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불황극복 전략이 기업의 최우선 과제로 부상했다. 올 상반기 중 한국 기업은 미국발 금융위기와 국제원자재가격 폭등에도 불구하고 양호한 경영실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세계 경제가 불황에 접어들자, 한국 기업의 수익성도 급격히 악화되는 등 경영위기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 기업의 수출의존도가 높고 글로벌 경제가 불황의 늪에 빠졌다는 점을 들어, 다가올 위기가 동아시아에 국한되었던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불황기에는 기업 체질에 맞는 ‘맞춤형 불황극복 전략’을 써야 하고, 재무구조가 탄탄한 국내 업종별 대표기업들은 지금이 공격경영에 나설 때라는 주장이 나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불황기의 기업대응전략’ 보고서를 통해 “올해 4분기(10∼12월)부터 한국 기업들은 불황에 직면했다”며 “그러나 한국 기업이 처한 상황은 글로벌 경쟁사에 비해 불리하지 않고 역량도 강하다”고 진단했다. 기업의 불황 대응 지표로 기업이 외부 충격에 직면했을 때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인 ‘유연역량’이 제시됐다. 삼성연구소의 보고서는 “재무 유연성과 소프트 경쟁력이 모두 뛰어난 기업은 불황기에 호황을 대비해 투자를 확대하는 전략이 유리하다”며 대표적 기업으로 신일본제철을 꼽았다. 반면, 두 가지 모두 떨어지는 기업은 생존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자금 확보와 제휴 파트너 물색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회사에 알맞은 전략을 제대로 못 써 상위 25% 기업 중 67.4%가 바뀌었다”며 “맞춤형 불황극복 전략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 기업에 미치는 불황 여파… 유연역량으로 극복해야 연구소는 기업에 닥친 불황의 여파를 충격과 유연역량(재무 유연성과 소프트 경쟁력)이라는 입체적 관점에서 분석해 주요 특징을 발견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기업의 유연역량 유형별로 적합한 불황극복 전략을 도출했다. ‘SERI S-R(Shock-Resilience)’ 모델을 통해 발견된 주요 특징은 첫째, 불황 직전 상위 25%에 속했던 기업 중 2/3가 불황기를 거치며 탈락하는 등 극심한 판도변화가 일어났다. 둘째, 고성과군(불황 직후 상위 25%)에 속했던 기업들이 받았던 불황의 충격강도는 저성과군(불황 직후 하위 75% 기업)과 비교할 때 비슷하거나 오히려 컸다. 셋째, 고성과군과 저성과군의 차이는 주로 불황 직전에 확보해둔 유연역량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넷째, 불황을 거치면서 성과로 구분한 4그룹 중 고성과군으로 부상하거나(저→고) 저성과군으로 추락한 경우(고→저), 두 그룹 간 유연역량은 유사했지만, 불황기 대응전략 차이가 성패를 갈랐다. 연구소는 불황기에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통한 현금 확보와 효율성 제고라는 기본전략과 함께 유연역량의 4가지 유형별로 맞춤형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 기업이 불황을 극복하고 글로벌 재계판도 변화의 주역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우선 불황의 파고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이 처한 상황이 글로벌 경쟁사보다 결코 불리하지 않고, 과거 몇 차례의 위기를 겪으면서 역량도 크게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대표기업의 유연역량은 글로벌 경쟁사와 대등한 수준이며, 재무구조와 실적도 우수한 것으로 분석됐다. 둘째, 경쟁환경과 기업의 유연역량을 고려한 ‘맞춤형 불황극복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한국 대표기업들의 경우 이미 자사의 내부역량 패턴에 맞춰서 불황극복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셋째, CEO는 불황기라는 현재의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Grand Designer’로서의 통찰력을 가지면서 위기극복을 위한 헌신과 협력의 조직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 삼성·현대, 유연역량으로 불황 맞서 이와 함께, 보고서는 국내 대표기업으로 꼽히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포스코 등이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도 손색 없는 ‘유연역량’으로 불황극복에 맞서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불황타개를 위해 긴축·구조조정 등의 기본전략과 함께 인수합병(M&A)을 통한 시장지배력 강화, 미래투자, 해외시장 개척 등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 이자보상배수가 155.7로 인텔(539.6)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높으며, 주가순자산비율(PBR)도 1.6으로 인텔(3.1)·노키아(4.1)를 웃도는 수준이었다. 보고서는 “삼성전자는 긴축경영을 통한 효율성 제고라는 기본전략과 전략적 유연성 확보에 주력했다”면서 “특히 미래 성장잠재력 확보를 위한 창조적인 연구개발과 시장중시형 마케팅 체제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포스코는 재무 유연성과 소프트 경쟁력 모두 글로벌 경쟁기업에 비해 대등하거나 우위에 있었다. 포스코의 이자보상배수는 55.5로 경쟁사인 아르셀로 미탈(12.0)과 신일본제철(26.7)을 앞섰으며, PBR도 포스코는 1.6으로 중간 수준을 기록했다. 보고서는 “포스코는 최근 재무 및 기술역량을 기반으로 공격적인 경영기조를 보이고 있다”면서 “경쟁사 대비 우월한 유연역량을 바탕으로 한 시장지배력 강화와 호황기에 대비한 소프트 경쟁력 보강이 불황극복 전략의 특징”이라고 밝혔다. 현대차도 재무 유연성이 다른 글로벌 경쟁사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현대차의 이자보상배수는 13.6으로 폴크스바겐(2.6), GM(-8.7)보다 우수했으며, PBR도 0.9로 도요타(1.3)나 폴크스바겐(1.8)을 뛰어넘었다. 보고서는 “현대차는 불황의 충격에 민감한 업계 특성상 긴축경영 등 효율화에 힘쓰는 한편 해외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브랜드 및 제품 경쟁력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이어 “한국 기업이 역량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면 글로벌 재계판도 변화의 주역으로 부상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맞춤형 불황극복 전략을 구상하는 한편 CEO가 통찰력을 갖고 헌신과 협력의 조직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