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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원태연, 감독됐어요”

권상우ㆍ이보영 주연 정통 멜로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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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08호 이우인⁄ 2009.03.10 13:36:28

정통 멜로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90년대 초에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등 감성적인 시집과 <나의 바램이 저 하늘에 닿기를>(이동건),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유미), <세상 끝에서의 시작>(김민종),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장나라),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s#arp) 등을 작사한 젊은 시인 원태연의 감독 데뷔작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하지만 감상적인 시를 쓰던 머리로 영화 연출은 쉽지 않았을 터. 원태연 감독 역시 “영화가 글을 쓰는 일보다 더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3월 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의 메가박스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원 감독은 “시는 순간을 잡아내어 쓰는데, 완성된 시를 보면 행복한 기분이 든다. 반면, 영화는 완성본을 보고 있으면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이 떠오른다”며 “육체적·정신적으로도 더 고됐다. 또, 시는 나 하나만 컨트롤하면 되지만, 영화는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과 한 호흡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들의 호흡을 이해하지 못할 때는 하늘이 노래진 기분마저 들 정도다. 그렇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13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다는 원 감독은 이날 여느 감독 못지 않았다. 허스키한 보이스로 툭 내뱉는 대답은 시인이라서 말도 시적일 것이라 했던 기대를 단번에 날렸으며, 대충 손질한 헤어스타일과 있는 대로 걸친 듯한 가죽 재킷은 시인보다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는 감독에 가까웠다. 90년대에 닭살 돋는 시어로 뭇 여성의 시선을 사로잡던 20대의 젊은 시인은 간곳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지난해에 돌연 손태영과 결혼하면서 유부남이 된 ‘한류 스타’권상우가 결혼과 출산 이후 처음 선택하는 작품이어서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흥행한 코미디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으로 충무로의 스타로 떠오른 이보영, SBS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 <온에어>로 ‘버럭 범수’라는 타이틀까지 얻은 ‘훈남 배우’ 이범수, 최송현 KBS 전 아나운서가 전격 하차하면서 배역을 따낸 모델 출신 연기자 정애연 등이 출연한다. 한편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김범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이승철), <듣고 있나요>(이승철), <보고 싶은 얼굴>(남규리) 등 영화 OST도 화려하다. ‘씨야’의 남규리·이한위·정준호·이승철 등의 카메오 출연도 극의 재미를 유발한다. ■이 영화, 정말 슬픔보다 더 슬플까? 영화는 서로 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두 남녀 케이(권상우 분)와 크림(이보영 분)의 슬픈 러브 스토리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크림을 사랑하게 된 완벽한 남자 주환(이범수 분), 주환의 약혼녀지만 케이에게 관심을 갖게 된 제나(정애연 분)가 이들 사이에 얽힌다. 케이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라디오 PD이며, 크림은 가족을 교통사고로 잃고 혼자가 된 작사가이다. 두 사람은 고아이면서 라면을 좋아하고 학교를 싫어하는 공통점으로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고등학생 때부터 이상한 동거를 시작한다. 이쯤 되면 남녀 사이에 뭔가 썸씽(something)이 있을 법하지만, 두 사람은 남녀로서 고교 시절의 뽀뽀 이상 진도를 나간 적이 없다. 이유가 뭘까? 두 사람이 서로를 남자 혹은 여자로 보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다. 둘은 서로를 자신보다 더 위하고 사랑한다. 확실한 건 크림이 케이에게 다가가는 만큼 케이는 거리를 둔다는 사실. 그의 머릿속에는 암에 걸려 오랜 기간 투병생활을 하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아버지가 자리해 있다. 게다가 케이는 아버지의 암 유전자를 90% 이상이나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케이는 크림을 혼자 두고 죽게 될 자신의 운명을 한탄할 시간조차 느낄 수 없다. 자신의 빈자리로 인해 또다시 혼자가 될 크림의 외로움이 죽음보다 더 두려운 일이기 때문. “어떻게 하나” 하고 고민하던 찰나, 크림이 “사랑에 빠졌다”는 희소식(?)을 들려준다. 크림이 사랑에 빠졌다던 상대의 이름은 주환이다. 주환은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치과의사에다 크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진실한 남자였다. 케이는 주위의 평판과 흥신소를 통해 주환이 정말 좋은 사람임을 알게 되고, 주환의 약혼녀 제나의 불륜 현장을 목격해 제나에게 주환과 파혼할 것을 요구한다. 사랑 따윈 믿지 않는 사진작가 제나는, 사랑하는 여인 크림을 주환과 결혼시키기 위해 자신에게 파혼해 달라고 부탁하는 케이가 궁금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를 도와주면서 케이와 크림 사이에 진짜 사랑이 있음을 깨닫는다. 영화는 ‘벙어리 사랑’(케이), ‘눈먼 사랑’(주환), ‘외톨이 사랑’(크림), ‘반쪽 사랑’(제나), 이 네 명이 네 가지 사랑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원태연 감독은 “영화 속 등장인물의 사랑을 통해 외로움과 희생을 드러내고 싶었다”는 기획의도를 밝혔다. ■소설과는 다른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주환의 절제된 사랑 아쉬워 영화보다 먼저 출간된 소설은 네 남녀 케이ㆍ크림ㆍ주환ㆍ제나 각각의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다른 사람을 관찰하면서 느낀 생각 등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이는 츠치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가 쓴 두 권으로 이뤄진 일본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처럼 완독하고 나면 흩어졌던 이야기가 한 개로 맞춰질 때의 희열까지 느끼게 한다. 하지만 영화는 주인공들의 모습과 대사를 순간 캡처한 듯 스크린에 무자비하게 띄운다. 분명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아름다운 대사임에 틀림없지만, 영화는 관객이 대사를 음미할 시간도 없이 다른 장면으로 넘기며 여운을 빼앗는다. 또 소설은 크림을 향한 주환의 외사랑이 애절하고 안타깝게 그려진 반면, 영화는 주환의 사랑을 절제시켰다. 이에 대해 원 감독은 “소설처럼 주환의 이야기를 작은 감정까지 표현하기에는 케이와 크림의 감정이 다칠 우려가 있었다”고 주환의 비중을 줄인 이유를 밝히며 “주환이 있다는 느낌만 주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 속의 주환에게서는 크림에 대한 사랑의 느낌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주환은 크림과 커피 자판기 앞, 치과, 와인 바 등에서 세 번의 강렬한 만남을 갖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사랑’보다 “이 여자 뭐냐?”는 듯한 ‘의심’이 더 강하게 느껴 진다. 소설을 먼저 읽고 크림과 케이의 사랑도 슬프지만 어찌 보면 이들에게 이용만 당한 주환의 첫사랑을 더 안쓰럽게 생각했던 독자로서는 이 영화가 2%를 뺀 공간처럼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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