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가 성공한 프로듀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 시작이죠. 수년 동안 뮤지컬을 제작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통해 이제야 신시컴퍼니와 박명성 프로듀서가 해야 할 역할이 뭔지 터득했습니다.” 신시컴퍼니의 박명성 대표는 프로듀서로서 성공한 노하우를 들려 달라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신시컴퍼니는 <맘마미아!> <시카고> <렌트> <헤어스프레이> <아이다> <갬블러> 등 해외의 유명 라이선스 뮤지컬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뮤지컬 제작사이다. “‘브로드웨이 박’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공연계에서 그는 유명 인사이다. 정식으로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공연을 올리는 개념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서울 양재동에는 구룡사(九龍寺)라는 절이 있다. 그리고 이 절의 지하에 신시컴퍼니가 있다. 국내를 대표하는 뮤지컬 제작사와 절이라…,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도 서양의 뮤지컬을 가장 많이 소개한 제작사가 가장 한국적인 색채가 강한 절에 숨어 있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 이런저런 의심을 품고 찾아 들어간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가 일하는 공간에 들어가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그와 얼굴을 마주하기까지는 이로부터 10분이 더 걸렸다. 직원들에게 이것저것 말하느라 기자는 안중에도 없었다. 조금은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기자를 알아차리고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의 눈에는 인터뷰 외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대단한 집중력이었다. 인터뷰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어떠한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는 강한 자신감이 배어 나왔다. “신시컴퍼니가 돌아갈 곳은 연극” 공연을 제작하는 사람을 공연 프로듀서라고 부른다. 박명성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기획에서 쫑파티까지 책임지는 총체적인 디자이너’가 바로 공연 프로듀서이다. “한 작품을 운영하고 한 회사를 경영하는 총체적인 디자이너죠. 라이선스를 획득하고 극장을 고르고 빌리고 스태프를 구성하고 오디션을 열어 배우를 뽑는 등 한 작품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재정적·행정적인 모든 파트를 책임집니다.” 공연 프로듀서로 자리를 잡았지만 그가 “이제 시작이다”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아직 진짜 목적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그 목적은 바로 연극의 대중화이다. 뮤지컬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는 연극에 목말라 있다. “<댄싱 섀도우>를 하면서 배운 게 하나 있어요. 계속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모험의 세계에 빠져야 한다는 사실이죠. 이것이 공연계에서 신시컴퍼니와 제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하죠. 제겐 순수예술인 연극을 대중화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순수예술이 활성화돼야 뮤지컬도 지금의 좋은 기세가 꺾이지 않습니다. 바닥이 튼튼해야 나무가 잘 자라고 기둥뿌리가 튼튼해야 집이 튼튼하게 버티듯이 말이죠. 지금까지의 경험과 노하우를 발판으로 우리의 콘텐츠를 만들 생각입니다.” 그가 뮤지컬과 연극의 대중화를 이뤄 궁극적으로 꿈꾸는 일이 있다. 해체되고 있는 한국의 가족을 문화로 통합하는 일이다. “온 가족이 문화생활을 즐긴다면 그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식사를 하면서도 공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작품을 고르면서 다투기도 하고… 얼마나 예쁜 모습일지 상상만 해도 즐겁습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올랐나요? 프로듀서가 되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한 건 아니에요. 대학로에서 연극배우로 시작해 조명기사부터 음향기사·조연출까지 10년이 넘게 무대 뒤에서 연극에 필요한 일은 거의 다 했어요. 프로듀서의 길을 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프로듀서라는 직업 자체가 없었고요. 배우 일에 소질이 없어 시작한 연출 일이었지만, 눈앞이 캄캄했죠. 그렇지만 무대를 떠나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공연계에서 앞으로 가능성은 있지만 아무도 선호하지 않는 길을 찾기 시작했고, 그 길이 바로 기획이었습니다. 프로듀서로 성공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입니까? 프로듀서는 많은 제작비를 움직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투명해야 합니다. 프로듀서는 절대로 구설수에 오르면 안 돼요. 그리고 당연히 예술적인 소양을 갖춰야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작품을 고르는 능력이나 해석하는 시각이 남보다 뛰어나야 해요. 작품의 진로를 결정하는 역할이니까요. 또한 시대의 흐름을 빨리 파악해야 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관객에게 보여줄지를 충분히 고민해야 해요. 화제작을 만들려면 항상 열정과 모험정신·도전 정신·실험 정신도 필요합니다. 배우가 꿈이었다니 의외입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접한 연극이 저를 이 세계로 이끌었죠(웃음). 뮤지컬 프로듀서 중에 연극의 밑바닥부터 경험을 쌓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연극에서 잔뼈가 굵은 프로듀서는 제가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프로듀서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나요? 그런 건 없습니다. 갑자기 프로듀서로 나타난 사람도 있으니까요(웃음). 다만 저는 청년 시절부터 연극계에서 해온 온갖 허드렛일이 지금의 탄탄한 맷집을 갖게 했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 딱 맞더군요. 자질구레한 일까지 다 아는 프로듀서 밑에서 일하려면 직원들이 힘들겠어요. 물론 모든 분야를 다 경험한 제게 변명은 안 통합니다(웃음). 작품을 제작하고 진행하면서 생기는 스태프들의 어려움을 제가 그들보다 먼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이해와 조언을 해주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뮤지컬로 큰 돈을 벌 수 있나요? 에이, 뮤지컬로 돈 못 벌어요. 100편 중 고작 10편이 성공하는 걸요. 이 10편이 대부분 라이선스 뮤지컬인데, <맘마미아!> <아이다> <시카고> 등 신시컴퍼니 뮤지컬은 거의 다 성공했습니다(웃음). 창작 뮤지컬 중에는 <명성황후>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신시컴퍼니와 저는 이런 ‘대박’ 콘텐츠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프로듀서보다는 모험과 도전을 즐기면서 일할 수 있습니다. 이 대박 콘텐츠는 창작 뮤지컬과 연극을 만드는 밑바탕이 되니까요. 유명 뮤지컬로 수익을 창출해 그 수익금을 우리 창작 뮤지컬과 연극에 투자하는 일이 신시컴퍼니가 연극계에 공헌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듀서로서 느낀 최대 고비가 있다면요.
<댄싱 섀도우>로 20억 원을 손해 봤습니다. 그래도 그때 공부를 많이 했어요. 우리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을 모색한 일은 손실보다 훨씬 큰 경험이라고 봐요.
국내 프로듀서가 공통적으로 하는 고민은 무엇인가요?
콘텐츠는 많지만 극장이 부족한 현실을 모두 하소연합니다. 그리고 순수 콘텐츠 개발에 기업과 정부의 관심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고요. 관객에게는 창작 뮤지컬에 대한 애정이 더 있었으면 합니다. 물론 저희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만.
인기 배우의 겹치기 출연에 대해 프로듀서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어쩔 수 없을 땐 시키지만,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 공연을 하고, 내일은 다른 공연을 하고, 그런 건 정말 문제가 있어요. 제작사는 물론 배우에게도 손해죠.
스타의 무대 진출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나요? 정말 오디션을 보는 건지도 궁금합니다.
한국인이 연출할 때는 배역에 맞는 연예인을 선별해 캐스팅하기도 하지만, 연출자·음악감독·안무감독 등이 외국인인 작품은 그럴 수 없죠. 그들이 한국의 연예인을 알 리 없으니까요. 해외 스태프의 공연 오디션에서는 스타도 다른 뮤지컬 배우와 똑같은 기준에서 특혜 없이 오디션을 봐야 합니다.
대중 스타를 캐스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그건 스타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의 얘기죠. 신시컴퍼니가 제작한 공연은 스타 없이도 성공한 작품이 많은 걸요. 어디 <맘마미아!>가 초연 때 스타를 캐스팅해서 성공했나요? 당시 주인공인 박해미 씨는 인지도가 전혀 없는 배우였는 걸요. 그렇지만 스타 마케팅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스타 마케팅으로 홍보 마케팅의 비용을 줄이고, 대중에게는 뮤지컬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는 스타가 잘했을 경우입니다. 대중 스타일수록 정말 사명감을 갖고 작품에 자신을 투자하고 헌신해야 해요.
다른 뮤지컬 제작사와 차별되는 신시컴퍼니만의 특색은 뭔가요?
신시컴퍼니는 쇼(Show)적이고 오락적인 작품은 하지 않아요. 저는 주제의식과 감동이 없는 작품을 싫어합니다. 뮤지컬로 돈을 벌었지만, 연극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점도 다르고요. 현재는 연극 반, 뮤지컬 반 비율로 제작하지만, 100% 연극 제작을 위해 노력할 겁니다. 그리고 저희만의 큰 자랑은 끈끈한 조직력입니다. 팀장 6명 모두가 저와 10~16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죠. 때문에 다른 극단과는 다릅니다. 제작자가 일일이 관여하는 다른 제작사와 다르게 신시컴퍼니는 시스템으로 운영됩니다.
라이벌로 생각하는 뮤지컬 제작사 혹은 프로듀서가 있다면요.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픈 건 당연합니다. 알고 보면 치사한 일도 많고요. 겉으론 친한 척하지만, 속으론 경쟁하죠. 그렇지만 제겐 라이벌 제작사는 물론 그런 인물도 없습니다. 프로듀서는 작품으로 승부하면 됩니다. 작품을 잘 만들어야 신시컴퍼니와 박명성을 인정해주는 것이지, 제가 잘한다고 떠들어 봤자 소용없어요.
존경하는 프로듀서는 있나요?
한국 뮤지컬 역사가 길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윤호진 선생님과 김용현 PD를 좋아합니다.
가장 높이 사는 남녀 배우를 꼽는다면요.
남들은 식상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저는 남경주와 최정원을 꼽고 싶습니다. 두 사람은 연기에 대한 정신이 곧바르고 풍부한 감성을 가졌습니다. 또 인내와 끈기가 대단한 큰 배우이기 때문에 맷집이 아주 튼튼해요. 20년 동안 스타로 군림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연습실에 가장 먼저 나오고 가장 늦게까지 연습합니다. 작품에 대한 열정 역시 젊은 후배들 못지않죠. 3개월에서 5개월의 긴 공연에도 더블 캐스트를 원치 않습니다. 맷집의 한계점을 넘어선 배우라 할 수 있죠. 특히 최정원은 사생활부터가 순수하고 감동적입니다. 최근에는 저와 <피아프>라는 연극을 했는데요. 최정원에게 연극을 시킨 건 그녀에게 남다른 애정이 있기 때문이에요. 연극배우 최정원의 새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였죠. 나이를 더 먹으면 뮤지컬 주인공을 할 수 없게 되니까요(웃음).
박 대표의 마음을 가장 잘 읽는 스태프는 누구인가요?
음악은 박칼린, 연출은 뮤지컬 <아이 러브 유>를 연출한 한진섭과 연극 <피아프>를 연출한 심재찬이죠. 이 셋은 특히 저랑 제작 궁합이 잘 맞아요.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은 어느 것입니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렌트>입니다. 정말 파격적인 뮤지컬이었죠. 다음은 저희 회사의 돈줄인 <맘마미아!>와 <시카고>입니다. 우리 회사를 먹여 살리는 효자 작품이죠(웃음). 또한 중년 관객을 개발했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그리고 158억 원의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든 <아이다>도 있습니다. 정말 애간장을 다 녹인 작품이었죠. 하루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으니까요. 끝으로 정말 아쉬운 작품인 <댄싱 섀도우>가 있습니다. ‘헤어진 애인’ 같은, 환상에서는 만날 수 있지만 결코 가까이할 수 없는, 묘한 여운을 남긴 작품이죠.
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