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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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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42호 편집팀⁄ 2009.11.03 10:26:11

글·사진 송영순 여행전문기자 sys5602@hotmail.com 어느 날 TV를 보는데, KBS에서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당시 장면이 담긴 필름을 찾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방영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 프로가 다 끝날 때까지 보고 난 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KBS가 왜 안 하던 행동을 하지? 이내 궁금해졌다. 그런데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100주년’이란다. 그러고 보니, KBS만 그런 게 아니라, MBC·SBS 등의 방송과 신문, 각종 지자체 행사 등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곳에서는 모두 안중근 의사(해외 의병부대인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의거 100주년에 맞춰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든지 50주년·100주년이 되어야 대접을 받는 세상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이 그렇다.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공로로 역사의 대접을 받고 있지만, 그는 민간인 신분이 아닌 대한의 군인으로서 조국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졌던 것이다. 하얼빈에서 부천으로 옮겨진 안중근 의사 동상 오늘은 다녀야 할 곳이 많다. 우선 서울 잠실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가다, 신도림역에서 1호선 인천행으로 갈아탔다. 그리고 목적지라고 내린 곳은 부천역. 역을 나와서 택시를 잡아 타고 기사 아저씨에게 행선지를 말했다. “안중근 의사 동상이 있는 곳으로 가주세요.”

택시 기사는 10분 정도 달리다 부천의 중앙공원 앞에 내려주면서, 안으로 들어가면 동상이 있다고 친절하게 안내를 한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공원 안으로 들어갔는데, 단풍철이라서 울긋불긋 정말 아름다웠다. 설악산이나 내장산에 갈 이유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한참을 걸어 들어가도 안중근 의사의 동상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A 신문에는 분명히 중앙공원이 안중근 의사 기념공원이라고 했는데…. 마침 공원에서 운동하는 아저씨가 있기에 물었더니, 잘못 찾아왔다고 혀를 찬다. 아뿔싸! 안중근 의사 기념공원은 중앙공원이 아니라, 10분 거리에 있는 중동공원이라는 게 아닌가. 헐레벌떡 다시 이동하여 겨우 안중근 의사 공원에 도착했다. 조금 전에 보았던 중앙공원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그래도 넓이가 1만7500㎡나 된다. 아, 저기 안중근 의사 동상 발견!

부천시는 이 공원에서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동상 제막식을 가졌다. 안중근 의사의 동상 아래에는 ‘하얼빈 안중근 의사 동상을 부천에 세우기까지’ 제하로 글이 쓰여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 동상은 2006년 1월 16일 역사적 의거 현장인 중국 하얼빈시에 세웠다가, 11일 만에 실내로 이전되었다. 우국충정으로 동상을 제작했던 안중근의사동상건립위원회 이진학 회장이 2009년 10월 12일 안중근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를 통해 부천시에 기증했다. 부천시는 중동공원의 이름을 안중근공원으로 바꾸고,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으로 안중근 의사의 민족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동상을 세우다. 2009년 10월 26일 부천시장 홍건표.’ 돌이켜보면, 안중근 의사만큼이나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동상도 어려운 길을 걸어왔다. 중국 정부에서 세우지 못하게 한 것은 그렇다 치고, 한국에 들어올 때부터 온갖 잡음이 일었다. 보훈처에서는 국내외적으로 공인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내 반입을 반대하고, 문화부는 묵묵부답이었는데다, 언론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에 안중근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에서는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 9월 1일 동상을 반입해 보금자리를 찾던 중 여러 시·군에서 유치 의사를 밝혀온다. 즉, 안중근 의사 동상은 전남 함평군을 비롯하여 경기 부천·군포·구리시 등 자치단체와 국방대·경상대·육군사관학교 등의 학교에서 유치 의사를 갖고 절차 등을 문의해왔으나, 보다 적극적으로 나선 부천시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 안중근 의사 동상은 대한민국 현역 군인이던 이인희 대령(육사 39기)이 설계·디자인하고, 중국 하얼빈 공과대학 양세창 교수가 조각하였다 남산 동상은 교육자 모습, 독립군 기상은 부천 동상에 필자는 다시 전철을 타고, 1974년부터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서울 남산공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남산에 있는 동상은 부천에 세워진 동상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멋진 나비넥타이에 미소를 띤 모습이 온화하게도 생겼다. 사실 부천의 안중근 의사 동상은 시선도 매섭고 힘이 들어가 있으며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용맹스러운 기상이 엿보였는데, 남산공원의 동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일본군을 격퇴한 용감무쌍한 군인이라기보다는, 선생님같이 부드러우면서 정적인 인상이다. 남산에 있는 동상은 안중근 의사가 항일 무력투쟁 이전인 1906년에 돈의학교와 삼흥학교를 운영하여 영재 양성에 전력할 때의 교육자 안중근이고, 부천의 동상은 독립군 때의 모습으로 보인다. 마침 관광객들이 몰려왔다. 중국인들이었다. 여기 남산공원의 안중근 의사 동상과 기념관에는 관광객이 많이 온다는 소문이다. 한국 사람보다 중국 관광객이 더 많이 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관광 가이드가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한참 안중근 의사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중국인 관광객들은 무슨 감명을 받았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단체로 목례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남산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사단법인 안중근의사숭모회(02-771-4195)에서 운영한다. 1000원을 내고 입장권을 샀는데, 신기하게도 입장권에는 남산의 안중근 의사가 아닌 ‘하얼빈시에 세워져 있는 안중근 의사 동상’ 제목으로 사진과 글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만큼 부천에 있는 안중근 의사 동상의 의미를 높이 사는 것이 아닐까? 기념관은 1970년 10월 26일 개관하였는데, 실내 전시실과 안중근 의사 광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내 전시실은 안 의사 일대기와 하얼빈 의거, 재판 과정을 다룬 영상물, 옥중생활 모형, 옥중에서 쓴 글씨(유묵), 안 의사가 발렘 신부에게 보낸 엽서, 활약상을 담은 수퍼그래픽 등을 통해 안 의사의 생애와 위업을 생생하게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안 의사 광장에는 동상과 어록비 등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수퍼그래픽에는 안 의사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1명의 동지와 동의단지회를 조직할 때까지의 활약상이 담겨 있다. 게다가 어록들은 기념관 주변에 표지석으로 되어 있어, 지나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오늘의 여행은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하얼빈시에서 넘어온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찾아 부천을, 안중근 기념관과 동상을 찾아 남산을 순회하였고, 내친 김에 112년 만에 시민들에게 10월 28일 개방한 독립문을 찾았다. 서재필 박사가 조직한 독립협회가 주축이 되어 사대주의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자주독립국임을 국내외에 선포하기 위해 건립한 독립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다. 독립문은 1896년 7월부터 최초로 전 국민적인 모금운동을 전개한 성금으로 공사를 시작해 1897년 11월 20일 완공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입장료·관람시간 경기 부천의 안중근 의사 기념공원은 무료이다. 남산도 무료이지만, 안중근 의사 기념관의 관람은 유료이다. 개인 일반이 1000원이고, 학생은 700원이다. 개관 시간은 3월~10월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11월~2월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교통 부천에 갈 때에는 지하철이 편리하다. 남산공원에 갈 때에는 시내버스 402번(광화문-시청-남산도서관-신사역-강남역-수서), 0014번(보광동-이태원-남산도서관-시청-종로1가)을 타면 된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는 남산 순환 마을버스를 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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