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름 내걸고 책 판매에 뛰어든 스타들
■작가가 된 스타들
=연예인들이 가장 쉽고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분야는 바로 에세이이다.
비교적 전문성을 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체·작법 등도 자유롭고, 그림이나 사진으로 쪽수를 채워도 티가 나지 않는다.
남성 5인조 인기 그룹 빅뱅(BIGBANG)은 에세이집 <세상에 너를 소리쳐>(부제: 꿈으로의 질주, 빅뱅 13, 140일의 도전)를 1월 28일 출간했다. G-Dragon·태양·T.O.P·대성·승리 다섯 멤버들의 꿈에 대한 열정과 좌절, 연습생 시절의 고생과 미래에 대한 고민 등 각 멤버들이 틈틈이 써내려간 경험과 생각을 기록했다. 부록으로 빅뱅 멤버들의 친필 메모와 전신사진이 인쇄된 빅뱅 스케줄러도 포함돼 있다.
<가족오락관> <도전! 골든벨> <세상은 넓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사랑받아 온 손미나 KBS 전 아나운서는 1년 간 스페인에서 보낸 젊음에 대한 기록을 담은 기행서 <스페인 너는 자유다>와 도쿄의 다양한 풍경들을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담은 여행 에세이 <태양의 여행자>(부제: 손미나의 도쿄 에세이)를 발표하며 아나운서가 아닌 성공한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모델 출신 영화배우 배두나는 취미인 사진 촬영을 살려 2006년부터 매년 차례대로 여행 에세이 시리즈 <두나 S 런던놀이> <두나 S 도쿄놀이> <두나 S 서울놀이>를 펴냈다. 직접 찍은 사진과 사진에 담지 못한 감성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저작이다.
그룹 ‘코요태’의 멤버이자 사진작가 ‘빽가’는 포토 에세이 <당신에게 말을 걸다>를 통해 사진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드러냈다. 어릴 때부터 사진작가가 꿈이었지만 고등학생 때 집안 사정으로 좌절된 사진에 대한 욕망과 가수로 성공한 후 한 걸음 한 걸음 사진작가의 인생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을 담은 그의 에세이를 통해 독자는 댄스 그룹 빽가가 아닌 사진작가 백성현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그룹 클래지콰이와 이바디, 북 칼럼니스트 등 이력이 다채로운 가수 호란은 33편의 서평과 21편의 음악 글을 통해 책과 음악을 넘나들며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풀어헤친 첫 번째 산문집 <호란의 다카포>로 지난해 3월 작가로 데뷔했다.
연예인 마당발이자 인맥관리의 귀재로 통하는 박경림은 폭넓은 인맥을 발휘하여 <박경림의 사람>(부제: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행복 에세이)을 펴냈다. 책을 통해 그는 역경을 딛고 현재의 자리에 오기까지 자신이 포기할 수 없었던 꿈과 그 꿈을 키워준 사람들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연예계의 천사 잉꼬부부로 알려진 션·정혜영 부부는 자신들의 미니홈피에 올렸던 내용을 토대로 포토 에세이집 <오늘 더 사랑해>를 발표하며 부부애를 과시했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은 언론과 미니홈피에 공개하지 않았던 편지, 특별한 육아법, 삶에 대한 묵상, 가족들의 일상 등을 사진과 함께 담았다.
가장 최근에 여행 에세이를 펴낸 스타는 영화배우 신민아. <프렌치 다이어리>는 신민아가 평소 좋아하던 프랑스 영화를 테마로 영화의 발자취를 따라 프랑스 곳곳을 여행하면서 그녀가 직접 쓴 여행의 단상들을 담았다. 단순한 프랑스 여행이 아닌, 배우로서 프랑스의 영화와 문화를 즐겁게 경험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신민아만의 독특한 시선과 따뜻한 감성으로 풀어 내려간다. 또한 패셔니스타 신민아가 소개하는 프랑스의 감각적인 패션과 뷰티 스타일 그리고 파리지앵들을 만난 특별한 이야기들도 눈길을 끈다.
= 유창한 외국어 실력으로 번역서를 낸 스타도 눈에 띈다.
<엄마에게 가는 길>(부제: 일곱 살에 나를 버린 엄마의 땅, 스물일곱에 다시 품에 안다)은 아나운서에서 여행 작가로 입지를 굳힌 손미나 KBS 전 아나운서가 2월 2일 펴낸 번역서이다. 손미나는 고려대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하고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학에서 언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책은 그가 스페인 유학시절에 눈물을 흘리며 밤새 읽고 꼭 번역하리라 했던 한 소녀의 자전적 에세이이다.
호란은 미국의 그래픽노블 <에밀리 더 스트레인지>를 번역했다. 한국어판의 검수를 맡은 에밀리의 크리에이터 로브 레거는 자신이 본 에밀리 번역판 중 가장 완벽한 버전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호란은 에밀리 시리즈 전 권의 번역을 맡아 앞으로도 독자들을 찾을 예정이다.
= 남다른 상상력과 문학적 재능으로 소설가가 된 스타도 있다.
서울대 출신 싱어 송 라이터 이적은 자신의 홈페이지 ‘夢想笛-liijuck.com’에 공개한 판타스틱 픽션들 중 열두 편을 모아 엮은 <지문 사냥꾼> <몽상만화 지문사냥꾼>을 잇따라 출간했다. 이 소설을 통해 이적은 ‘고딕풍 환상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7일 출간한 <당신의 조각들>은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리더 타블로의 첫 소설집이다. 미국의 명문 스탠포드 대학교 재학시절인 1998년부터 2001년 사이에 쓴 단편들 가운데 열 편을 골라 담았다. 타블로는 데뷔 당시 스탠포드에서 3년 만에 창작문예학으로 학사와 영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천재로 주목받았다. 타블로의 소설은 그의 교수이자 미국의 대작가 토비아스 울프가 극찬한 바 있다. 2월 3일에는 이 소설의 영문판 도 출간됐다.
가수 이적·타블로처럼 소설가로서 재능을 발휘하는 연예인도 있다. 최근에는 KBS2 월화극 <꽃보다 남자>의 여주인공 구혜선이 3월 중에 소설을 출간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알려져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는 외모·연기·작곡·작사·영화 시나리오 작가·영화감독에 이어 소설까지 다양한 재능으로 네티즌 사이에서 진정한 ‘엄친딸’(엄마 친구 딸)로 불리고 있다.
= 이 밖에도 어학서·경영서·컴퓨터 관련 서적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한 스타도 있다.
박경림은 뉴욕 유학 시절의 영어 공부 경험을 살려 영어학습서 <박경림 영어 성공기>와 영어회화책 <드라마처럼 재미있는 Story Engl 박경림의 뉴욕 스캔들. 1> 을 펴냈다.
또 일본 활동 2년 만에 NHK 진행자에 발탁된 개그우먼 조혜련은 지난해 12월 일본어 왕초보 교재 <조혜련의 박살 일본어>를 출간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에게 배운 절약 습관과 각종 아르바이트로 직접 대학 등록금을 벌었을 정도로 돈에 관한 한 똑똑한 방송인 현영은 지난해 재테크 서적 <현영의 재테크 다이어리>와 <현영 언니가 들려주는 똑똑한 경제 습관>을 집필해 ‘재테크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2001년 손미나 전 아나운서는 인터넷 초보에서 전문가까지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인터넷 활용 지침을 알기 쉽게 설명한 책 <손미나의 인터넷에 폭 빠지기>를 낸 바 있다. 여행서적과 번역서 그리고 인터넷 관련 서적까지 정말 팔방미인이 따로 없다.
■스타들, 어떻게 책 냈을까?
방송 출연·연예 활동 등으로 잠잘 시간도 모자랄 것처럼 보이는 스타들이 책을 냈을 때 이런 생각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스타가 책 낼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와 바쁜 와중에 책을 쓸 여유가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대부분 스타의 책은 출판사의 제안에 따라 이뤄진다.
빅뱅의 에세이 <세상에 너를 소리쳐>는 빅뱅의 오디션부터 데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접한 ‘쌤앤파커스’ 측의 제안에 의해 이뤄졌으며, 빽가의 포토에세이 역시 인터넷에서 사진과 관련된 빽가의 사연을 접한 ‘북하우스’에서 먼저 접촉을 했었다. 북하우스 관계자는 “백성현 씨 말로는 그 즈음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제안을 많이 받았는데 자신은 아직 대중에게 사진을 보일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고사했었다”면서 “하지만 다시 카메라를 잡기까지 사진과 관련된 그의 인생 스토리에 초점을 맞춘 우리 출판사의 기획 의도와 맞아 같이 작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재테크 서적을 낸 현영 역시 출판사에서 <경제비타민> 등에 출연한 현영의 재테크 이야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 현영에게 접촉했다. 현영은 출판사의 구두 제안에 “기획안을 보고 하겠다”고 꼼꼼하게 요구했고, 기획안을 훑어본 뒤에야 승인했다.
타블로의 소설은 방송을 통해 타블로가 예전에 학교에 다닐 때 써둔 소설이 있다는 이야기를 접한 출판사 대표가 출간을 원해 원고를 보여 달라는 제안을 했고, 무조건 책을 내주겠다는 여타의 러브콜을 뒤로하고 “먼저 소설을 보겠다는 이 출판사의 제안은 내게 더 믿음을 줬다”고 말했다.
■스타들이 책을 내는 이유
확실히 일반인과 다른 판매 효과가 있기 때문에 출판사들이 더 많이 접근하는 것 같다는 시각도 있다.
1월 28일 출간된 빅뱅의 에세이는 한 달 만에 무려 27~8만 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현영의 재테크 다이어리>는 15만 부를 기록하며 역시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지난해 종합 4위(예스24 기준)를 기록하는 성과를 이룩했다. 현영의 두 번째 재테크 책인 <현영 언니가 들려주는 똑똑한 경제 습관>은 오히려 역으로 서점 쪽에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고 작업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9일 출간한 타블로의 소설집 <당신의 조각들>도 16만 부가 넘게 팔렸으며, 지난해 5월 23일 출간한 션·정혜영 부부의 에세이도 10만 부, <박경림의 영어성공기>도 10만 부 이상 팔렸다. 에세이 <박경림의 사람>은 발매 3개월 만에 5만 부가 팔렸으며, 스테디셀러로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저자가 연예인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언론·방송 쪽에서 관심을 가져준다는 홍보효과도 있으며, 방송PR·강연·사인회 등 다방면으로 적극적인 홍보를 하는 스타도 많아 비용절감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연예인의 입장에서 보면, 책을 낸 스타라는 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더하고, 영역 밖의 일에 도전함에 있어 소란스러우면서도 진지하게 알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기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유능한 아나운서에서 작가로 직업을 전환한 손미나처럼 말이다.
■스타 책 출간 붐…부정적인 시각도
이와 관련, 소설가 김탁환은 “요즘 스타에게는 원 소스 멀티유즈(OMSU)를 요구하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로 눈을 돌리는데, 최근에는 출판계로도 그 영역이 확대되면서 나타난 현상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한국출판연구소의 백원근 책임연구원은 “연예인들이 쓰는 책은 인기가 있기 때문에 출판사 쪽에서 많은 권유가 이뤄진다. 더욱이 불황기에는 출판사들이 보다 상품성 있는 작품을 요구하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스타가 책을 낸다고 해서 꼭 잘 팔리는 건 아니다. 편집자들 사이에서 연예인의 책은 오히려 환영받지 못한다고 한다. 잠시 잠깐 인기몰이를 할 수 있는 단타 상품으로 취급받을 때도 있다. 또 일반 작가들보다 연예인과 작업을 하게 되면 고생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편집자에게는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라고 한다.
한 편집장은 “연예인이 책을 냈다고 해 우습게 봤는데 그렇지 않더라”라는 등의 리뷰가 많은 것처럼, 연예인이 쓴 책에는 이 같은 독자들의 선입견도 단점으로 작용해 판매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예인이기 때문에 보통 작가들이 약 10% 받는 인세를 더 높게 요구한다든지, 보통 100~200만 원 지급되는 선인세를 더 많이 요구한다든지 하는 어려움, 여기에 완성품을 만들 때까지 적극적으로 임하는 연예인이 있는가 하면 부실한 자료를 주면서 좋은 책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즉 책을 쉽게 생각하는 연예인·매니지먼트사로 인해 힘들 때도 많다.
백원근 책임연구원은 “보수적인 시각에서 볼 때, 연예인의 책을 내는 일은 점잖은 출판사가 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며 “일각에서는 연예인 책 때문에 그나마 팔리던 책도 안 팔리고 출판문화를 악화시킨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만인 저자의 시대’가 되면서 연예인이기 때문에 책을 쓰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은 없지만, 이왕이면 김혜자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처럼 세상의 관심을 받는 연예인이라는 책임의식을 갖고 기아문제 등 사회적 문제를 풀어내는 쪽으로 좀 더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우인 jarrjee@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