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직업에 귀천이 없는 전문성 시대로서, 캐디도 떳떳한 개인 자영업자이다. 그러나 캐디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은 아직도 존재하여, 심부름꾼이나 개인 하수인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상호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캐디는 상하관계도 아니고 종속관계도 아닌 평등인으로서, 골퍼가 라운드할 때 최상의 실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경기 보조자이다. 필드 안에서 도우미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나, 캐디들은 각 홀의 공략 요령과 티샷 목표를 정해주고, 골퍼가 친 공의 행방을 추적한다. 아울러 4명의 클럽을 각각 챙겨주며 핀까지의 거리를 파악하여 알려준다. 또한 그린의 라인과 브렉을 알려주며, 퍼트 때 깃발을 잡아준다. 같이 라운드하는 골퍼의 골프 실력은 물론이고, 선택하는 골프 클럽의 성향과 성격까지도 파악하여 이에 대처한다. 캐디는 골프장의 길이인 평균 6500m의 두 배나 되는 12km를 뛰다시피 하며 골퍼의 온갖 시중과 성희롱에 가까운 음담패설을 감내하면서 경기 진행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 외에도 현관에서 골프백 내리기, 디봇 홀 메우기, 벙커 정리하기, 그린 마크 수리하기 등 상상 외로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약 6만 명의 캐디가 300여 개의 골프장에서 현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들의 한결같은 불만은 좀 더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다. 골퍼들이 조금만 신경 써서 협조하고 양해를 하면 진정으로 즐겁고 상호 기억에 남는 라운드가 될 것이다. 코스에 가 보면 희한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앞 팀이 밀리면 캐디에게 어깨를 주무르라고 요구하는 사장도 있다. 최근 유행한다는 성 관련 유머를 딸보다 어린 캐디 앞에서 스스럼없이 해 대는 노신사가 있는가 하면, 클럽으로 캐디의 가슴을 툭툭 치는 치한 골퍼를 태국에서 본 적이 있다. 새 공이라면서 산 아래 언덕에 걸쳐 있는 공을 찾아오라고 하는 부잣집 마나님이 있는가 하면, 그린까지의 거리를 잘못 알려주어 벙커에 빠졌다고 성질을 부리는 성직자를 본 적이 있다. 내기 골프에 져서 화가 난 청년 실업가가 깊은 러프에 빠진 볼을 찾지 못한다고 아이언으로 땅을 내려찍는 모습도 보았다. 3개월짜리 캐디에게 매번 그린의 경사를 묻는 30년 된 싱글 골퍼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인간이다. 멀리서 6번·7번을 가져오라고 해서 가져갔더니, 다시 4번·5번 아이언을 가져오라고 하는 얌체 여사장을 본적이 있다. 한 번만 그러면 좋으련만, 매번 유사한 요청을 해 캐디가 땀을 뻘뻘 흘리며 시중을 드는 것을 보니 가엾기도 하였다. 캐디들에게 ‘언니야’라고 연상 부르면서 반말로 이래라 저래라 명령조로 말하는 골퍼들은 비일비재하다. 가끔은 칭찬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비난일색이다. 제일 곤란하고 어려운 일은 조금만 친절하게 골퍼들을 대하면 핸드폰 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는 것이란다. 캐디들이 제일 좋아하는 골퍼들은 과연 누구일까? 자기 이름을 불러주며 존댓말을 써주고, 골퍼가 판단해서 클럽을 선택하여 3~4개의 클럽을 뽑아 가지고 다니며 스스로 퍼트하는 골퍼는 존경스럽다고 한다. 또한, 멀리건의 사용을 자제하고, 그린에서 퍼팅 연습을 하지 않고, 다음 홀로 빨리 이동하는 골퍼는 환영을 받는다. OB가 나도, 짧은 퍼트가 안 들어가도 화를 내지 않고 허허 웃으며 다음 샷을 하는 골퍼는 정말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는 것이다. 만약 세상이 거꾸로 바뀌어 악성 골퍼가 반대로 캐디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만 해도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