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놈 목소리>(2007)와 <추격자>(2008)의 공통점은 뭘까? 모두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라는 점이다. 영화 <실종>은 두 영화에 이어 2009년을 대표할 충격의 리얼리티 스릴러물이다. 2007년 여름 어느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영화는 죽음보다 더 참혹하고 무서운 것이 ‘실종’이라는 명제를 화두로 던지며, 연쇄살인마와 그에 맞서는 평범한 여성의 쫓고 쫓기는 심리·육체 싸움을 아주 잔인하게 그렸다. 특히, <실종>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지성파 배우 문성근의 파격적인 변신이다. 그가 맡은 연쇄살인마 판곤은 “나쁜 놈은 죽어도 싸”라는 말을 퍼붓고 싶을 정도로 악(惡)만 가득 찬 인물이다. 일말의 동정도 연민도 그 어떤 좋은 감정은 섞을 수 없을 만큼 아주 극악무도하다. “악역은 절대 멋있어선 안 된다”는 김성홍 감독과 문성근의 관점이 반영됐다. 실종된 동생을 찾아 연쇄살인범과 맞서는 겁 없는 언니 현정은 추자현이 맡았다. 추자현은 <사생결단>(2006)에서 마약 중독자로, <미인도>(2008)에서는 당대 최고의 기녀 ‘설화’로 평단과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번 영화는 사실상 그의 첫 주연 작이다. 판곤에게 잔인하게 희생되는 여대생 현아는 신인배우 전세홍이 분했다. 전세홍은 월드미스유니버시티 출신으로서 미모와 건강미를 겸비했지만, <실종>에서 그는 무서운 살인마 앞에서 곧 꺾일 한 송이 꽃처럼 나약함을 잘 표현했다. 이들을 인간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잔인하게 옭아맨 김성홍 감독은 <투캅스> 시리즈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연출자이다. 이후 <손톱> <올가미> <세이 예스> 등 공포 스릴러 영화를 사실적으로 연출했다. 김성홍 감독은 “법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가족을 허망하게 잃은 유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대변해주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3월 19일 개봉.
■ “감독·배우에게 듣는다”…영화 <실종> 언론시사회 12일 서울 종로3가의 서울극장에서 열린 영화 <실종>의 언론시사회. 이날 시사 후 가진 기자간담회는 김성홍 감독·문성근·추자현·전세홍 등이 참석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연쇄살인마 연기 따로 공부했나? 전에는 범죄심리학 관련 책도 읽고 따로 역할에 대해 공부했었는데, 연기 경력이 쌓이다 보니 인물의 핵심을 찾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판곤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일이면 도덕·윤리 등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인물임을 핵심으로 잡고 그 위에 살을 붙였어요. 특히, 음악을 좋아한다는 설정은 제가 연기를 하면서 감독님과 의논해 새로 만들어진 부분입니다(문성근). 여배우로서 연쇄살인범과 맞서는 강한 인물 표현이 어렵지 않았나? 쉬운 캐릭터는 없습니다. 현정은 강한 인물은 아니지만 스릴러 장르에 놓인 인물이다 보니 강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추자현). 고통을 많이 당하는 역인데, 힘들지 않았나? 연기할 때 대부분은 경험이 바탕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당연히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원초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갇혀 있다는 공포와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원초적인 상황에서 오는 두려움 말이죠. 또, 문성근 선배가 액션만 들어가면 눈빛이 바뀌면서 저를 잡아먹을 듯해서 표현하는데 어렵지는 않았어요(웃음). “현아를 정말 때릴 것 같다” “이빨을 진짜로 뽑아버릴 것 같다” 등 사전에 겁을 주세요. 덕분에 정말 그 상황에 처하는 느낌을 받게 되더군요(전세홍). 연기하면서 힘들었던 부분은? 폭력 신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두 여자는 거의 맨몸인데 저는 작업화를 신고 있어 조금만 건드려도 크게 다칠 위험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더 힘든 일은 심리적인 문제입니다. 밤샘 촬영을 마치고 현장을 벗어날 때면 지옥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받았어요.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후배 배우들을 일부러 멀리했죠(문성근). 판곤은 강호순과 많이 닮은 캐릭터인 것 같다. 대본은 2~3년에 완성됐고, 저는 지난해 3월 대본을 처음 봤으니, 강호순과는 무관하게 연기를 했습니다. 강호순이나 판곤이나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영화는 사이코패스의 공통된 특성을 뽑아 표현했기 때문에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과 유사한 점은 당연히 발견될 수 있죠(문성근). 모방범죄의 우려가 있지 않을까? 오히려 저는 <양들의 침묵> 등 살인마를 근사하게 미화시키는 영화를 보면서 반감을 느꼈습니다. 판곤은 공감할 만한 부분이 전혀 없는 굉장히 비열하고 추악한 인물입니다. 절대 그런 우려는 없습니다(김세홍 감독). ■ 영화 관람 전 음식 섭취 금물!…영화 <실종> 리뷰 <실종>은 60대의 남자가 20대의 젊은 여성을 농락하여 성폭행하고, 심지어 살아있는 채로 분쇄기에 갈아 죽이고, 갈린 시체 파편들을 닭의 모이로 주니, 여성들에겐 정말 잔인한 영화이다. 외모는 여느 시골 아저씨처럼 촌스럽고 성격은 순박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 속은 아주 지저분하다. 연쇄살인마로 변할 때의 겉모습은 능글맞고 추악하다. <추격자>의 연쇄살인마를 연기한 하정우의 오싹함은 기대할 수 없다. 영화배우가 꿈인 여대생 현아는 판곤이 시키는 대로 옷을 벗고 판곤이 주는 대로 입고 먹는 등 그에게 이용만 당하다 처참하게 죽는다. 특히, 판곤에게 성적인 희롱과 폭행을 당하는데, 여성으로서 구역질이 나는 장면이 많다. 판곤에게 생니를 모조리 뽑히고 변태적인 성폭행을 당하면서도 “살려주세요”라고 부들부들 떠는 현아에게 동정은커녕 화가 난다. “저런 더러운 인간에게 욕을 보면서까지 살고 싶을까? 차라리 스스로 죽었으면…”하는 생각 말이다. 반면, 동생보다 강한 정신력과 예리한 두뇌를 가진 언니 현정은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판곤의 먹잇감이 되지만, 판곤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도, 그가 시키는 대로 하지도 않는다. 어느 쪽이 더 사실적인 인물일까? 아무튼 <실종>은 파격적인 소재와 줄거리, 장면 등 보는 내내 땀을 쥐게 하지만, 그 대가로 오만 가지 인상과 들끓어 오르는 화를 얻는다. 또, 영화가 끝난 후에는 뭔가 개운치 않은 기분까지 안겨주는 씁쓸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영화 관람 전에 음식 섭취는 금하라고 말하고 싶다. 현아가 생일 케이크의 생크림으로 아버지뻘 판곤에게 욕을 당할 때, 분쇄기에 생으로 갈려 닭 모이로 변신(?)할 때, 끔찍하게 죽은 동물들의 시체가 곳곳에서 발견될 때, 등장인물들이 도끼나 중국요리 칼 등으로 머리가 찍혀 죽을 때 등등 먹었던 메뉴를 다시 뱉어야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