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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아이들’ 그들은 입양아

닥종이 인형 전시회를 통해 본 우리나라 입양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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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116,117호 박성훈⁄ 2009.05.07 09:31:16

“한 가닥 철사 꼬아 머리 만들고, 닥종이 작게 찢어 코를 붙여주니 아이는 꿈으로 태어나고, 입술을 붙여주니 아이는 꿈을 이야기 합니다. 검은색 눈을 붙여주니 아이는 꿈을 보고, 도톰하게 귀 붙여주니 아이는 꿈을 펼칩니다. 다섯 손가락 손을 만들어주니 아이는 꿈을 만들고, 튼튼한 발을 붙여주니 아이는 꿈을 키워 갑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지만 체구는 아주 작습니다. 바람처럼 날아다니는 날쌘돌이입니다. 그 아이는 박지성 선수처럼 아주 멋진 축구선수가 되는 게 꿈입니다. 그리고 평범한 바람이 하나 더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 아빠가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 아이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작은 발전에도 같이 웃어주고 박수 쳐주고 칭찬해주는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연아 선수를 너무 좋아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 여자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리듬체조를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김연아 언니처럼 피겨스케이터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빠와 함께 ‘KCC 스위첸 페스타 온 아이스 2009’를 보러 일산 킨텍스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가슴 가득 채웠습니다. 가끔 몰래 언니 방에 들어가 언니 흉내를 내다가 혼나기도 하고, 오빠가 설명하는 수학문제를 잘 이해하지 못해 꿀밤을 맞기도 하지만, 칭찬을 더 많이 듣고 많이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는 이 아이는 입양된 아이입니다.” 닥종이 인형 작가 인명숙(51) 씨가 입양을 테마로 하여 ‘꿈꾸는 아이들’이라는 주제로 5월 1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디자인 미술관에서 닥종이 인형 전시회를 연다. 인 씨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를 이같이 소개했다.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전시회의 인형들은 모두 꿈꾸는 입양아를 상징한다. 신의 축복을 받아 태어났을 아이들은 모두 여러 꿈을 갖고 다시 태어난다. 경찰·소방관·과학자·우주비행사부터 시작해 이효리 같은 가수, 타이거 우즈 같은 골프 선수 등 아이들이 품는 꿈은 무궁무진하다. 그 꿈은 그 아이에게 부모가 있는지 없는지와는 전혀 무관하다. 입양된 아이도 마찬가지이다. 전시회에서는 오색빛깔 꿈을 가진 입양아이들이 닥종이 인형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서두에 소개된, 박지성 같은 축구선수를 꿈꾸는 6학년 아이는 실제로 경북 김천시에 살고 있다. 인 씨는 이 아이를 1학년 때부터 지금껏 방학마다 서울로 데려온다. “걔가 집에 오면 저를 엄마라고 불러요. 한번은 ‘엄마, 나 테레비에 나왔어’하고 자랑하더라고요. 무얼 잘해서 나왔나 싶어 물어봤더니, 입양 특집 프로에 나왔다는 것이었어요. ‘저도 입양 가고 싶어요’라고 합니다.” 전시회장에는 이 아이를 닮은 축구선수 인형이 있다. ‘피겨 퀸’ 김연아를 좋아해 피겨스케이트 선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는 인 씨의 딸 권유정(9) 양이다. 유정 양은 2002년에 대한사회복지회를 통해 입양한 딸이다. 유정 양에게는 ‘제2의 김연아’가 되는 것 말고 다른 꿈은 없다. 이미 대학원생 딸과 대학생 아들을 두고 있으면서도 유정 양을 입양한 인 씨는 “김연아를 끔찍이도 좋아하는 애 아빠가 유정이를 데리고 일산 경기장에 다녀왔는데, 그 후로는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며 “아이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꿈을 소재로 전시회를 마련한 이유도 3학년짜리 유정 양과 같은 꿈 많은 아이들이 입양이나 부모의 유무를 떠나 꿈을 이루길 바라는 소망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입양 주제로 전시회 열어 인 씨가 닥종이 전시회를 처음 시작한 것은 2000년 4월이다. ‘다시 아이를 키우는 마음으로’라는 주제의 전시회가 그것이다. 당시에는 입양과는 무관하게 육아일기와 같은 소재로 전시회를 기획했다. 그러던 중 방명록에 “아이 둘을 두고 집을 나왔습니다. 내 마음의 봄은… 집으로 돌아갑니다”라고 쓴 글을 발견했다. 인 씨는 “내 전시를 보고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갖는구나 하고 생각했다”며 “그 다음부터는 입양을 주제로 미혼모의 집과 한국수양부모협회를 후원하는 전시회를 열어 왔다”고 한다. 2004년 전시회의 ‘우리 엄마야’라는 주제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 “아이들은 엄마와 있을 때 다른 사람을 만나면 ‘우리 엄마야’라고 자랑하곤 합니다. 이것은 배 아파 낳지 않은 입양아도 마찬가지입니다.” 2006년 ‘엄마 나 여기 있어요’라는 주제의 전시회는 성가정입양원의 아이들을 모델로 했다. 주제의 외침을 듣고 아이들의 엄마가 돼 달란 뜻이다. 2007년 전시회에는 ‘울다가 이제 웃다’였다. 아이를 찾아 그리워하면서 울던 부모와 부모를 찾던 아이가 서로 만나 웃는다는 의미이다. 인 씨는 “전시회를 통해 입양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길 바란다”며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와 출산으로 이룬 가족 외에도 입양 가족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외 입양 이제는 중단해야” 국내에서 버려지거나 집을 잃어버려 고아가 된 아이들은 연간 1만 명씩 발생하고 있다. 이들 중 새로운 가정을 만나는 아이들은 해외 입양을 합해도 4000명을 넘지 못한다. 나머지 6000명은 고스란히 보육원이나 고아원에 맡겨지는 게 현실이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지난해 처음으로 국내 입양아 수가 해외 입양아 수를 앞질렀다는 점이다. 2007년도 아동 입양의 국내 입양률은 52.3%로 국외 입양률(47.7%)을 앞질렀다. 해외 입양률이 서서히 하락세를 보이는데다, 2007년 입양아 수가 전년에 비해 대폭 떨어지면서 이 같은 결과를 보였다. 우리나라는 해외로부터 ‘아동 수출국’ 혹은 ‘고아 수출국’이라는 지탄을 받아온 바 있다. 2006년 한 해 동안 미국에 보내진 한국 아동은 전부 1376명이었다. 이는 중국과 과테말라·러시아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수치이다. 하지만 인 씨는 해외 입양을 중단할 때가 됐다고 주장한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만큼 과거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의 유산인 해외 입양도 청산할 시기가 왔다는 지적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바라보는 부국으로 성장한 가운데 해외 입양을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인 씨는 “우리나라에서는 해외 입양을 보낼 때 입양 부모의 방한 없이 안내하는 사람만 따라간다. 중국도 입양 부모가 입국해 아이와 적응기간을 보내고 출국한다”며 “공항을 울음바다로 만들고 낯선 부모와 낯선 땅에서 바로 적응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미혼모 지원정책이 향상돼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 늘어 입양 대상 아동 수는 줄어들고 있다. 반면, 불임은 늘어 입양하려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출산율도 날로 줄어 미래의 국가 존폐위기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국내 입양업무를 담당하는 복지단체는 입양아의 40% 이상을 해외 입양으로 따로 분류해 놓고 있다고 한다. 인 씨는 “해외 입양은 점차 줄여 간다고 하지만, 한 번에 결단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유정이네 집은 ‘행복한 입양 가정’ 5월 11일은 입양의 날이다. 입양에 대한 인식이 날로 개선되고 있지만, 유교적 혈통주의로 다른 핏줄을 가족으로 들이는 일이 여전히 어려운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에 2002년부터 권유정(9) 양을 키워 온 권영훈-인명숙 가족의 모습을 비쳐봄으로써 입양 가족의 표본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대법관 비서관인 권영훈(52) 씨와 닥종이 인형 작가인 인명숙(50) 씨는 슬하에 1남 2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첫째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25살 현정 씨, 둘째는 24살 대희 씨, 그리고 막내는 9살 난 유정 양이다. 둘째와 터울이 커 늦둥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유정 양은 입양 딸이다. 권-인 가족은 애초 입양아를 위탁양육하는 가정이었다. 첫 아이를 돌려보내고 가족들에게는 허전하고 서운한 마음이 자리했다. 그래서 2002년 7월 4일 대한사회복지회로부터 유정 양을 위탁받아 12월 17일 호적에 올렸다. 배 아프지 않고 유정 양을 낳은 순간이었다. 유정양은 2000년 9월 7일에 태어난 ‘즈믄둥이’였다. 이름은 첫째 ‘현정’의 끝자를 따서 지었다. 엄마 인 씨는 “어릴 적부터 낯가림이 심했다. 아빠나 언니 오빠를 보고도 울기만 했고, 항상 엄마한테 코알라처럼 안겨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키우는 일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열이 나고 아픈 적이 많아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커 가면서 몸도 건강하고 성격도 활발하게 변해 갔다. 가족들은 입양에 모두 찬성이었다. 가족들이 워낙 거리낌이 없어 아버지 권영훈 씨가 오히려 걱정할 정도였다. 권 씨는 “입양 당시에는 경제적인 면이나 마음의 여유가 많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지금은 친딸보다 더 예쁘다. 보고만 있어도 재미있고 귀엽다”고 말했다. 권 씨는 친구들을 만날 때나 좋은 곳을 다닐 때에도 막둥이 딸을 꼭 챙긴다고 한다. 현정 씨는 당시 고3이었지만 부모님의 관심이 온통 유정에게 쏠려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할 겨를이 없으니 오히려 스트레스를 덜수 있었다고 한다. 대희 씨도 포항공대에 진학하기 전에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녀 가족이 늘어난데 따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현정 씨는 “입양에 처음부터 대찬성이었다. 위탁해 키웠던 아이들을 돌려보내면서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유정이를 입양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끔씩은 유정이도 직접 낳아 길러진 동생인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대희 씨 역시 “그 전부터 위탁 아기를 봐 와서 입양에 긍정적이었다. 부모님이 아이를 낳아 새 가족이 생기는 과정과 입양을 통해 가족이 생기는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입양을 유별나게 보는 시각이 있지만, 혈연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정 양은 학교에서 바른 수업태도로 선생님들의 편애를 받는다. 학교 교육을 중요시해 보습학원에 보내지 않은 것이 효과를 봤다고 한다. 배움이 귀해야 열심히 공부한다는 교육철학 탓이다. 이번 과학시험에서는 95점을 받았다. 얼마 전에는 교내 모형 글라이더 날리기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비행기 만들기를 적극 도와준 오빠 대희 씨의 공이 컸다. 피아노를 배우고 있고, 특히 1학년 때부터 리듬체조를 해서 몸이 유연하다. 최근 아버지와 일산 킨텍스에 김연아를 보러 다녀온 이후로는 피겨스케이팅을 배우고 싶다고 조른다고 한다. 인 씨는 “유정이의 장래에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극성을 부리진 않고 싶다”며 “두 아이도 특별히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의 교육만 시켰는데 모두 좋은 대학교에 갔다. 유정이도 열심히 할 것이란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 권영훈 씨도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물 흐르는 것과 같아 부모들이 강압한다고 나아지지 않는다”며 “도리를 거스르지만 않는다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 없다. 예체능에 관심이 많은데, 흥미를 느끼는 일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권영훈 씨와 인명숙 씨는 유정 양에게 입양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입양부모 모임에 참석하고 스스럼없이 얘기한다. 입양 사실을 숨기면 부작용이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입양 사실은 아이들이 가족 관계에 대한 인지가 싹트는 초등학교 때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친구와의 다툼 등 우연한 계기로 입양 사실을 접하게 되는 아이들은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홀로 냉가슴을 앓다가 결국 정신병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인 씨는 “아이가 입양 사실을 아는 편이 훨씬 건강하다. 입양을 부정적으로 보고 음성적으로 가리려는 사회 인식이 입양아들의 입지를 좁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부도 남이었다가 가족이 된다. 입양아들도 혈육 같은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문화가 하루빨리 자리 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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