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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눈과 귀로만 감상하는 예술이 아니다”

연극 <고곤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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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22호 이우인⁄ 2009.06.17 09:01:32

영국의 천재 작가 피터 셰이퍼(Peter Shaffer)가 1992년에 쓴 최신작 <고곤의 선물>이 ‘2009 Arko Partner-공동기획공연’으로 6월 10일부터 21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고곤의 선물>은 가벼운 즐거움과 단순한 메시지를 강요받고 있는 현 시대 관객들에게, 진중하고 깊이 있는 공연에 대한 그간의 갈증을 해소시켜주기 위해 제작된 무거운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2003년 국내 초연됐으며 지난해 겨울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됐다. 광기로 가득했던 천재 극작가 에드워드 담슨과 절제를 아는 여인 헬렌,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액자식 구성으로 담아냈다. 선택의 기로에서 조직·사회·이데올로기, 심지어 사람조차도 자신만의 자유와 자기존엄을 위해 내버리는 정체성(Identity)의 절대가치에 대한 물음이 이 작품의 주된 테마. 담슨은 연극만이 나타낼 수 있는 극적인 요소를 관객에게 보여주려 했던 시도들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 헬렌에게조차 외면당하면서 이성을 잃는다. 이번 무대는 정동환·서이숙·박윤희 등 지난 공연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그대로 출연해 앙상블을 이루며, 공간을 빛만으로 탁월하게 표현해낸 구태환 연출이 또다시 연출을 맡았다. 장소만 다를 뿐 모든 것이 이전 공연과 비슷해 보인다. 6월 10일 오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고곤의 선물> 기자간담회에서, 정동환은 “나름대로는 꽤 많이 변형시켜봤다”면서, “이 무대가 가진 특성·레벨·크기 등에 맞도록 연기했다. 지난번 공연보다 설득력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고 지난 공연과는 또 다른 재미를 기대했다. 구태환 연출은 “내용의 핵심은 변하지 않았지만, 공간이 변해 주어진 조건에 맞춰 최상의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고민을 많이 했다”며, “‘재공연’이라고 하면 지난 공연 때 연습했으니까 연출도 간단하게 되겠거니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연습 기간도 길게 잡았고, 새 캠퍼스를 다시 채운다는 기분으로 임했다”고 공연을 앞둔 소감을 전했다. 특히, 이 작품의 초연 때부터 ‘에드워드 담슨’ 역을 전담한 정동환은 2008년 제1회 대한민국 연극대상에서 남자연기상을 수상했다. 그는 피터 셰이퍼의 대표작 <에쿠우스>에도 출연했다. 피터 셰이퍼 작품이 가진 매력에 대해, 그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피터 셰이퍼의 작품 속에 들어 있다. 그의 연극은 ‘어떻게 보여줘야 하나’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그가 쓴 무대언어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훌륭하며, 내용 역시 알차다. 그 집결체가 <고곤의 선물>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리뷰] 알면 알수록 온몸의 전율이 연극은 예술임을 말해준다 <우상들> <특권> 등 탁월한 희곡을 남긴 천재 극작가 에드워드 담슨은 4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테러리즘에 대한 강박관념이 드러난 마지막 작품 <아일랜드>의 엄청난 파문과 실패 이후, 두 번째 아내이자 평생의 동반자였던 헬렌과 그리스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그가 변사체로 발견된 것. 몇 달간 슬픔에 잠겨 있던 헬렌은 어느 날 편지를 받는다. 28세의 젊은 연극 교수인 필립 담슨의 편지였다. 그는 에드워드가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로, 아버지의 전기를 쓰겠다고 헬렌에게 만나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한다. 헬렌은 그의 청을 거절하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그녀의 집을 찾아온다. 헬렌은 필립에게서 꼭 전기를 쓸 것이라는 맹세를 듣고 나서야 에드워드와의 지난날의 엄청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무능한 아버지를 둔 가난한 하숙집 아들, 자신을 ‘God Damn Son(Damson)’이라고 비하하는 에드워드는 자신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 교수 자비스의 딸이자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재원 헬렌을 만나 유혹한다. 헬렌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를 택한다. 거칠지만 지적인 말투와 열정적인 눈을 가진 에드워드에게 빠져든 것이다. 또한, 헬렌은 극단적인 에드워드에게는 이성적인 자신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깨달았다. 가난한 두 사람은 헬렌이 여행사에서 벌어 오는 적은 월급으로 견뎌낸다. 생활은 무척 고됐지만, 헬렌은 에드워드가 작품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고, 에드워드 또한 작의를 불태워 첫 작품 <우상들>을 발표해 마침내 인정받는다. 하지만, 행복은 곧 파국으로 치닫는다. 에드워드는 점차 극적인 작품에 몰두하고, 헬렌은 그의 작품들이 작가 에드워드를 파멸시킬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에드워드의 희곡에 관여하여 내용을 수정하도록 설득한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변형된 자신의 연극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급기야 헬렌과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그리고 에드워드의 죽음의 전말과 그의 광기가 드러난다. 연극은 두 사람 헬렌(서이숙 분)과 필립 담슨(박윤희 분)의 대화가 이뤄지는 가운데, 그 대화 속의 이야기가 헬렌과 에드워드(정동환 분), 그 외 등장인물들의 연기로 재연된다. 특히, 에드워드와 헬렌이 에드워드의 대표작 <우상들> <특권> 등의 작품들을 연기하는 장면은 <고곤의 선물>이 가진 연극적 묘미를 잘 살려내고 있다. 관객은 연극을 보면서 이중 삼중 깊이 있는 연극의 세계로 빠져든다. 또한, 비스듬한 단색의 무대 위를 빛으로 몇 겹씩 구분한 장면 나누기는 연극이 표현할 수 있는 시공간의 무한함을 보여준다. 이 연극은 내내 진지하고 어렵지만, 가끔씩 던지는 농담과 행동은 큰 웃음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무거운 내용에 등장인물들이 읊어 대는 그리스·로마 신화 이야기와 세계사 등은 관객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인터미션에는 화장실보다 팸플릿에 더 눈이 간다. 웃음으로만 중무장한 가벼운 연극들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연극을 눈과 귀로만 보려 하는 관객들에게 “연극은 예술이다. 그 의미를 하나하나 되새겨보지 않으면 진정한 희열을 느낄 수 없다”는 교훈을 던져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면 할수록 전율의 강도는 강해질 것이다. Who is 피터 셰이퍼? 석탄 광부로, 서점 점원으로 일하던 중 희곡 <다섯 손가락 연습>으로 화려한 데뷔를 했다. 그 후 <에쿠우스> <아마데우스> 등 그의 대표작들은 브로드웨이에서 1,000회 이상의 장기공연과 함께 뉴욕 비평가상, 토니상 등을 석권하면서 피터 셰이퍼에게 최고의 희곡작가라는 명성을 안겨줬다. 피터 셰이퍼는 독창성과 다양성을 드러낸 작품들을 다수 발표한 실험정신이 투철한 극작가였다. 그는 어떤 한 가지 문학적 기류에 머물지 않고 당시 유행하던 내용이나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쳐 나갔다. 또한, 각 작품마다 조명·음악·춤·마임 등을 이용한 새로운 연출 기법들을 보여줬다. 한편, 여기서 ‘고곤’(Gorgon)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한 마리가 아닌 세 마리의 괴물이다. 바다의 신 포르퀴스와 그의 누이이자 아내인 케토스가 낳은 세 명의 자매로, 그라이아이 자매들의 동생들이다. 이들 세 자매의 이름은 각각 스텐노(힘센 여자), 에우뤼알레(멀리 떠돌아다니는 여자) 그리고, 가장 유명한 메두사(여왕)이다. 통상 고곤은 메두사를 지칭하지만 세 자매 모두를 일컫는다. 작품 속에서 고곤의 의미는 테러리스트들과 평화주의자들을 함께 일컫는다. 메두사는 죽음을 부르는 피의 복수를 자행하는 테러리스트들을 의미하고, 나머지 두 자매들은 그녀와 함께 공존하지만 그렇게 살육적인 그녀의 잔혹함을 용서하고 받아주는 평화주의자들로 대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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