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약을 복용하는 노인일수록 약물 복용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부작용에 더 시달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림대 의료원 한강성심병원 가정의학과 윤종률 교수는 지난 2007년 4월부터 3개월간 서울의 한 노인복지관 진료실을 방문한 80명의 노인 환자를 대상으로 4주간 복용한 약물을 조사했다. 그 결과 복용약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수록 복용하고 있는 의약품이 많거나 부작용을 자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참여한 노인 80명의 평균 복용약물 개수는 7.2개였다. 최고 27개의 약물을 복용한 노인도 있었다. 이 중 절반이 복용 중인 약물 전체 혹은 일부에 대해 모르고 먹고 있었다. 자신이 복용하는 약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먹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먹는 약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부작용을 경험한 환자일수록 복용하는 약도 많다. 우리나라 노인인구의 90% 이상이 만성질환을 겪고 있는데다, 3개 이상의 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환자가 늘어남에 따라, 장기적인 의약품 복용도 덩달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약물 부작용, 낙상·요실금 등 노인병증후군 주요 원인 주치의 제도가 보편화돼 있지 않고 환자의 약물 복용 감시가 부족한 현 의료체계에서,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환자들이 여러 병원을 다니면서 약을 중복 처방받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약물 부작용은 낙상·요실금 등을 비롯한 주요 노인병증후군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입원 노인환자의 30%는 약물 복용으로 문제를 겪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노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의약품은 고혈압 치료제, 항염 진통제, 류머티즘 치료제, 소화제, 변비약 등으로, 적절한 용법을 알지 못할 때 의학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의약품들이다. 고혈압 치료제를 과용할 경우 혈압이 지나치게 떨어져 저혈압이 되기도 하고, 당뇨병 환자에게서 저혈당이 오기도 한다. 미국질병통제청이 미국 과학회지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응급실로 실려온 노인 약물 부작용 환자의 33%가 항응고제 와파린과 심부전 치료제 디곡신, 혈당조절을 위한 인슐린 등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약물들은 피부발진·가려움증·발열·구역·구토·어지러움증·두통·위장장애를 유발시킬 수 있다. 비교적 심한 부작용으로는 골수기능 장애, 간 장애, 신장 장애, 부정맥, 각종 신경증상(환각·우울증·의식장애) 등이 있다. 특히, 한꺼번에 여러 약을 복용하는 노인은 위장출혈·변비·식욕저하·어지럼증·낙상·정신착란·불면증·우울증·허약증상 등에 시달리게 되고, 또 이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새로운 약물을 먹고 그에 따른 부작용을 겪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다. ■대학생들도 ‘머리 좋아진다’ 약물 오남용 약물 오남용은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제대로 된 처방이나 명확한 지식 없이 약물을 오남용하는 사례도 심각한 수준이다. 머리가 좋아지는 약으로 잘못 알려진 수면장애 치료제 프로비질이 대학생들 사이에 습관적으로 남용되고 있기도 하다. 프로비질은 1999년 발작성 수면장애인 기면증(narcolepsy)의 치료제였으나, 잠이 모자라는 전투기 조종사들의 능력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일부 대학생들이 공부 중 잠을 쫓는 약으로 사용하고 있다. 더욱이 이 약을 먹는다고 머리가 좋아지는 것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 노라 볼코우 소장은 3월 18일 프로피질이 흥분제 리탈린 등 대표적인 습관성 약물과 마찬가지로 뇌의 쾌락중추를 자극한다고 밝혔다. 프로비질은 동물실험에서 뇌의 도파민 시스템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전통적인 흥분제보다는 안전한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이 약이 기분을 좋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분비를 자극한다는 사실이 임상실험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볼코우 박사는 “머리가 좋아지는 약이 있다면 좋겠지만, 부작용 없이 머리를 좋아지게 하는 약은 없다”고 말했다. ■경실련 “슈퍼·편의점도 의약품 판매해야” 감기약과 소화제 등 비교적 안전성이 검증된 일반 의약품을 슈퍼와 편의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안과 관련, 정부 부처와 사회단체들 간에 논박이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소화제처럼 안전성이 검증된 일반 약은 슈퍼나 편의점 등 일반 가게에서도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경실련은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가족부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인체에 해로운 술·담배에 대한 접근성과 편의성은 높으면서도 건강을 위한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가 국민 건강에 해로운 술·담배 판매에는 관대하면서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조치는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심야 당번운영제 등 약국업계의 협조를 통해 접근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서울과 대도시를 제외한 중소도시와 농어촌에서는 마찬가지”라는 지적다. 경실련은 약국 외 판매 품목으로 진해제와 감기약·진통제·소화제·소화기관용약·피부치료제·비타민제·금연보조제 등을 제안했다. 약국업계에서 가정상비약 갖기 운동을 벌이면서도 일반 약 슈퍼 판매를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경실련은 주장한다. 가정에서 보관하는 상비약을 오래 방치하다 보면 약화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유통기한이 지난 상비약이 연간 400억 원에 달한다는 보고가 약사회 조사결과 밝혀진 바 있다. 결국, 슈퍼 등에서 일반 약을 판매할 경우, 가정상비약을 구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의약품 낭비도 줄일 수 있고, 유통기한이 지난 의약품 복용으로 인한 약화사고도 줄일 수 있다는 게 경실련의 주장이다. ■약사회 “슈퍼에서 의약품 판매 절대 안돼” 이에 대해, 약사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한약사회는 “의약품은 전문가에 의해 안전하게 사용하면 질병을 치료할 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될 수 있다”며 슈퍼 등에서 약을 팔아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식욕부진·소화불량 증상 때 복용하는 일부 소화제는 장기 복용하면 만발성 운동장애 위험이 있다. 일반 의약품을 구입할 때 약사에 의한 복약지도가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영환 대한약사회 사무총장은 “일반 의약품을 슈퍼마켓에서 판매하게 되면 위해제품이라고 판명이 나도 제때 수거할 수 없다”며 “발암성이 확인되어 회수명령이 내려진 살충제가 약국에서는 모두 회수됐으나 1년이 지난 시점까지 슈퍼마켓에서 판매돼 충격을 준 바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의약품 판매장소를 다양화하면 매출도 늘어날 것이라는 단순수치적 의견에 대해서도 “제약회사의 매출과 고용·임금을 늘리기 위해서는 약품 판매장소를 늘려 국민이 의약품을 더 많이 복용하게 해야 한다는 논리”라며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의약품을 기호식품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현 정부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정부-복지부, 의약품 약국 외 판매 논란 일반 약의 약국 외 판매 논의는 1997~2002년까지 계속 추진돼 왔다. 그러다가 2008년 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일반 의약품을 일반 상점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국정과제로 꼽았고 복지부에서 이를 추진했지만, 약사회의 반대로 지난해 국정과제에서 빠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정과제에서 빠지게 된 것은 청와대가 약사회의 거센 반대에 뜻을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안전성이 검증된 의약품에 대한 슈퍼 등 상점 판매를 허용하는 안을 서비스산업 선진화의 주요 과제로 선정해 추진해 왔지만, 보건복지가족부와의 부처 간 협의 과정에서 논의를 중단하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외국에선 소화제와 같은 간단한 약은 의사 처방 없이 슈퍼에서 사 먹을 수 있지만, 우리는 약국에서만 살 수 있다”며 “이것만 풀어도 제약업계 매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서비스산업의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 일례로 일반 의약품 판매 규정을 들었다. 일반 의약품을 약국 외에서 판매하도록 규제를 풀어야 업계의 매출이 늘어나는 것처럼, 한국 경제가 살려면 서비스산업의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복지부는 이번 방안과 관련, 일반 의약품을 슈퍼나 편의점에서 살 수 있게 되면 약물을 오남용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 왔다. 전재희 보건복지부장관은 4월 1일 기자간담회에서 일반 의약품 약국 외 판매 문제와 관련, 우리나라의 경우 약국이 슈퍼보다 많아 국민 불편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윤 장관의 주장에 부정적인 입장을 적극 표출했다. 전 장관은 재정부가 일반 의약품 판매로 슈퍼의 매출이 오를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싸우는 것을 싫어한다며, 옳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이 납득할 때까지 주장하는 편이라고 말해, 자칫 재정부와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불똥이 뛰는 것을 경계했다. 정부 당국자는 “간단한 의약품에 대한 국민들의 접근성을 높여주고 의료산업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는 방안을 기대했지만 당분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안전성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온 게보린·사리돈A·암씨롱 등 진통제들이 혈액질환·의식장애 등 부작용 논란 끝에 최근 15세 미만에게 투여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위장관 출혈로 인한 사망 및 입원의 3분의 1이 진통제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종근당의 ‘펜잘’의 경우 지난해 IPA 성분을 제외하고 제품을 리뉴얼한 ‘펜잘큐정’을 시판하고 있다. 식약청은 위 의약품의 효능·효과를 ‘진통 및 해열시 단기치료’로 제한하며 수회(5~6회) 복용해도 나아지지 않으면 복용을 중지하고 의사 또는 약사와 상의해야 한다고 3월 2일 밝혔다. 일반 의약품이 완전히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은 최근 식약청의 조사를 통해서도 드러난 바 있다. 다만, 약물 오남용 문제를 최소화하면서 약품 소비자인 국민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약품을 사용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