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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만 국민외교관 신화(神話) 이루고 싶습니다”

‘독도지킴이’ 사이버 민간외교사절단 ‘반크’의 박기태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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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91호 이우인⁄ 2008.11.04 18:03:25

‘세계지도 동해 표기’ ‘독도 주권 찾기’ ‘역사 왜곡 사례 알리기’ 등의 외교활동을 펼치며 사이버 민간 외교사절단으로 활약하고 있는 ‘반크’(VANK·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에 대한 내년도 정부 지원이 전액 삭감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을 비롯한 각계의 비난이 거세지자, 10월 21일 주무처인 교육과학기술부는 예산 지원을 지속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예산에 대한 일 저희는 모르고 있었어요. 저희를 좋아하는 한 기자가 (국회 과학기술위원회가 실시한) 국정감사장에 있다 반크 예산 관련 이야기를 듣고 전화를 줘 알게 됐죠. 그래서 ‘몰랐다. 2005년에 (독도 때문에) 세워진 기금이고, 수십 년 간 지속될 거라 알고 있었는데, 허무하고 서운하다’고 했더니, 그 기자가 기사에 제 기분을 쓴 거예요. 그리고 기사를 본 네티즌들의 비난이 거세지면서 엄청난 이슈가 됐죠. 입장요(웃음)? 입장이라고 할 건 없어요. 하지만, 정말 사소한 일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많은 분들이 우릴 위해 애써주고, 정말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어요. 오늘도 여길 찾아온 분들이 저를 보자마자 손을 지긋이 잡더니 ‘힘내세요’라며 응원해주셨어요. 모두들 처음 만난 분들인데도 말이죠(웃음).” 10월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기록엑스포2008’ 행사장에서 만난 반크의 박기태(35) 단장은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이같이 말했다. 1999년 5월 사이버 외교사절단으로 출범하면서 한국 바로 알리기에 앞장서 온 반크는 세계적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비롯하여 미국 국무부·CIA와 같은 정부기관은 물론 백과사전, 유명 웹사이트 등 300여 곳의 외국 자료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던 것을 동해·일본해로 병기(倂記)하도록 바꿔 놓았다. 또한, 외국 교과서 1,000여 종에서도 동해 명칭을 되살리는 공을 세웠다. ■ 일개 펜팔 사이트에서 민간 외교 사이트로… 1999년 개인 펜팔 사이트였던 반크는 같은 해 5월 사이버 외교사절단을 출범하면서 현재 2만2,000명의 회원을 보유한 국내 최대의 외교 사이트로 발전했다. 독도 문제, 역사교과서 왜곡 등의 문제가 터질 때마다 네티즌들이 가장 먼저 찾는 사이트가 정부기관이 아닌 반크인 것을 보면, 반크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솔직히 저는 세상일에 전혀 관심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단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더더욱 없구요. 대학교 4학년 때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 인도네시아 친구와 펜팔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들이 한국을 알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들이 아는 한국은, 남북 관계가 혼란하다는 정도였습니다. 더구나, 한국을 중국의 속국으로 아는 데에는 화가 나더군요. 그들의 논리는 (한국이) 한문을 쓰니깐 중국의 식민지이고, 과거 중국에게 침략당한 적이 있으니 당연히 중국인의 피가 흐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어요. 반크는 펜팔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펜팔 하는 방법을 알려 도움을 주는 일개 ‘펜팔 사이트’였지요. 그런데, 펜팔을 경험한 회원들의 반응도 저와 비슷했어요. 그때 ‘아! 4,000만 인구가 바라볼 때의 한국은 위대한 나라지만, 전 세계 60억 인구가 볼 때는 독도가 ‘다케시마’고, 동해가 ‘일본해’고,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구나’하는 사실을 깨달았죠. 이보다 더 화가 치미는 사실도 있습니다. 외국 친구와 처음 사귀면 어디서 왔냐고 묻는데, 그냥 ‘코리아’라고 하면 모르니깐 중국 옆에 혹은 일본 옆에 있는 나라라고 말해야 외국인들이 ‘아~거기’라고 안다는 겁니다. 한국을 설명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현실에 속이 탔어요.” 박 단장은 그때의 고통을 떠올린 듯, 양미간을 찌푸리며 팸플릿으로 손바닥을 탁 쳤다. 그는 잠시 심호흡을 한 뒤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일을 계기로, 펜팔만 할 것이 아니라 펜팔을 통해 국가를 홍보하자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펜팔 친구에게 우리나라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세계지도를 클릭하는데, 동해가 일본해로 되어 있고, 독도가 다케시마로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바꿔달라는 편지를 해당처에 보냈는데, 쉽게 바뀌는 거예요. 얼마 후 이와 관련한 사실이 신문에 보도됐죠. ‘일개 펜팔 사이트가 큰일을 해냈다’고요(웃음). 그렇게 하나둘씩 바꾼 것이 현재까지 300개가 넘어요.” 박 단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동안 정부가 한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을 외국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는 ‘한국학연구원’에 배정된 연간 지원금은 180억 원으로, 179명의 직원 한 사람당 약 1억 원씩 배정받은 셈이다. 하지만, 편지 하나면 되는 쉬운 일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바꿔주는 곳이 많은 만큼 안 바꿔주는 곳도 많습니다. 일본의 ‘다케시마 논리’에 대해 외국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배워 왔기 때문에, 왜곡된 사실은 이미 그들에게 진실이 되어 인식을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홍보를 하지 않은 결과죠. 하지만 끈질기게 하면 언젠가는 바꿔주리라 믿습니다.” ■ 반크로 달려온 8년 “제가 생각해도 잘한 일 같아요” 올해로 창립 8주년을 맞은 반크. 그 동안 반크는 ‘세계지도 동해 표기’ 등 두드러진 업적 외에도, 사이버 외교관 ‘반키’를 양성하여, ▲전국민 사이버 외교관 양성사업▲해외 e펜팔 친구 사귀기 운동 ▲오류 시정 프로젝트 사업 ▲국제협력 네트워크 구축사업 ▲사이버 국제학급 교류사업 ▲내 고장 포토제닉 사업 ▲한국 홍보자료 검색 엔진 구축사업 ▲한민족 네트워크 ▲영자신문 발간사업 등 우리나라 홍보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동안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박 단장은 뿌듯했던 감격의 순간을 꼽았다. “첫 번째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일본해를 동해로 바꿔준 일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일개 펜팔 사이트가 외교 사이트로 바뀌었으니까요. 두 번째는 반크에 가입할 당시는 평범한 학생이던 회원들이 훗날 UN에 들어가고, 해외로 유학을 가고, 취업이 잘되고, 각종 상을 받는데 이름을 올리는 등 희소식을 들을 때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가수 김장훈 씨가 1억 원을 기금으로 주면서 반크의 평생 홍보대사가 되어 주겠다고 한 일도요. 그는 반크를 국민단체화시키는 데 앞장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반크 사이트는 특히 초·중·고 학생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제일 처음 반크 동아리를 만든 사람은 박 단장이 아니라, 민족사관학교의 학생인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국내에는 120여 개에 달하는 반크 동아리가 활동하고 있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국적·성별·외국어 능력과 상관없이 사이버 외교관 반키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반키가 되려면 14단계 훈련과정으로 이뤄진 사이버 외무고시를 통과해야 한다. 사이버 외무고시를 보는 이유에 대해 박 단장은 “반키는 스스로가 대한민국의 외교관이라는 데에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영어를 유창하게 할 필요는 없어요. 아시아·아프리카에 사는 아이들도 영어를 잘 모르거든요. 영어는 반키로 활동하면서 스스로 배워 나가면 됩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반키로 활동하는 학생들은 사교육을 통해 주입식으로 영어를 공부하는 또래들보다 더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외국 친구와 펜팔을 하면서 잘못된 점을 고치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언어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반크 게시판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중학생 때 반크 회원이었는데, 인도로 유학을 간 학생이 있어요. 근데 그 학생이 인도학생 2,000명을 모아서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외쳤대요. 그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고 어찌나 위대해 보였는지 몰라요. 이 밖에도, 반크가 만든 자료를 가지고 해외에 가서 활용하고 외국인들을 설득하는 회원들이 많아요. 개인주의에 빠진 요즘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와 국가, 나아가 세계를 위해 봉사하는 꿈을 꿀 수 있도록 플랫폼을 구축한 일은 제가 봐도 잘 한 것 같아요. 한번은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유엔에 갔을 때, 그와 동행할 인턴 사원으로 뽑힌 학생이 유엔에 입성하게 된 계기에 대해 ‘중학생 때 반크 회원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신문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이 학생은 반크를 통해 우리나라 홍보에 힘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한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 애를 내가 키웠어요’라고 외치고 싶었어요(웃음). 뿐만 아니라, 작년에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가 반크 회원이 된 후 아프리카 친구를 사귀었는데, ‘아프리카가 불쌍하다’며 세계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를 보고, 그 부모가 사무실로 찾아왔어요. 부모는 학원 강사인데, 반크를 통해 아이가 변했다면서 휴직을 하고 아이와 함께 아프리카에 1년 간 봉사를 하러 간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이 변하니깐 부모도 변하고 정말 신기했습니다.”

■ 반크를 움직이는 힘…평범 속의 위대한 발견 반키가 되려면 어려운 사이버 외무고시를 통과해야 함은 물론, 매달 2만 원의 회비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반키들은 누구보다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한다고 박 단장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처럼 반크를 크게 하는 원동력에 대해 박 단장은 ‘평범함’을 꼽으며, “반크가 평범한 학생들의 펜팔에서 비롯된 지극히 평범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들의 세계를 향한 열망이 어느새 위대함으로 발전한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반크의 미션(mission)은 첫째, 전세계 60억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고, 둘째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650만 우리 민족을 하나로 모으고, 마지막으로 7,000만 대한민국 국민들의 꿈을 격려하고 함께 하는 것이다. 박 단장은 한국인의 안에 도사린 ‘나라사랑 DNA’를 하나하나 뽑아내는 일’이 반크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언급하며, “나라사랑 DNA는 모든 국민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한국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입니다. 저 역시 좋은 대학 출신도 아니고, 학창시절 반에서 꼴찌에 가까울 정도로 공부도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못하다가 펜팔을 통해 이렇게 해낸 겁니다. 평범함 속에서 열심히 하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동해가 일본해로 된 자료는 100만 개가 넘습니다. 한국이 중국의 식민지로 돼 있는 교과서도 많구요. 이를 해결할 사람이 외교관인데, 중국과 일본은 각각 7,000명, 5,000명의 외교관이 활동하는 반면, 한국은 3,000명밖에 안됩니다. 더욱이 일본은 ‘JAPAN’이라는 브랜드 때문에 한마디를 말하면 백 마디가 나가는 반면, 우리는 백마디 를 말해야 한마디가 겨우 나가는 현실입니다. 그럼 이 일을 누가 하죠? 외교관은 수적으로 열세고, 돈도 없고, 시간도 일본보다 50년이나 뒤졌는데요. 우리가 그들을 따라잡으려면 전 국민이 나서지 않으면 안됩니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그는 이어, “일본은 시스템은 잘 돼 있지만 사람들이 안 뭉치는 반면, 다행히 우리나라는 시스템은 엉망이지만 사람들의 열정은 대단합니다. 반크는 여러분의 열정을 폭발시킬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모든 국민이 4,000만 외교관이 되는 신화(神話)를 이루고 싶습니다. 4,000만 국민이 한 명당 다섯 명의 외국인을 사귀면 2억 명의 친구가 생길테고, 그 중에는 오바마도 앨 고어도 나와서 그들이 ‘한국은 내 친구의 나라’라며 한국에 투자하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라며 넘치는 포부를 덧붙였다. 박 단장은 하루도 쉬지 못할 정도로 찾는 곳이 많다. 한국을 홍보하는 일에 사생활을 잊은지 오래다. 그렇지만, 그는 “이 일이 너무 즐겁고, 행복합니다”라며 피곤함을 잊은 듯 해맑게 웃었다. 인터뷰가 끝나자, 박 단장은 외신에서 반크를 평가한 글귀를 보여주겠다며 전시관으로 서둘러 이끌었다. 반크 홈페이지 - www.prKorea.com 반크 전화번호 - 02) 921 - 3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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