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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죽음의 미스터리

모차르트 ‘독살설’은 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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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45호 편집팀⁄ 2009.11.23 14:24:32

1984년에 영화 <아마데우스>가 상영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궁전의 음악감독 살리에리(Salieri)가 질투심을 못 이겨 모차르트(Mozart)를 살해했다고 믿고 있으나, 이것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모차르트는 35년이란 짧은 생애에 41개의 심포니와 27개의 피아노 콘체르토 등 600편 이상의 작품을 남겼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살리에리가 독살했다” 루머 돌아 1791년 12월에 모차르트가 사망한 후, 얼마 안 되어 비엔나에는 그의 경쟁자 살리에리가 독살을 사주했을 것이라는 루머가 떠돌기 시작했다. 말을 함부로 하기로 이름난 모차르트는 누군가가 자기를 독살하려 하고 있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 이것이 이런 루머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 루머가 오늘날까지 지속된 이유 중 하나는 러시아의 국민적 시인인 푸슈킨(Pushkin)이 쓴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단편 연극이었는데, 이 연극은 살리에리가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질투심 때문에 모차르트를 살해한다는 내용이었다. 1979년에는 영국의 극작가 피터 셰이퍼(Peter Shaffer)가 <아마데우스>라는 연극을 만들어 많은 나라에서 공연하였으며, 1984년에는 이 연극을 토대로 만든 영화 <아마데우스>가 아카데미 8개 부문의 상을 휩쓸면서 블록버스터가 되었다. 이 영화에서 살리에리는 2류 작곡가로 등장하는데, 극도의 열등감과 질투심에 사로잡혀 모차르트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그는 익명으로 하수인을 시켜 모차르트에게 거금을 주어 장례곡(requiem)을 작곡하도록 하고, 모차르트가 죽은 후에 이것을 자신의 곡으로 가장하여 모차르트의 장례식에서 연주하겠다는 흉하고도 화려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진실은 이러한 내용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영화의 내용과는 달리, 이탈리아 출신의 살리에리는 당대의 유명한 작곡가로서 40편의 오페라를 작곡하였으며, 죽을 때까지 오스트로-헝가리제국(성로마제국) 황실의 작곡가와 음악감독을 40년 간 역임한 유명 음악인이었다. 그는 베토벤과 리스트 같은 거장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기록들을 보면,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관대히 대해주었으며, 모차르트의 아들도 살리에리로부터 작곡을 배우기도 했다.

1788년에 살리에리는 궁전 음악감독으로 승진하면서 자신의 오페라와 더불어 모차르트의 작품인 <피가로의 결혼>을 공연하였으며, 살리에리는 이 초연을 보면서 극찬하였다. 그러나 이 오페라가 황제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몇 회 만에 막을 내리자,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의 음모 때문이라고 불평하기도 하였다. 다만, 살리에리는 이 젊고 경솔한 욕쟁이 신인 스타가 자신의 인기를 능가하자 내심 질투심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모차르트에게 장례곡을 쓰게 한 사람은 살리에리가 아니라 아마추어 작곡가인 어느 백작이었다. 그는 자기 부인이 20대 초반에 사망하자 이 장례곡을 자기가 작곡한 것처럼 가장하여 발표하려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모차르트의 사망 원인이 수은 독살이었다는 소문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독살이 아니라 급성 질환임에 틀림없다. 지난 218년 간 모차르트의 사인으로 붙여진 병명은 100개가 넘는다. 그중에는 결핵·신장염·뇌출혈·류머티즘열 등 수많은 질병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2001년에 새롭게 제시된 진단은 잘 익히지 않은 돼지고기를 먹어서 걸리는 기생충병(trichinosis)이었는데, 이 진단에 찬성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어린 모차르트 괴롭힌 류머티즘열 그러면 진실은 무엇일까? 그가 사망한 1791년의 가을까지 그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왕성한 작곡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11월이 다가오자, 그는 열과 반점을 동반하는 중병에 걸려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증세가 악화된다. 그는 손발이 심하게 붓기 시작하더니, 약 2주 후에 의식을 잃고 그 사흘 후에 사망한다. 이때의 의학 수준은 청진기와 체온기도 없을 정도로 열악하였으며, 물론 피검사도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정확한 진단은 불가능했으며, 부검도 시행되지 않았다.

모차르트 아버지의 상세한 편지와 여러 자료들을 검토해본 결과 필자는 모차르트가 류머티즘열(rheumatic fever)로 인한 심장판막증(rheumatic heart disease)과 그 합병증인 급성 심내막염(acute infective endocarditis)으로 사망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 진단이 사실이라면 모차르트가 소년 시절에 류머티즘열을 앓았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류머티즘열은 대부분 초등학교 시절에 시작되며, 고열과 편도선염, 피부의 반점, 그리고 관절이 아픈 증세가 특징이다. 이 병은 연쇄상 구균(streptococcus)의 감염으로 발생하는데, 치명적은 아니지만 재발할 수 있으며, 보통 10년에서 30년 후에 심장판막증을 발생시키는 특징이 있다. 이 병은 페니실린이 발명되기 전에는 자주 발생하는 유행성 질환이었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평생 동안 편지를 많이 썼는데, 모차르트의 질병에 대해서도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그의 편지에 의하면, 모차르트는 1762년 6살 때 비엔나를 방문하던 중 고열과 반점을 동반하는 병에 걸린다. 편지에는 성홍열(scarlet fever) 또는 결정성 홍반(erythema nodosum)이 보였다고 적혀 있는데, 이 병은 후일에 심장판막증을 일으킬 수 있다. 1763년에 모차르트 일가는 잘츠부르크로 돌아왔다. 이때 모차르트는 다시 한 번 열에 시달리고, 이번에는 발과 관절이 아파서 류머티즘성 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으며, 1주일 동안 걷지도 못하고 누워 있었다고 쓰여 있다. 그 후 1764년에 파리를 방문한 모차르트는 다시 한 번 병에 걸리는데, 아버지의 편지 내용에 의하면 편도선염 또는 편도 주위 농양 진단을 시사한다. 이 세 가지의 병은 모두 연쇄상 구균으로 인해 발생하는 류머티즘열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여러 학자들이 모차르트가 류머티즘열로 사망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하지만 류머티즘열은 주로 18세 이하에서 발생하고 극히 드물게 사망할 수 있으나, 이 병은 소아 시절에 주로 발생한다. 그리하여 모차르트가 류티즘열로 사망했다는 학설은 호응을 받지 못하였고, 대신 류머티즘열의 합병증인 심장판막 내막염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언급되기는 했으나, 가장 중요한 사인으로 제시되지는 않았다. 모차르트 死因은 심장판막 내막염 심장판막 내막염은 세균이 심장판막에서 자라기 시작하여 판막이 파괴되고 궁극적으로는 심부전증으로 사망하는 병이다. 균의 종류에 따라, 아급성 내막염은 보통 3개월에서 1년까지 끌 수 있는 병이지만, 급성 내막염은 페니실린 같은 항생제의 치료 없이는 2주에서 한 달 이내에 사망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이 병은 고열과 동시에 반점과 심부전증으로 부종이 심하게 발생할 수 있는데, 이 모든 증상이 모차르트가 사망하기 전 2~3주 동안 관찰되었다. 그리고 그는 죽기 전에 의식을 잃었는데, 이는 약 20~30%의 급성 내막염 환자에게서 발생하는 뇌색전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차르트가 앓았던 소년 시절의 병과 최후의 급성 질환 모두 류머티즘성 심장판막증과 그 합병증인 내막염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물론 모차르트가 20세기에 태어났다면 심장의 청진과 심초음파 그리고 피검사 등으로 간단히 진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항생제 치료로 더 오래 장수하여 우리에게 더 많은 음악을 선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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