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도 다른 언론들과 다름없이 감사 개시 전에 이미 우려했듯이, 해마다 되풀이돼 왔던 고질적이고도 만성적인 ‘정책’ 아닌 ‘정치국감’ 폐습을 지양해야 한다고 주문했었다. 그런데도 이번 역시 어김없는 시끄러운 ‘정치국감’의 전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피감사자들의 고압적인 자세에다 심지어는 감사 의원에게 물리적 폭거를 자행했다가 파직을 당하는 보기 드문 불상사가 돌발하는 등 과거보다 한술 더 뜬 느낌마저 들게 한 사례까지 발생했을 정도다. 모두가 익히 알고 있듯이, 해마다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정기국회의 국정감사는 바로 예산국회라는 점에서, 국감은 한 해의 나라살림과 관련된 정책의 적합성 여부를 따지고, 잘못된 것은 고치거나 조정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때문에 예산국회인 정기국회에서는 본격적인 예산·결산 심의에 앞서 필수적으로 이 국감부터 실시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는 이 국감을 통해 나라살림의 규모 및 방향 등을 좌우하는 관련 정책들을 점검해 예산 낭비와 부조리의 뿌리를 자르는 등 주로 정책적인 면을 다루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하는 기능까지 겸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 국감이야말로 국회 존립의 정치사적 진원인 동시에 국회의 고유권한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행정부에 대한 견제에는 집권 여당과 이에 대치해야만 하는 야당이라는 입장과 정치적 이해관계 등으로 해서 여야는 일반적으로 대립 양상을 띠기 마련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때로는 다 같이 입법기관이라는 사실에 입각해서는 서로 협력 내지 공조의 분위기가 조성되는 특유의 예외도 없지는 않다. 바로 국정감사장에서 흔히 보이는 경우가 그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국감에서도 바로 그런 사례가 출현한 것이다. 이미 필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번 국감은 18대 국회의 첫 국감인데다 이른바 민주화 이후 20여 년이 지난 뒤 여야의 입지가 정반대로 뒤바뀐 처지에서 치러지는 첫 국감이라는 점 등으로 인해 국감을 앞두고 여야가 처음부터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바람에 이번에도 ‘정책국감’이 아닌 ‘정치국감’으로 치달을 공산이 높다고 진단했던 대로 진행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이른바 ‘신이 내린 직장’이요 ‘황금밥통’이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하는 공기업의 방만과 비윤리적 경영을 지적하고 질타하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오로지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감사권과 견제기능을 십분 발휘하는데 집중하는 목소리는 여야가 똑같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대한주택공사(주공)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300여개 공기업 가운데 가장 큰 부채가 드러난 주공이 자그마치 39조8736억 원이나 되는데도, 윗자리에서부터 말단에 이르기까지 돈잔치를 벌였다는 사실이 여야 의원들로부터 집중 포화의 표적이 됐다. 대표 공격수로 나선 국토해양위의 한나라당 윤두환 의원은 4102명의 주공 직원들은 1135개의 법인카드로 지난해 158억 원, 카드 1장당 1394만 원을 썼다고 밝혔다. 이는 또한 300여 개 공공기관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2006년(126억 원)보다 32억 원을 더 썼다는 것이다. 사실 여당 의원으로서는 지적하기 힘든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은 물론 공무원들도 업무상 비리로 구속되거나 파면되면 퇴직금을 제대로 못 받는다. 그러나 주공과 한국도로공사의 사장 등은 스스로 ‘예외’를 인정하는 규정을 만들어 놓고, 해임이든 의원면직이든 구속이든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고 수천만 원씩의 퇴직금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경영은 형편없었지만 성과급 잔치는 여전했다거나 끼리끼리 자리를 나눠 차지하는 등 의원들이 파헤친 이 공기업들의 행태는 왜 ‘신이 내린 직장’인지를 확인해준 셈이다. 철저하고도 단호한 조처가 절실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