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과 이주노동 등으로 이주민이 증가하면서 우리나라도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급격히 변해 가고 있다. 한국인과 외국인 배우자로 구성된 가족을 뜻하는 다문화가정은 불과 10년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2020년에는 다섯 가정 중 한 가정은 다문화가정이 될 거라는 통계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오래된 관념 때문에 이들을 온전한 이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은 취학연령이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갈등을 하고, 같은 한국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생김새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이방인 취급을 받는 등, 다문화가정의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원연합회와 소리나루가 주관하는 ‘문화로 함께하는 희망 프로젝트’ 다문화 국악 뮤지컬 <러브 인 아시아>(Love in Asia)는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 이해하는 장을 만들기 위해 마련됐다. 그 첫 번째 공연이 2월 21일 오후 3시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성황리에 개막됐다. ■유 장관, “국내 거주 외국인 100만 명, 함께 손잡고 나아갈 때” 이날은 유인촌 문광부 장관과 한나라당 이경재·김금래 의원, 배국환 감사원 감사위원, 탤런트 양미경, 시게이에 도시노리 주한 일본대사, 루이스 크루즈 필리핀대사, 무라드 알리 파키스탄 주한 대사 등을 비롯하여 400여 명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공연 후 달오름극장 로비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유 장관은 “다문화시대에 걸맞게 아주 시의적절하고 의미 있는 공연”이라고 평가하며 “우리나라는 이제 10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어울려 사는 국가가 됐다. 이제는 우리 문화도 나눠주고 그들의 문화도 받고, 또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며 함께 손잡고 나아갈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비록 공연이지만 다문화사회의 정착을 위해 앞으로도 이런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라는 계획도 덧붙였다. 루이스 크루즈 필리핀 대사는 “<러브 인 아시아>는 사회·정치 이슈 등을 노래와 춤, 힘찬 메시지로 부드럽게 전달해 삶과 예술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준 공연”이라며 “다문화가정의 문제점을 용기 있게 전달한 점도 희망의 불빛이 된다”고 말했다. 무라드 알리 파키스탄 대사는 “이번 공연이 이주민과 한국인, 또 다문화가정을 포함한 한국사회의 조화와 공동체의식을 갖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금래 한나라당 중앙여성위원장은 “최근 다문화가정이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이 우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시설과 프로그램들은 여전히 부족한 현실”이라며 “앞으로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교육 및 문화적 혜택에서 소외되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악 뮤지컬 <러브 인 아시아>는 3월 29일 충북 충주시 충주문화회관 공연을 끝으로 지방 10개 도시에서 순회 공연된다. ■ [공연 리뷰] 피부색ㆍ언어는 다르지만 모두가 한 가족 배경은 전라도 고흥의 신곡리 청기와집. 일찍이 남편을 배 사고로 잃고 혼자 자식을 키워낸 한국인 시어머니 강진댁은 필리핀ㆍ연변ㆍ베트남에서 시집온 세 며느리들이 하나같이 못마땅하다. 노총각인 세 아들을 이들에게 장가보낼 때만 해도 “다른 건 필요 없으니 결혼만 해다오”라는 소박한 심정이었지만, 말도 통하지 않고 아들도 못 낳는 며느리들이 답답하고 얄밉다. 그에게는 만삭인 막내며느리 베트댁이 유일한 희망이다. 며느리들도 할 말이 많다. 성미가 불같이 사나운 시어머니 앞에서는 '찍' 소리도 못하는 며느리들은 같은 처지에 놓인 며느리들과 시집살이의 고통, 외로움,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을 털어놓으며 희망을 찾고자 한다. 각자의 언어로 노래를 부르며, 한국에 시집와 “남편 방귀만 달더라”는 진리를 깨달은 며느리들의 모습이 여느 한국인 며느리들과 다를 바 없다. 강진댁은 딸 수미가 교수 사윗감과 함께 인사를 하러 온다는 연락을 받고 행복해한다. 세 아들과 며느리에게서 충족하지 못한 감정을 사위에게 느껴보고 싶다는 심보다. 강진댁은 세 며느리에게 잔치 준비를 단단히 시키고, 세 며느리는 오랜만에 웃음꽃이 핀 강진댁을 보며 함께 기뻐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강진댁은 수미가 데려온 사위가 흑인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며느리들은 집을 뛰쳐나간 강진댁을 찾아 사방을 헤맨다. 강진댁은 혼령이 되어 모습을 드러낸 남편에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고 마음을 비운다. 더욱이 베트댁의 출산이 임박해 오고 흑인 사윗감에게 도움을 받자, 분통으로 가득했던 마음 또한 눈 녹듯 사라진다. 또, 베트댁이 그토록 바라던 아들을 낳아주자 강진댁의 기쁨은 배가된다. 국악과 현대음악이 조화를 이뤄 낸 신명이 나는 공연이었다. 강호중 추계예술대 교수와 소리나루의 이영태 단장이 각각 총감독과 연출을 맡았다. 대본은 양혜란 분당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병원에서 만난 다문화가정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집필했기 때문에 대사와 상황에서 리얼리티가 묻어났다. 외국인 며느리들을 배려한 쉽고 코믹한 상황 설정은 웃음을 유발했다. 특히, 베트남과 몽골의 노래가 흐를 때 관객의 호응은 극에 달했다. 노래를 아는 관객, 모르는 관객 모두가 박수를 치고 리듬을 탔다. 그리고 배우들이 객석으로 내려와 관객과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따스한 말을 건네는 광경에서는 다문화가정 속 며느리들의 외로움을 진심으로 어루만져주는 정(情)이 느껴졌다. 이날 공연장에는 부모의 손을 잡고 온 다문화가정의 아이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하지만 공연은 그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경상도ㆍ전라도 사투리와 판소리 언어 등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내용 면에서 한국인 시어머니와 외국인 며느리 사이에 본격적인 갈등이 생기고 그들이 나서서 해소하는 이야기가 없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또, 한국인 시어머니가 외국인 며느리를 온전한 내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단지 아들을 낳아줬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당황스럽다. 이들이 서로의 불만을 툭 터놓고 서로를 이해하고 현실의 돌파구를 찾는 대안을 담은 내용이 있었다면 더 마음에 와 닿는 공연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다문화정책 사업이란? 국내 체류 외국인 수가 100만 명이 넘는 시대를 맞이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주민의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적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월부터 3월 말까지 우리 이웃인 다문화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다문화 국악 뮤지컬 <러브 인 아시아>의 지역 순회공연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다문화사회 이해 증진을 위한 다큐멘터리 공익광고 제작, 이주민의 문화적 적응을 위한 한국어 문화이해 교육사업, 지역 특성을 반영한 이주민과 지역 주민의 상호 문화교류를 돕는 다문화 콘텐츠 개발, 이주민이 직접 초등학교에 다문화 강사로 활동하는 다문화 강사 양성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