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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선생의 藝香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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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41호 편집팀⁄ 2009.10.27 15:46:07

글·사진 송영순 여행전문기자 sys5602@hotmail.com 충남 예산군 신안면 용궁리에 가면 특별한 곳이 있다. 조선 후기 실학의 3대 유파인 실사구시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조선 최고의 명필로서 우리나라 문인화의 최고 경지에 오른 예술가 김정희 선생이 있는 곳이다. 화창한 날, 필자는 승용차로 서울 잠실병원 앞에서 출발하여 140km, 약 3시간 만에 도착하니, 드디어 ‘추사 김정희 고택’이라는 안내판이 나타나고 곧 ‘추사기념관’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충남 예산은 백제 때 오산현이라 하고, 신라 경덕왕 때 고산현으로 되었다가, 고려 태조 때 예산현으로 개칭되어 지금에 이르는데, 조선 초기 학자로 동국여지승람을 저술한 서거정이나 일제시대 때 순국한 윤봉길 의사가 여기 출신이라고 한다. 그냥 눌러 살고 싶은 추사 선생의 고택

선명한 추사기념관 입간판 옆에는 첨성대 모양과 비슷하게 만든 것이 원통 모양에다 위에 뚜껑을 올린 형태인데, 한자로 전체를 새겨 추사와 현대적 감각을 같이 살려둔 것처럼 보였다. 옆에는 2008년에 건립된 기념관(대지면적 3,663㎡, 연면적 1,576㎡)이 아주 깨끗하게 모양을 뽐내고 있었는데, 안내인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이 자동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전시와 설명이 잘 되어 있었다. 전시실 안에서는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고 하여 찍을 수가 없었다는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추사 선생은 1786년 6월 3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영조의 부마인 월성위 김한신의 증손이며 이조판서 김노경의 아들로 태어나 백부 김노영에게 양자로 입양되었다. 선생은 어려서 박제가의 수제자가 되었다. 34세에 충청우도 암행어사가 되고, 성균관 대사성, 병조참판을 지내다가, 1840년 55세에 당쟁에 휘말려 제주도에서 9년 간 유배생활을 하였고, 71세를 일기로 작고하였다고 한다.

또한 추사 선생은 북학파의 거벽으로 청조의 고증학풍을 도입하였으며, 실사구시파의 대표주자였고, 경학·금석학·지리학·천문학에 이르기까지 박식하였다. 북한산 기슭의 비석이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임을 고증하기도 하였으며, 제주도 유배생활을 마쳤을 때에는 청나라 문필가들도 칭송을 아끼지 않은 그 유명한 추사체를 만들어내었다. 저서로는 완당집·예당금속과안록(禮堂金石過眼綠)·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완당척독(阮堂尺牘)·담연재시고(覃연齋詩藁) 등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묵란도·묵죽도와 국보 180호로 지정된 세한도(개인 소장) 등이 있다 추사 고택 안내도 앞에 서니, 고택을 비롯하여 김정희 선생의 묘와 월성위 김한신의 묘, 화순옹주 정려문 등이 찾기 쉽게 나와 있다. 전반적으로 조용한 공기는 관람을 하는데 저절로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하였다. 추사 고택으로 들어갔다. 한마디로 깨끗했다. 흙바닥인데도 너무 깨끗하여 발로 디디기가 조심스러울 정도였다. 마당에는 사랑채와 안채·사당·문간이라고 쓴 화살표 입간판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커다란 안채에는 여섯 칸의 대청과 두 칸의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사랑채에는 남쪽에 한 칸, 동쪽에 두 칸의 온돌방이 있으며, 나머지는 대청과 마루로 되어 있다. ‘ㅁ’자 형태의 가옥인데, 이는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대갓집이다. (처음에는 53칸의 대저택이었으나, 지금은 20여 칸만 남아 있다.) 잘 보존되어 있는 추사 선생의 고택은 오래된 향기가 절로 나면서 그냥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관람객들의 표정을 보니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고택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石年’이라고 추사체로 쓴 돌기둥이 있다. 사랑채 앞에 세워진 이 돌기둥은 해시계 받침 용도로 쓰였는데, 추사 선생의 아들인 김상우가 추사체로 쓴 것이라고 한다 기왕 나선 김에 온천에서 풍진을 씻고 고택을 한 바퀴 돌면서 큰 굴뚝을 2개나 보았는데, 미끈하게 잘도 만들어졌다. 부엌의 아궁이들은 지금 당장 불을 지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뒤쪽으로 올라가니 김정희 선생의 사당이 나온다. 경건한 마음으로 예를 표한 다음, 다시 사랑채 쪽으로 나와 좁은 문(협문)으로 나가니 우물이 있는데, 뚜껑이 덮여 있고 습기가 없는 것을 보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고택에서 옆으로 200m 거리에 추사 김정희 선생의 묘가 나타났다. 추사 선생의 묘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88호로 1984년에 지정되었다. 묘의 좌우에는 돌기둥을 하나씩 두었으며, 주변에는 대나무와 소나무를 심었다. 비문에는 선생의 생애가 적혀 있는데, 경주 김 씨에 호는 완당 또는 추사인 김정희 선생은 평생 동안 사용한 아호가 200여 개나 된다고 나와 있다. 아호는 영어로는 닉네임이고 우리말로는 별명인데…왜 그랬을까? 김정희 선생의 묘 앞에 예산군에서 세워둔 설명문이 한글과 영어로 되어 있는데, 영어로 쓰여진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으면 다음과 같다. ‘His pen name was Wandang or Chusa. In his lifetime he used more than 200 nicknames.’ 추사 선생의 닉네임이 많은 이유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긴다. 아마도, 실사구시의 각종 표현을 하자면 당시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시대적 여건으로 미루어 봤을 때 닉네임 즉 아호가 많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김정희 선생 묘에서 내려와 다시 주차장 쪽으로 들어가면 ‘화순옹주 정려문’이라는 곳이 나타난다. 정려문은 추사 선생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영조의 차녀)의 정절을 기리고자 정조가 만든 열녀문이라고 한다. 화순옹주는 부군인 김한신이 38세의 나이로 작고하자 식음을 전폐하여 부군을 따르고 말았는데, 화순옹주는 조선왕조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라고 한다. 그리고 추사 고택에서 나와 도고온천 쪽으로 방향을 잡아보자. 이왕 예산까지 온 김에 가까운 곳에 있는 동양 4대 유황온천(도고온천, 중국 리산의 화칭온천, 일본 벳부온천, 인도 라자그라하온천)이라는 도고온천을 그냥 지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도고글로리콘도(1인당 온천 이용료 5500원)도 있고, 파라다이스 호텔도고도 있다. 파라다이스는 주중 가격 11만1000원, 주말 가격은 12만1000원이다. 2인 기준으로 호텔 1박, 조식, 스파 종일권이 포함된 가격이다. 숙박을 하지 않을 경우 스파 시설 종일권은 주중 2만3000원, 주말 2만80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찾아가는 길> 서울-경부고속도로-천안IC-아산-신례원-추사 고택 서울-인천-송악IC-해미IC-충의사-덕산온천-추사 고택 <관람시간> 하절기 09:00-18:00(3월~10월) 동절기 09:00-17:00(11월~2월) <관람료> 개인 어른 500원, 청소년 300원, 어린이 200원 <연락처> 041-339-8241 추사고택관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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