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대책 없는 사람들”…구태환 연출의 <마땅한 대책도 없이> 5일부터 30일까지 서울 대학로 정보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구태환 연출의 <마땅한 대책도 없이>는 제목처럼 생활 전선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다 아무 대책도 없이 일자리를 찾아 길을 나선 두 가장의 처절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청업체의 계약직 노동자인 만석(유우재 분)과 정만(김성철 분)은 다니던 회사에 파업이 일어나자 노조의 일원으로 파업 현장에 가담하게 된다. 하지만, 회사 동료인 봉기(최진호 분)의 권유로 파업 현장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파업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호구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들의 소원은 그저 안정적인 보금자리에서 처자식과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일자리를 찾기 시작한 두 사람은 파업·부도·불경기 때문에 자신들의 기술을 써먹을 곳이 단 한군데도 없다는 비참한 현실을 목도한다. 날이 갈수록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두 사람은 절망 속에서도 실낱 같은 희망을 찾으려 끝까지 애쓰지만, 믿었던 봉기에게마저 배신을 당하자 희망의 끈을 힘없이 내려놓는다. <마땅한 대책도 없이>는 영국의 소설가 아서 모리슨(Arthur Morrison)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나생문> <고곤의 선물>의 구태환 연출이 국내의 현실에 맞게 피와 살을 붙인 작품이다. “있고, 있고, 있고! 아무 것도 없다고, 아무 것도! 마땅한 아무런 대책도 없다고! 마땅히 오라는 데도 갈만한 데도 없다고! 저 새끼가 미련스레 짊어지고 다니는 저 연장주머니랑 마누라가 몰래 끼워 넣은 코 묻은 돈 몇 푼, 껍데기만 남은 빈 몸뚱아리!” (정만의 대사 中) 답답함과 처절함이 묻어나는 정만의 대사는 작품이 나타내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연극은 90분 동안 몇 장의 에피소드를 통해, 현대를 헤쳐 나가기에 많이 부족해 보이는 가장(家長) 만석과 정만이 믿었던 세상에 짓밟히는 모습을 때론 웃음으로 때론 발악으로 그려내며 관객에게도 절망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연극은 어둡고 씁쓸한 주제를 담고 있지만, 두 사람과 가족 그리고 이들이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만나는 외국인 노동자와 노숙자들의 모습이 코믹스럽게 표현돼 있어 관객의 웃음을 유발한다. 특히, 이들이 고통을 벗어던지고 남진의 <아파트>에 맞춰 춤을 출 때 짓는 천진난만한 표정은 관객의 찡그린 마음까지 빳빳하게 다려준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웃고, 높은 현실의 벽 앞에서 울고 고함치고 넘어지고 짓밟히는 만석과 정만을 보고 있노라면, 외톨이인 가장들에 대한 애틋함과 함께 “나는 과연 마땅한 대책을 마련해놨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공연 문의) 02-2055-1139 + 구태환 연출, “소박한 꿈조차 이룰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5일 대학로 정보 소극장에서 열린 연극 <마땅한 대책도 없이>의 프레스콜은 완성된 연극의 시연 후 약 10분 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구태환 연출과 주연배우 유우재(만석 역)·김성철(정만 역)·최진호(봉기 역)가 참석했다. 다음은 연출자의 일문일답이다. 이 작품을 통해 현 사회에 던지고 싶은 교훈적 메시지가 있다면? 소득 분배의 불평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대책에 대해 답을 제시하는 연극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던지는 연극이 되길 바란다 아서 모리스의 원작과 달라진 점은? 아서 모리스의 원작 배경은 산업혁명 때의 영국이다. 영국도 산업혁명 후기에 공황을 맞는데, 경제가 어려워지고 파업이 분분해지자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들이 돌아다니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원작은 100여 년 전의 소설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현실을 담고 있지는 못해 보완했다. 특히, 연극의 마지막 장면(정만이 병든 만석을 길바닥에 두고 길을 떠난다)과 같이 원작에서도 절실한 친구이지만 살기 위해 두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묘사됐는데, 마음이 짠했다. 원작 역시 비극적인 결말이다. 봉기 캐릭터로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봉기 캐릭터로는 노동운동이 민중의 고통을 덜어주고 꿈을 이뤄줄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즉, 외치고 떠드는 맹목적인 부르짖음이 꼭 옳은 일일까 생각해봤다. 극중 만석과 정만이 진짜 원하는 소원은 커다란 이득이 아니라, 딸의 피아노를 사주는 일, 가족과 함께 사는 일 등 지극히 소박하고 평범한 것들이었다. 쌍용차 파업 이야기도 들어간 것 같은데, 반영했나? 정치적ㆍ경제적으로 파업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지만, 현실은 더 잔인하고 냉정한 것 같다. 그런 부분들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시기적으로 쌍용차 사태가 5월 말부터 시작됐고 지금도 대립 중인데, 그때부터 이 이야기(쌍용차 파업)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하청 직원과 직영 직원 등에 대한 이야기에도 포커스를 뒀다. 노동자 안에서도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조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