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 <드래곤볼>(ドラゴンボ-ル)이 할리우드 영화 <드래곤볼 에볼루션>으로 재탄생됐다. 1984년부터 일본의 만화잡지 <소년점프>에 연재된 <드래곤볼>(ドラゴンボ-ル)은 중국 명대의 장편소설 <서유기>(西遊記)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500여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만화이다. 손오공이 부르마·야무치·무천도사 등과 함께 세상을 바꿀 엄청난 힘을 지닌 전설의 드래곤볼을 찾아가면서 겪게 되는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전 세계 2억 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40억 원의 수익을 기록한 <드래곤볼>은 세 번의 TV 시리즈, 21편의 극장판, 25종의 게임으로 옷을 바꿔 입으며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영화는 미국 유명 TV 시리즈 <엑스파일>의 각본가이자, 영화 <디 아더스> <데스티네이션> <더 원> 등에서 각본 및 감독·제작 등을 맡은 제임스 왕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는 홍콩에서 태어나 열 살 때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했다. 그의 동서양을 넘나든 성장기는 <드래곤볼 에볼루션>에도 반영되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 7인 가운데 4인이 동양계로, 한·중·일 배우들의 선전이 볼만하다. 영화는 18세의 평범한 고등학생인 손오공(저스틴 채트윈)이 사실은 자신이 지구를 구할 유일한 존재임을 깨닫고, 무천도사(주윤발)와 부르마(에미 로섬)·야무치(박준형)·치치(제이미 정)와 힘을 합쳐, 지구를 지배하려는 악당 피콜로(제임스 마스터스)에 맞서 7개의 드래곤볼을 모아 지구를 지킨다는 내용이다. 영화가 만화와 다른 점은, 먼저 만화가 손오공의 기이한 탄생으로부터 시작되는 반면, 영화판 손오공은 18세의 평범한 고등학생이며 더군다나 파란 눈의 서양인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부루마와 피콜로도 백인이다. 무천도사는 대머리에 거북의 등껍질을 등에 메고 울퉁불퉁한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만, 영화판 무천도사는 얼핏 봐도 50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팡이보다 권총이 더 어울리는 건장한 체격이다. 물론 거북의 등껍질도 찾아볼 수 없다. ‘드래곤볼’의 제목과 여의주, 의상이 아니면 <드래곤볼>이 원작인지도 모를 정도다. 원작이 있는 영화는 원작 팬의 관심을 바탕으로 관객동원이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그들의 까다로운 욕구를 포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질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드래곤볼>은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장편만화여서 겨우 120여 분의 스크린에 담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와 관련, 서울 장충동의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영화 <드래곤볼 에볼루션> 기자회견에서 제임스 왕 감독은 “원작 속에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에 모든 이야기를 영화에 담기란 쉽지가 않다”며 “영화를 만들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드래곤볼>을 아는 만화 팬뿐 아니라 만화를 알지 못하는 전 세계인에게 <드래곤볼>을 소개하고 많은 팬층을 확보하자는 목표였다. 특히, 젊은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전체 스토리 가운데 손오공의 이야기를 부각시켰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서울 소공동의 롯데 에비뉴얼에서 가진 영상 프리젠테이션에서 그는 ‘에볼루션’은 “만화가 영화로 진화(evolution)됐다는 의미”라고 소개했다. 영화 <드래곤볼 에볼루션>은 3월 12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전 세계 첫 개봉된다. ■ 15년 만에 한국 땅 밟은 주윤발 <드래곤볼 에볼루션>은 홍콩의 대표배우 주윤발이 무천도사 역으로 캐스팅되며 화제가 된 영화이다. 주윤발은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 <첩혈쌍웅> <첩혈속집> 등 90년대의 홍콩 느와르 영화를 통해 국내에서도 유명한 배우이다. 긴 바바리 코트에 얼굴의 반을 가리는 큰 선글라스, 입에 살짝 문 성냥개비 등은 주윤발의 트레이드마크. 홍콩 느와르 영화를 패러디할 때면 늘 등장하는 코드이다. 주윤발은 국내에서는 과묵하고 진지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배우이다. 하지만 그가 이번 영화에서 맡은 ‘무천도사’는 하와이풍의 셔츠를 즐겨 입고, 예쁘고 글래머인 여자를 밝히는 한마디로 ‘변태 할아범’. 무천도사 역 출연을 확정했다는 소식에, 일각에서는 “시나리오를 보는 눈이 이상해졌다” “영화 선택 배후에는 아내가 있다” 등의 추측도 나왔다. 영화 출연 이유에 대해 주윤발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은 바로 아내”라며 “그는 나의 매니저이자 조력자이고 용돈을 주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이 영화가 내키지 않았지만, 아내의 권유로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의 이번 내한은 1991년 홍콩 액션 영화로 한국을 방문한 이후 15년 만이다. 홍콩 느와르 영화 출연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출연 제의는 많이 받았지만, 현재 홍콩은 영화의 제작 환경이 많이 침체됐다”며 “제작 환경이 개선되고 여러 나라와의 공동 제작이 활성화된다면, 그리고 나의 아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좋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주윤발이 아내에게 휘둘려 산다’는 항간의 소문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이다. ■ 자랑스러운 한국 혈통 박준형ㆍ제이미 정 <드래곤볼 에볼루션>의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7명이다. 이 중 동양인은 4명. 이들 가운데 2명이 한국의 피를 물려받은 한국계라는 사실은 한국인으로서 자부할 만하다. 영화 속 핵심 인물 중 하나인 야무치 역을 맡은 박준형은 인기 그룹 god의 리더이자 래퍼이다. god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활동하는 동안 600만 장이 넘는 앨범 판매량을 기록하고 국내 대표 음악 시상식에서 본상 및 대상을 휩쓰는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대표 그룹이다. 국내에서도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쌓은 박준형은 미국에서 자라고 배운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할리우드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비와 함께 출연한 <스피드 레이서>에서 악랄한 야쿠자 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그가 차기작으로 택한 영화가 바로 <드래곤볼 에볼루션>이다. 재미 교포 2세로 할리우드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여배우 제이미 정. 그녀는 ABC의 <사무라이 걸>에서 주인공 ‘헤븐’으로 나와 연기력은 물론 수준급의 무술 실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2007년에 흥행한 코미디 영화 <척 앤 래리>와 다수의 TV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하며 커리어를 쌓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미 ‘제2의 김윤진’으로 불리며 기대주로 주목받고 있는 배우이다. 평소 골프·사이클·수영·육상 등 여러 종목의 스포츠를 통해 탄탄한 몸매와 탁월한 운동 감각을 가진 제임스 정은 이번 영화에서 무술 소녀 치치로 무술 실력을 맘껏 뽐냈다. 부유한 가문 출신이자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It girl’ 치치는 손오공이 짝사랑하는 소녀이다. 치치는 지구를 구원할 영웅으로 거듭나는 손오공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드래곤볼을 모으는 대열에 합류한다. 2월 18일 기자회견에서 할리우드 스타의 신분으로 참석한 두 사람의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 톱 할리우드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농담을 주고받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긍심마저 느끼게 한다. 특히 박준형은 전날 입국할 때 공항에서, 그리고 이날 기자회견에 오빠부대까지 몰고 와 대한민국 톱스타임을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확인시켰다. 박준형은 “그들도 내가 가수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한국에 와서 내가 생각보다 더 많이 알려진 가수라는 사실을 알고 모두들 놀라는 눈치였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제임스 정은 “평소 한국에 팬이 많다고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다녔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소감을 전하며 “한국에 온 것은 두 번째인데, 너무나 흥분되고 자랑스럽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