하지만, 비정규직 근로자 중 18.1%는 노동위원회에 차별 시정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했다. 이는 사업주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시정명령이 내려져도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 제조업체 3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비정규직 인력운영 애로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법 시행과 관련해 중소기업의 77.3%가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미 대책을 마련해 시행 중’인 업체는 7.3%에 불과했고, 일부는 ‘타 기업의 대응사례를 지켜본 후 마련할 예정’(8.0%)이라고 답했다. 근로자 100인 이상의 중소기업들은 모두 비정규직법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으나, 100인 미만인 기업의 경우 21.3%가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 제한규정이 적용되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비정규직법 시행에 따른 대책을 마련했거나 마련 예정인 중소기업들은 대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50.0%)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외주 용역화’(35.3%)를 하거나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기존 정규직 근로자가 업무를 수행’(19.1%)케 하겠다와 ‘2년마다 새로운 비정규직으로 교체’(17.6%)하겠다는 곳도 많았다. 중소기업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의 애로사항으로 ‘단순한 업무라서 정규직 전환이 어렵다’(38.3%) 혹은 ‘차별 시정에 대한 인건비가 부담된다’(21.3%)는 점을 꼽았다.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시정해야 함에 따라 중소기업의 11.3%는 ‘인건비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소기업들은 그러나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현재와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비정규직법 시행에 따라 정규직의 고용을 현행대로 유지하겠다는 중소기업이 91.7%에 달했고, 비정규직의 경우도 92.0%로 매우 높았다. 중소기업들은 비정규직법 시행과 관련해 정부의 지원정책으로 ‘차별해소, 정규직 전환으로 증가하는 인건비에 대한 비용지원’(34.3%)과 ‘사용기간 제한 없는 기간제 근로자의 범위 및 파견허용 근로자의 범위 확대’(11.7%)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이 비정규직을 활용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일시적·유동적 업무가 많기 때문에’(69.0%)라고 밝혔다. 중소기업의 45.3%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업무 내용에 차이가 없으며, 이들 기업 중 41.2%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임금에 차등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 비정규직법, 고용규모 감소시킬 우려 이에 앞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285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이 기업 인력운용에 미치는 영향’ 결과에 따르면, 작년 7월 시행된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 규모 축소에는 일정 부분 효과를 나타냈으나, 전체 고용규모를 축소시키는 부정적 영향까지 초래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적 요인을 배제하고 비정규직법 자체가 기업의 채용 형태 및 규모에 미친 영향을 묻는 설문에서, 응답기업의 39.7%가 ‘비정규직법으로 인해 비정규직 채용규모를 감소시켰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 중 19.3%만이 비정규직 채용 감소분만큼 정규직을 더 채용했다고 응답했다. 나머지 20.4%의 기업은 비정규직 채용 감소와 더불어 고용 자체를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중소기업에서 더 명확하게 나타나, 중소기업은 37.8%가 비정규직 채용규모를 감소시켰으나, 그 감소분만큼 정규직 채용을 증가시켰다는 기업은 15.6%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비정규직법에 의한 영향과는 별개로, 최근의 경기악화가 비정규직 채용을 감소시킴으로써 고용을 축소시켰다는 응답은 26.6%여서, 오히려 비정규직법에 의한 영향(20.4%)보다 6.2% 높았다. 결국, 최근의 부진한 고용사정의 직접적 원인인 임시·일용직(비정규직 포함)의 감소는 경기악화와 비정규직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경총은 설명했다. ■ 정규직 전환 어려운 이유…대기업 ’고용유연성 확보’, 중소기업 ’인건비 부담’ 한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로 대기업은 ‘고용의 유연성 확보(32.0%)’를, 중소기업은 ‘인건비 부담(33.8%)‘을 꼽았다. 이는 대기업에 비해 경영환경이 어려운 중소기업이 고용 유연성 문제보다 인건비 증가에 더욱 큰 부담을 느끼기 때문인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대기업에서는 ‘당초 채용경로가 달라서’라는 응답이 16.0%에 달해, 기존 정규직 근로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정규직화의 주요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기업은 정규직화하지 못하는 기간제 근로자의 업무를 주로 교체사용(36.5%), 외주화(27.4%) 등으로 처리할 예정으로 조사됐다. 대기업에서는 외주화(36.6%)와 ‘기간제 근로자 교체사용’(35.5%)이 비슷하게 나타나는 반면, 중소기업은 ‘기간제 근로자 교체사용’(37.5%)이 외주화(20.6%)에 비해 월등히 높아 대응방향에 차이를 보였다. 이 중 ’기존 근로자에게 나누어 배분‘이 대기업(12.9%)에 비해 중소기업(18.4%)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점은 비정규직법으로 인한 고용감소가 중소기업에서 보다 명백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고 경총은 분석했다. 비정규직의 보호를 위한 실질적 필요 조치에 대해 조사대상 기업의 55.8%는 ‘기간제 사용제한 규정을 폐지, 비정규직 일자리를 확보하고 처우개선에 노력해야 한다’를 선택해, 비정규직법 내용 중 기간제 사용제한 규정이 가장 시급히 개선돼야 할 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요구는 대기업(50.5%)보다 중소기업(58.8%)에서 더욱 높았다. 그 밖에, ‘정규직 과보호를 개선, 기업의 비정규직 사용유인 축소’(23.2%), ‘지도감독 강화를 통해 비정규직 근로자 보호’(14.2%) 순을 보였다. ■ 정부와 기업·노조·관련단체 공동 노력 필요 이 같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정부는 하반기 고용시장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발표한 경제안정종합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 강화대책을 오는 9월에 내놓을 예정이며, 청년 인턴 지원제도 신설,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위한 고용센터 운영, 고령자에 대한 임금 피크제 확산 등 취약계층의 고용촉진대책도 추진 중이다. 또, 중소기업의 ‘1사1인’ 추가채용운동이나 대기업의 채용 증원 등 민간 캠페인 지원에도 적극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비정규직 감소의 배경으로 지목되는 비정규직법에 대해서도 보완·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재정상황이 열악한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고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개선을 위한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시 법인세(1인당 30만 원) 공제, 9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취약근로자 고용보험 적용확대를 위한 보험료 일부 감면, 비정규직 직업능력개발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정규직 전환 기업에 대한 추가적인 인센티브 제공도 검토하고 있다. 고유가 등 경제 여건의 어려움이 중소기업·하도급기업의 근로자에게 집중될 소지가 많으므로, 이들 기업에 근무하는 근로자에게 적정한 근로조건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이는 바로 정부와 기업·노조·관련 단체의 공동노력이 필요한 사안이다. 한나라당 김상희 의원은 “비정규직법의 취지인 비정규직 남용 방지, 차별 개선, 그리고 고용불안 해소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비정규직법의 취지가 노동시장에서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법의 개정을 적극 추진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