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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환경을 통한 현대미술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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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128,129호 편집팀⁄ 2009.07.28 23:55:41

김숙경(미술사, 전시기획) kimsk7@hotmail.com 우리에게 ‘미술을 읽기’란 몇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존재한다. 흔히 미술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미술사와 같은 인문학적 지식에 관한 내용인지 아님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감각의 눈’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지 답답한 마음에 문화강좌를 찾는 수고를 감행하지만, 시작부터 난해한 전문용어를 전제로 하는 경우 그 심적 부담은 배가 된다. 그렇다면 보다 쉽게 미술을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그 해결책은 생각보다 여러 경로를 통해 가능하다. 그 중 우리는 작품 제작방식의 복잡한 관찰은 일단 유보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지극히 일반적 사물’이 지닌 시대적, 문화적 의미를 찾는 것에서 출발해 보자. 이는 일상과 생활환경에 존재하는 평범한 것들을 통해 한 시대의 미적 정서를 읽는 방식으로, 현대미술이 갖는 ‘아름다움의 특성’을 이해하는데 기대 이상의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20세기 초, 산업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인간형 I.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 강철과 콘크리트, 유리는 건설분야의 신소재로 인간의 건축문화를 빠른 속도로 현대화시키는데 필수조건으로 작용한다. 그 중 산업화에 따른 철도의 발전과 철제교량구조물은 19세기 과학기술문명이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이자 ‘전통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역사적 상징물로서 20세기 초반 도시건축 문화형성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1923년 독일작가 칼 후붑(Karl Hubbuch)의 <쾰른의 여자 수영인/ Die Schwimmerin von Koeln>라는 수채정밀화를 들여다보자. 몸에 착 붙는 원피스 수영복 차림으로 철교 위에 서있는 한 여자는 근육과 지방으로 다져진 그녀의 ‘힘 있는 신체와 스포츠적 기능’을 자신감 있게 보여준다. 교량구조물 사이로 고딕식 전통 교회건물인 성당이 보인다. 작가는 그림에서 철재 교량구조물과 대도시 쾰른의 성당을 여자 수영인과 비정상적(?)으로 대비시킴으로서 산업사회에서 일어나는 전통과 현대의 단절을 강하게 풍자하고 있다. 여기서 쾰른 대성당은 독일뿐만이 아니라 중세 서양미술 전체를 대표하는 것 중의 하나로, 건축물이기는 하나 과거로부터 전승된 ‘유럽의 정신문화 유산’을 의미한다. 이와 비교하여 철교는 당시 산업사회와 현대인이 갖는 기술발전의 결정체이며, 이는 자본과 물질의 신뢰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화면에는 여자와 교량뿐만 아니라 대성당까지도 사실성에 입각하여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수영복 차림의 여자는 무엇보다 그녀의 특이한 체구 때문에 분명 관찰자의 이목을 끈다. 그럼에도 -한 인간, 그것도 여자라는- 그녀의 모습은 교량의 엄청난 크기나 인장재 그리고 셀 수없이 많은 교량난간의 리벳들과 ‘감성적으로’ 차별화되지 않는다. 더욱이 밤색과 회색에 의한 단색의 조화는 몸집이 큰 여자, 철재교량, 고딕성당 등 세 가지의 이질적 모티브들 사이에 시감각적 일괄성을 만들어간다. 다만 그녀의 수영모자만이 붉은 색으로 인해 두드러져 보이고, 바로 이와 같은 강조를 통해 한 여성의 모습이 관찰자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작가는 이 ‘여자 수영인’을 통하여 모든 전통과 단절된, 즉 20세기 초 산업화시대가 낳은 새로운 인간형을 기술하고 있다. 그녀의 신체는 감성적이고, 부드러운 여성스러움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남자같이 각진 얼굴과 짧은 목, 딱 벌어진 어깨와 근육질의 단단한 팔과 다리는 그녀의 신체적 특징을 시각적으로 여성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중성화’시킨다. 핏기 없는 창백한 피부색, 굳게 다문 입 그리고 눈의 동공이 없는 평범하지 않은 외관과 화면 아래로 잘려나간 발은 건강하고 도전적으로 보여야할 그녀를 주변으로부터 소외된, ‘힘없는, 사회 부적응적’ 여성으로 느끼게까지 한다. 화면 중앙에 있는 교량의 철재골격은 그림의 형식적, 내용적 구성을 결정짓는다. 시각적으로도 엄청난 무게가 감지되는 이 강철구조물은 당시 산업화에 따른 세대의 단절과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명확하게 서술한다. 교량의 인장재 왼쪽에 산업문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 서있고, 오른쪽에 유럽사회가 지닌 영적, 정신적 전통유산의 상징인 쾰른 대성당이 존재한다. 20세기 초 산업화를 지향하는 국가 전략의 진보적 신념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과거와 강하게 분리시켰다. 그 안에 존재하는 현대인이란 건강해 보이나 창백한, 당당한 자세이나 ‘힘없는’ 무명의 ‘중성적 여인’인 것이다. 마치 그녀는 단단하게 만들어진 ‘고무인간’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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