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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역사 살아 숨쉬는 배론성지

깊어가는 가을, 고독과 명상과 인생의 성숙미 체험할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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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39호 편집팀⁄ 2009.10.13 16:36:33

송영순 여행전문기자 sys5602@hotmail.com 지난 7월 본지 128호에서,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는 한강변 절두산 성지 탐방기를 쓴 적이 있다. 구경만 해도 저절로 역사공부가 되는 절두산 성지는 주말에 강변 나들이를 겸해서 가면 일석이조! 이번 가을에는 가족 나들이로 충북 배론성지[舟論聖地]를 찾아가보자. 그동안 도심생활에 찌들어 머리가 띵 했다면, 정말 배론성지를 추천하고 싶다. 심신을 다스리는데 이만큼 좋은 곳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특히 각종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는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최고의 휴식처가 되리라고 믿는다. 천주교 신자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 해서 배론성지를 터부시할 이유는 없다. 사색의 최적지라는 것만 생각하자. 필자 역시도 천주교 신자이지만, 한 달에 두 차례 정도는 자연을 벗 삼아 절을 찾다 보니 부처님을 뵈올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부처님들은 이 천주교 신자를 반갑게 맞아주신다. 배론성지는 어디에 있을까? 제천시 기념물 제118호로 지정(2001년 3월 2일)되어 있는 배론성지의 주소는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623번지인데, 필자는 이와 관련하여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가 있었기에 여기에 적어본다. 운전대를 잡은 우리 남편은 “충북에 있다면 중부고속도로로 가다 보면 있겠지” 하면서, 아내가 심심할까봐 DMB 방송을 선사하고 중부선을 신나게 타더니만, 호법분기점에 못 미쳐 그래도 혹시나 하고 내비게이션을 찍어본다. 그러더니 나를 보고 “큰일 날 뻔했다”면서 “원주로 가서 내려가야 제천”이라고 말한다. 말이 충북이지, 제천은 강원도에 가까웠던 것이다. 자칫 잘못했으면 국도와 지방도로를 헤집고 다닐 판이었으니, 떠나기 전에 위치 확인은 필수! 천주교 박해와 진리 탐구의 현장

‘배론’은 마을이 위치한 계곡이 배[舟]의 밑바닥을 닮았다 하여 생긴 이름이지만, 원래는 도점촌(陶店村)이라 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도자기를 굽던 곳인데, 신해박해(辛亥迫害) 이후 조선 정조 15년(1791년)부터 이곳으로 교인들이 숨어들기 시작했으며, 숨어든 교인들 역시 옹기를 구워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배론성지 인근에 도착하면 멀리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도록 정말 큰 십자가가 보인다. 홍수가 나면 금방 넘칠 듯한 조그만 배론교를 건너 차선이 없는 소방도로로 들어서면 여기저기 아름다운 펜션이 보이고, 구학2리 마을회관을 지나치면서 ‘도미니꼬회 봉쇄수녀원’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음~봉쇄수녀원이라…. 조금 더 가니 소형 주차장이 보이는데, 나도 노년에 가지고 싶은 허브 사랑 카페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사람들이 가족단위로 왔는지 몇 명씩 여기저기 모여 있는데도 조용한 분위기가 숙연했다. 필자는 모처럼 기도하는 마음으로 배론성지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200여 년 전 당시의 박해와 진리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배론성지에 대해서는 크게 3가지가 주목된다. (1) 조선 순조 1년(1801년)에 황사영이 배론 산중으로 피신하여 조선 교회의 박해 실상과 청의 도움을 청하려는 1만3,311자의 명주 백서(帛書)를 작성해 베이징[北京]의 주교에게 보내려다 발각되어, 그해 음력 11월 5일 궁흉극악대역부도죄(窮凶極惡大逆不道罪)로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을 당하였다(당시는 북벌론이 대세). 황사영은 왜 천주교에 빠졌을까? 거기에는 처삼촌인 정약종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2) 이 땅의 첫 서구식 대학인 성요셉 신학교가 1855년에 세워져 학생 10명에 2명의 교수신부가 있었다가, 고종 3년(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로 신학당은 폐쇄되었다. (3) 김대건 신부(안드레아)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 신부(토마스)가 배론성지에 묻혀 있다. 김대건·최양업 신부는 1836년, 최방제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마카오 유학생이다. 당시 모방 신부가 서약서로 받은 제1회 조선 신학생의 선서문(1936년 12월 2일)은 귀중한 자료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황사영 백서의 원본은 현재 바티칸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읽어보니 정말 그때의 실상을 생생하게 알 수 있어 역사적 가치로서도 소중하다. 사색과 명상의 여행지로 최적

이곳에서 최양업 신부 묘소나 순교자 황사영 백서 토굴 등 역사적인 가치로도 눈여겨볼 곳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은 참으로 특이하게 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론성지의 의미처럼 이 성당은 배 모양으로 설계·시공되었다는데, 천정이 노아의 방주 모양 같다. 배론성지는 남녀노소 누구든지 가을 단풍과 함께 고독에 빠지고 싶거나, 아니면 도심을 벗어나 명상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인생의 성숙미를 절로 체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한다. 주말 여행지로 적극 추천하고 싶다. 가다 보면 의림지도 있으니 금성첨화이다. 배론성지에서 나와 제천 방향으로 가다 보면 박달재 터널이 나오는데, 1948년에 가수 박재홍이 부른 트로트 곡 <울고 넘는 박달재>가 생각난다.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의 이 노래는 거기에 담긴 서민적인 정서가 공감을 얻어 지금까지도 애창되고 있다. 여기서 잠시 이 팁으로 주는 사회 공부를 해보자.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라는 가사에서 ‘박달재’는 천등산에 있는 고개일까 아닐까? 답은 ‘아니다’이다. 천등산은 충청북도 제천시와 충주시 경계에 있는 산인데, 이 산을 넘는 고개의 이름은 ‘다릿재’이며, 박달재는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을 연결하는 고개라고 한다. 배론성지로 가는 길 서울에서 출발 승용차 경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제천 방면)→신림IC →국도(제천 방면) →배론성지 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제천 방면)→신림IC →국도(제천 방면) →배론성지 열차 청량리역→원주 경유→제천역→배론성지 영등포역→구학역 하차, 3.5km 도보→배론성지 고속버스 동서울터미널-탁사정 하차(제천행 버스)→ 3.5km 도보 →배론성지 부산에서 출발 승용차 대구→안동→영주→단양→제천→배론성지 열차 부산역→안동 경유→제천역→배론성지 대전역→청주 경유→충주 경유→배론성지 <배론성지 운행 시내버스 시간> 제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 06:10, 07:00, 09:35, 13:45, 18:45 배론성지에서(성지 주차장)- 07:20, 08:30, 10:55, 14:0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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