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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적 지원은 말로 하는게 아니오”

[인터뷰]정동남 한국구조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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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83,84호 박성훈⁄ 2008.09.10 09:41:39

“요즘 들어 정부에서 ‘인도적 지원’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죠. 인간의 생명을 첫째로 여기는 데에서 인도적 지원이 시작되는 것이죠. 그런데 내 생각에는 정부가 인도적 지원이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것 같아요.” 사단법인 한국구조연합회 중앙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탤런트 정동남 씨. 1975년 연합회 창단 후 30년이 넘게 재해현장 일선에서 민간 구호활동을 해온 그는 최근 정부에서 자주 사용하는 한 용어에 집중한다. ‘인도적 지원’이라는 용어이다. 어느새 사람들 입에 익숙해져 버린 이 용어가 현 정부에서도 여러 번 회자됐음에도 진정성 있는 실천이 보이지 않는다며 그는 안타까워했다. 인도적 지원이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인식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봉사를 의미한다. 외교통상부는 산하에 2007년 8월부터 ‘인도지원과’를 설치해 재해나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에 대한 지원업무를 특성화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다른 부처도 아닌 외교통상부에 인도지원과가 설치된 사실은 해외 구호사업에 비중을 두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정동남 씨는 정부에서는 국내 재난의 대처에만 치중할 뿐, 해외에서 발생한 인재나 자연재해에 대해서는 인도적 지원이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에서 사고가 났을 때는 국민들과 연관된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적극 해결하면서도, 외국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남의 일이라 강 건너 불 보듯 하잖아요. 그럴 바에야 외교부에 인도지원과가 왜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쓰촨성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인도적 지원이라는 말을 들어 물자지원을 하려는 의도를 보이기도 했으나, 정작 재해 현장에서 피해 주민들과 살을 부딪치며 도움을 주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는 데 대한 고언이다. 정 씨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대통령 지시로 텐트·의약품 등 갖가지 구호물품을 챙겨 보낸 것까진 좋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형식에 불과하죠. 외교 담당자들이 현장에는 나와보지도 않고, 어떤 품목이 필요한지 자세한 이해도 없이 상부의 지시사항만 이행하는 거죠. 그러니 돈 들여 물품지원 잘 해놓고 욕먹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는 일본이 우리보다 낫죠. 물품 면에서 우리가 10을 하면 거기선 100을 할 뿐 아니라, 몸으로 부딪치는 봉사도 마다 않으니까요. 떠밀려 하는 지원보다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봉사가, 의약품 따위의 일방 지원보다 유가족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스킨십 지원이 피해자들에게 백 번 힘을 주는 거예요.”

■ “민간 구조대, 전문성 갖추고 있다” 정 씨는 이 같은 자발적인 지원활동이 구조 공무원이 아닌 민간 자원봉사자들에게서 실현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민간 자원봉사자가 무조건 아마추어인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동안 구호활동을 해온 민간 구조단체에서는 오히려 국가기관보다 전문성을 발휘할 때가 많다. 일선 경험이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정동남 씨 역시 민간 구조전문가로서 90년대 삼풍백화점 및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비롯하여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 태풍 루사와 매미 수해 등의 국내 재해 뿐 아니라 태국 쓰나미, 괌 항공기 추락사고, 이란·이라크·인도의 지진 등 해외에까지 재난이 있을 때마다 만사 제쳐두고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활동을 해왔다. 그렇다 보니 재해현장에서의 노하우가 체득화된 상태다. “여러 해에 걸친 현장 경험을 보유한 민간 구조단체는 현장에 어떤 장비가 있어야 하고, 살아남은 유가족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교과서처럼 다 알아요. 이미 장비와 인력을 갖춘 상태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또는 해외에서 재해가 발생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죠.” 그는 연합회 활동을 통해 9개 재해 국가를 돌아다니며 구조현장의 안전 시스템에 관한 리포트를 작성해 왔다고 한다. 피해주민이나 유가족들의 심리상태가 일주일을 주기로 ‘공황-분노-좌절-폭발’을 계속 순환한다는 점은 그가 경험을 통해 알아낸 현상이다. “중국과 동남아 지역은 가족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강해 우리랑 비슷한 점이 많아요.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은 무슬림은 알라신에게 간다는 믿음이 있어 죽은 이를 대하는 개념이 동양권과 확연히 달라요. 문화마다 차이가 있는 것이죠. 그에 맞는 심리적 케어가 구호활동에 병행돼야 합니다” 또한, 민간 구조단체는 전기·배관기술자·목수·방역·의료팀 등 전문가 집단이 모여 한 팀을 구성한다. 이는 인명구조 이후 재해지역 복구에 투입되는 전문인력이다. 정 씨는 “재해가 발생하면 첫째가 생존자 수색이고, 둘째가 복구활동입니다. 119구조대는 생존자 수색이 끝나면 철수하지만, 민간 구조대는 복구활동이 진짜 시작이죠”라고 말했다. 그는 사체처리·방역·난민촌 전기가설·배관공사·임시거처 건축 등이 민간 구조단체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의 해외구조 분야에는 이 같은 전문가가 없다”고 꼬집었다. ■ 해외 구호활동 되레 정부가 말려 민간 구조단체에서 해박한 ‘필드 지식’을 갖추고 있어도 정작 정부에서는 이들의 해외 구호활동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번 쓰촨성 대지진 때 정동남 씨를 비롯한 한국구조연합회 회원들이 중국으로 가려고 했으나, 외교부에서는 “이미 중앙119구조대를 파견했다”며 되레 핀잔만 들었다. “초청장도 없이 나가서 무엇을 하려느냐” “쫓겨날 것이다”라는 말로 나가지 말라고 회유했다고도 한다. 애써 출국을 하더라도, 현지 영사와 접촉을 시도하면 영사관 측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 등 외교 당국이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 또, 최근에는 해외 구호활동 지원금도 나오지 않아, 기업의 후원을 받아서 나가야 하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한국구조연합회 측은 지난 5월 쓰촨성 칭촨시에서 펼친 헌신적인 구호활동으로 쓰촨시 인민대외우호협회와 우호합작 협의를 맺고 왔다. 이 사건은 베이징 데일리를 비롯한 4개 주요 일간지와 방송국을 통해 보도됐다. 구호활동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서 중국 시민들이 길가에 도열해 우리 버스를 환송해 주고 눈물로 작별인사를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 “인민우호협회에서 앞으로 우리 단체에 대한 무비자 입국을 지원하고, 우리나라에서 재해가 일어나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쫓겨나는 사람들이 받는 대우인가요? 민간의 인도적 지원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막지는 말아야죠.” ■“민간 자원봉사자들, 보상은커녕 보험혜택도 받기 힘들어” 봉사활동을 한번 다녀오면 다치는 사람이 발생하게 마련. 30여 년 간 연합회가 여기저기 구호활동을 다니면서 발생한 부상자 수도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의사상자법에 의해 치료비를 변제받기는커녕 변변한 보험혜택조차 받기 힘들다고 한다. 민간 구조단체의 회원들은 다칠 우려가 많기 때문에 보험사가 이들을 기피한다. 해외 여행자 보험도 가입이 어렵기는 마찬가지. 이들은 그나마 비싸지만 가입범위가 넓은 스위스의 여행자 보험 상품을 사서 나간다고 한다. 그는 “여행자 보험이라도 들어놔야 해외에서 구조·구호 활동을 할 때에도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쓰촨성 활동에서는 한 회원이 구호활동을 하다가 여진으로 건물에서 콘크리트 덩어리가 떨어져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치료비는 스스로 부담했다고 한다. “보상은 꿈도 못 꾸죠. 그래서 저는 활동 전에 항상 대원들에게 주의를 줍니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안전’이라고.” 그래도 한국구조연합회의 국내외 재난 구호활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정 씨의 외교 당국에 대한 성토는 끊이지 않았다. “외교 당국의 작태가 위험수위에 와 있고, 이런 공무원들의 겉핥기식 지원 업무가 계속된다면 외교적으로도 심각한 위기를 맞을 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공무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인도적 지원에 대한 강의마저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몇 시간쯤 떠들어야 인도적 지원의 ‘인’자 정도는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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