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 환경·노동단체들은 7월 21일 오전 부산시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부산석면추방공동대책위’ 출범을 선언했다. 100만 명에 1명 꼴로 걸리는 악성중피종 환자가 부산 연산동에서 잇달아 발견됐기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가동됐던 옛 석면방적공장인 제일화학에서 노동자 500명 중 9명이 발병했고, 공장 반경 2km 내에 살았던 주민 중 10년 동안 12명이 발병했다는 것이다. 대책위는 “부산시는 이제라도 연산동을 특별재해구역으로 지정해 옛 제일화학 인근 주민들의 환경성 석면노출 피해조사를 전면 실시하고 보상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추가 피해자 발굴과 함께 석면의 위험성을 알리는 홍보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책위는 더 이상의 석면 피해를 막기 위해 지역 환경·노동·보건의료 단체와 함께 석면추방운동을 벌이기로 하고, 석면 피해자가 정부와 제일화학으로부터 공식적인 사과와 산재승인를 받고 회사와 석면공해를 수출한 일본 기업을 상대로 피해소송을 내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석면은 인체에 장기간 잠복돼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조용한 시한폭탄’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일본의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석면에 의한 건강피해 건수는 매년 증가추세에 있어 석면에 의한 건강피해를 구제하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의 생활환경 곳곳에는 석면이 무수하게 사용됐지만 이에 대한 관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어느 누구도 석면에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는 실정이다.
■ 부산 44만 학생·교직원, 23년 간 석면에 노출 국내 최대의 석면공장이던 부산 제일화학이 연산동에서 가동하던 1969~1992년 사이 최대 44만여 명의 학생과 교직원이 석면 먼지에 노출됐다는 추정이 나왔다.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산업의학과 강동묵 교수는 제일화학으로부터 석면먼지의 영향권인 반경 2㎞ 이내에 위치했던 각급 학교의 개교·이전 연도와 재학생과 교직원 수 등을 토대로 석면노출 인구를 추산했다. 연신초등학교는 1984년 제일화학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문을 열었다. 이 공장에서 반경 1㎞ 안에는 연서초교·연산중·낙민초교 등 8개의 학교가 있었고, 반경 1~1.5㎞에는 부산외국어고교·연천중·내성초교 등 10개교가, 반경 1.5~2㎞엔 과정초교·거학초교·연제초교 등 18개 학교가 위치한 것으로 파악됐다. 강 교수는 학생들이 같은 지역에서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진학하고 교직원들도 다른 지역으로 전근을 가지 않는다고 가정한 최소 노출인원을 7만3410명으로 계산했다. 학생과 교직원이 영향권을 들락날락해 석면에 노출된 인원이 가장 많았을 경우 최대 44만1257명이 석면에 노출된 것으로 추정했다. 강 교수는 “어린이는 발육이 활발해 발암물질에 대한 감수성이 어른보다 높다”며 “석면의 잠복기가 30~40년이라고 볼 때 당시 석면공장 노동자나 인근 주민이 70대 이후에 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데 비해, 당시 초등학생은 장년기인 40대에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어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 공장에는 가동 기간에 약 1만여 명이 일했고, 인접지역에는 주민 26만여 명이 살았던 것으로 강 교수는 추정했다. ■ 국내 석면자재 추정량 약 2500만 톤 우리나라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시아 최대 석면자재 생산국으로서 1944년까지 4800톤의 석면을 생산했으며, 현재까지 생산된 총량은 약 16만5000톤을 웃돈다. 강동묵 교수는 국회에서 열린 한일석면 심포지엄에서 “우리나라 석면의 건강피해 현황”이란 주제 발표를 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우리나라는 1918년부터 채광을 시작해 45년까지 보령 등 충남 지역을 비롯하여 전국에 28개의 석면광산이 있었다고 한다. 1930년대에는 용산의 아사노 슬레이트 공장을 중심으로 석면공장이 곳곳에 설립돼 석면제품을 대량생산했다. 국내에 석면생산이 없던 50년대에는 부산항과 인천항을 통해 천연석면과 가공품, 석면 완제품 등을 수입했다. 그러다가 60년대에 새마을운동 과정에서 농촌 지역 가옥 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4곳의 광산이 석면 생산을 재개해 석면의 대량소비가 이루어졌다. 본격적인 산업화가 진행된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추계되는 석면 소비량은 통계로만 따져도 250만 톤에 이른다. 통상 석면 제품의 석면 함유량이 대체로 10% 전후임을 감안할 때 석면자재의 추정량은 약 2500만 톤에 이른다. 수입 석면의 약 80%가 농촌 가옥의 지붕에 쓰이는 슬레이트와 사무실 천정의 텍스 등 건축용 마감재이고, 나머지는 보온·방화용 방직제품이나 패킹유(油), 마찰재, 지하철 내벽의 뿜칠(스프레이를 이용해 도료의 입자를 고르게 하는 분무칠) 등이다. 태원환경석면 방경부 대표는 “대략적인 국내 건축용 석면물질의 추정치만 해도 최소 1000만 톤에서 1500만 톤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 악성중피종 피해 심각, 2045년 최고조 석면으로 인한 질병 문제는 심각하다. 국내 최대의 석면광산인 충남 홍성군의 광천광산이 있는 덕정마을 주민 중에는 폐질환 환자들이 여럿 발견된다. 국립 홍성의료원의 자료에 의하면, 주민 41명 중 7명이 폐암판정을 받았고, 3명이 사망했다. 홍성군 전체 지역에서는 9만242명의 주민 중 폐암환자가 517명 발견됐다고 한다. 하지만, 폐암은 석면과의 관련성을 밝히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2007년까지 41건의 폐암만 산업재해보험에서 석면 관련 질환으로 인정했다. 또한, 94년 산업안전공단이 역학조사를 실시한 결과, 석면폐 사례가 4건이 확인됐고, 이 중 발전소에 근무한 배관공과 석면광산 주변에서 연탄공장을 30년 운영한 63세 남자가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석면이 체내에 축적되어 발생하는 악성중피종은 낮은 농도의 석면노출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이며, 2001년에는 433건이었던 진료 횟수가 지난해에는 1120건으로 급증했다. 석면의 잠복기간이 10~30년임을 고려하면 석면에 의한 악성중피종 환자 발생은 2010년 상승기를 거쳐 2045년에 최고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석면에 의한 피해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악성중피종 의심 환자의 급증 추세에도 불구하고, 석면에 의한 피해가 인정된 근로자는 극소수에 불과해 효과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석면 피해가 처음으로 공식인정을 받은 사례는 1993년 석면방직공장에 18년 간 연사공으로 일한 55세 여자이다. 그 후 지난해까지 모두 19건이 산재로 인정을 받은 것으로 집계된다. 강북삼성병원 산업의학과 김동일 박사는 ‘석면건강피해구제의 방향’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악성중피종에 의한 진료건수의 경우 2001년 433건에서 2007년에는 1120건으로 급증하는 등 석면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환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면서 “산재로 인정받으려면 심의과정이 복잡하고 실제로 인정된 근로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효과적인 석면구제제도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석면추방 물결 석면이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국제적 인식이 확산돼 세계 곳곳에서는 석면 제품 사용을 금지하고 대체물질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환경연합이 7월 3일부터 5일까지 서울과 부산에서 개최한 국제석면심포지엄에서는 12개국 200여 명의 참가자들이 ‘아시아 석면추방을 위하여’에 동의하고 실천을 결의했다. 영국·일본·캐나다·미국·태국·한국 등 12개국이 참가한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백석면을 비롯, 모든 종류의 석면이 포함된 제품의 제조 및 사용의 즉각적 금지를 결의했다. 특히, 석면 사용금지 조치를 확산하기 위한 노력으로 석면 대체물질 사용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아시아 국가들이 기술지원·세금보조 및 보조금 지급 등을 적극 도입할 필요성을 환기했다. 이 같은 노력의 배경은 해외로 진출한 기업들이 석면 사용이 허용된 국가에서 석면을 사용할 경우 환경의 피해를 막기 힘들기 때문이다. 심포지엄은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석면의 완전 사용금지를 위해 석면 관련 교육 및 조사, 석면 관련 질환의 조기 진단과 치료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사용량이 증가하고 있는 아시아의 석면문제 해결을 위해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 결성을 제안했다. 일본에서는 석면 건강피해를 근절하기 위해 1960년부터 석면작업을 분진작업으로 지정한 진폐법을 시행하고 있다. 1975년에는 노동안전위생법에 근거한 특정화학물질 장해예방규칙을 개정하고, 1986년에는 ILO의 석면조약을 채택해 청석면의 사용과 석면 뿜칠을 금지하고 있다. 이어 1989년에는 대기오염방지법을 개정해 대기 중의 석면배출을 규제하고 있다. 2006년부터는 석면건강피해구제제도를 마련하여 석면에 의한 건강 피해자와 그 유족에게 의료비를 지급하고, 노동재해보상제도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도 구제급부를 시행하는 등 석면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 석면 관리·처리 대책 정비해야 우리나라에서도 석면물질의 사용금지와 아울러 석면제거산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2007년 7월 노동부와 환경부 등 5개 부처가 합동으로 ‘석면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2010년부터 건축물에 대한 본격적인 실태조사를 하여 석면지도를 작성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이미 근로자나 일반인들이 광범위하게 석면에 노출된 상황에 비춰볼 때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늑장 대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석면물질의 안전관리에 관한 규정은 다음과 같다. 국토해양부 관련 건축법 제8조와 제27조에 의하면, 건축물을 철거하거나 보수할 때에는 대상의 석면함유 여부를 신고하도록 돼 있고, 신고하지 않으면 벌금 30만 원 이하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또한, 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 제38조에는 석면을 발암성 특정유해물질로 분류해, 석면이 1% 이상 함유된 석면함유물질을 해체 또는 제거할 때에는 사전에 노동부에 신고하고, 검사 후에 허가를 받아 제거 작업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환경부의 폐기물관리법과 시행규칙에는 석면물질을 배출할 때에는 관할 시군구의 관계부서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또한, 안전하게 제거된 석면물질은 비산되지 않도록 밀봉하여 배출하도록 하고 있다. 대원석면환경의 방경부 대표는 “건축물 내의 석면물질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 건물주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어 그는 “건축물 멸실 등의 허가 때 사전에 석면물질을 제거하고 석면 제거작업 완료확인서의 제출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국내 석면제거산업이 사업자등록증만 있으면 석면 제거를 할 수 있는 등 전문업 분류가 되어 있지 않고, 하도급과 재하청 과정에서 불법과 탈법적 제거가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석면 해체 및 제거 직종이 전문업으로 분류돼 있지 않고 구조물 해체업과 시설물 유지관리업, 실내건축업, 냉난방시설 공사업 등에 포함돼 있는 형태라 혼돈을 빚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석면 해체 사업을 수주해도 하도급에 재하청이 이루어지면서 공사금액이 줄어들게 돼 기업 측면에서는 이를 기피하게 된다. 따라서 방 대표는 “석면 제거작업자 및 관리자에 대한 교육과 함께 자격을 갖춘 업체가 신고만으로 적기에 공사를 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