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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자연의 유작 된 ‘씁쓸한’ 영화

30대 남자들의 성장통 그린 <펜트하우스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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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42호 이우인⁄ 2009.11.03 10:06:29

이우인 기자 jarrje@cnbnews.com 프리랜서 포토그래퍼인 현우(장혁 분)는 5년 간 교제해온 애인에게 버림받고 그녀와의 추억에 집착해 신경쇠약 증세까지 보이고 있다. 대마초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자꾸만 핸드폰으로 향하는 손가락을 자르는 상상을 하는 등 그가 그녀를 잊기 위해 안 해본 일은 없다.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해봤다. 그러나 죽을 용기가 없는 현우는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 부잣집 아들에 성형외과 전문의라는 선망의 직업까지 두루 갖춘 민석(조동혁 분)은 섹스에 집착한다. 그것도 진료 도중 진료실에서 여성 환자와 나누는 스탠딩 섹스, 자학적이고 변태적인 섹스처럼 비정상적인 섹스만 좋아한다. 그에겐 수연(이민정 분)이라는 아름답고 지성까지 갖춘 아내도 있다. 그러나 아내에겐 뭔가 허전함을 느낀 그는 매일 습관처럼 섹스 상대를 바꾼다.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가 성공한 외국계 금융 전문가가 되어 12년 만에 나타난 진혁(이상우 분)은 12년 전에 헤어진 첫사랑을 되찾기 위해 돌아왔다. 상대는 다름 아닌 민석의 아내 수연. 절친한 친구의 아내와 불륜에 빠진 진혁은 수연과의 사랑을 이룰 수 있다면 친구뿐 아니라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남자이다. 펜트하우스(Penthouse)는 아파트나 호텔의 맨 위층에 있는 고급 주거 공간이다.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11월 5일 개봉)는 이런 고급 주택에 살면서 상류층 생활을 누리는 세 남자의 비정상적인 사랑과 함께 30대 남자들의 성장통을 그린다. 10월 29일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처음 베일을 벗은 이 영화는 포스터와 예고만큼이나 자극적이었다. 벗고 섹스하고 자살하고… 특히 <펜트하우스 코끼리>는 지난 3월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 배우 고 장자연의 유작으로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그러나 유작에서 장자연이 보여준 연기는 벗고 섹스하고 매달리고 버림받고 자살하는 게 전부다. 이 모습이 불행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실제 상황과 겹치며 씁쓸함을 남긴다. 극 중 장자연은 바람둥이 민석과 섹스를 즐기는 ‘텐 프로’ 출신 여배우로 나온다. 현우·민석·진혁이 들른 고급 룸살롱에서 처음 등장하는 그녀는 민석과 여러 명이 보는 가운데 섹스를 하거나 민석의 변태 취향에 맞춰 간호사 가운을 입은 상태로 섹스의 상대가 돼주기도 한다. 장자연의 출연 장면 대부분이 정사 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녀는 민석의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과 민석의 아내 수연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결국 욕실에서 면도칼로 자살한다. 핏빛 욕조에서 눈을 뜬 채 사망한 그녀의 모습은 연기가 아닌 실제처럼 느껴진다. 장자연의 정사 장면과 자살 장면은 영화 개봉 전부터 알려져 논란이 돼왔다. 영화사는 장자연이 출연한 분량을 삭제하지 않는 데 대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장자연의 출연 장면을 삭제하기에는 그녀가 영화에서 갖는 비중과 분량은 너무나도 컸다.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할 정도이다. 정승구 감독은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여러 배우와 스태프가 만드는 작업이다”라면서 “영화 촬영이 끝나고 CG(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하고 있을 때 그 사건(장자연 사건)이 일어났다. 장자연 씨를 대신할 배우도 없었고, 제작 여건이나 환경 역시 넉넉하지 않았다”고 재촬영을 하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정 감독은 이어 “민감한 부분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내부적인 갈등도 있었다”면서 “그러나 숙고한 끝에 이 편집 본을 내놓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 영화에서 장자연과 많은 시간을 호흡한 배우 조동혁도 장자연 사건에 대해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촬영할 때 굉장히 밝고 열심히 하고 좋은 모습을 자주 보여주던 친구라서 더 많이 놀랐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한편, 장자연은 앞서 개봉된 자신의 유작 <정승필 실종사건>에서도 성을 상품화하는 연기로 안타까움을 자아낸 바 있다. 왜 하필 <펜트하우스 코끼리>? “왜 하필 제목이 <펜트하우스 코끼리>일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떠오르는 생각이다. 영화에는 펜트하우스에 사는 상류층 주인공들이 나오고 이들이 모두 어린 시절 동물원에서 본 코끼리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펜트하우스+코끼리=펜트하우스 코끼리’라는 이상한 조합이 탄생됐다고 보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원 제목은 <코끼리를 찾아서>였다. 지금의 제목은 소설가 김영하의 입김에 의해 영화 크랭크인 한 달을 앞두고 감독이 변경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코끼리를 찾아서>였을까? 이 영화에서 코끼리가 가진 의미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정승구 감독은 “은유적으로 코끼리는 성적(性的) 기호로 볼 수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등장인물 세 명의 향수를 나타낸다”면서 “이들의 유년 시절을 영화와 맞물려서 생각하면 제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현우가 코끼리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하는데, 그의 기억 속 코끼리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친구들과 놀러 간 동물원에서 살고 있다. 당시 현우의 어머니는 “혹시 길을 잃거든 코끼리가 있는 곳에서 만나자”라고 아들을 안심시킨다. 어머니의 말만 믿고 놀던 현우와 친구들은 정말로 길을 잃자 코끼리를 찾는다. 코끼리만 찾으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아이들. 그러나 코끼리 우리는 예상보다 어마어마하게 컸고, 가만히 있지 않는 코끼리는 아이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현수는 새로 찾아온 사랑 장 선생(황우슬혜 분)에게 “그때가 태어나서 가장 무서웠던 경험이었어요”라고 고백한다. 현수와 친구들에게 코끼리는 단순한 동물이 아닌, 어머니를 만나게 해주는 포근한 존재였던 것이다. 코끼리와 함께 수반되는 궁금증이 있다. 30대의 성장통을 그렸다고 주장하면서 왜 하필 펜트하우스에 사는 상류층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뤘을까? 상위 1%의 이야기가 일반 관객에게 어떤 공감을 줄 수 있단 걸까? 이에 대해 정 감독은 “럭셔리한 모습 등은 외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하면서 “또한 조폭 영화가 조폭만 보는 영화가 아니듯 우리 영화 역시 상류층뿐 아니라 일반 관객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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