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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빨래터’ 진위논란 2년…전문감정 필요 절감

전문가마다 다른 ‘안목감정’ 문제…객관적 시스템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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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148-149 김대희⁄ 2009.12.14 16:29:34

2007년 5월 22일 서울옥션 경매에서 사상 최고 금액인 45억2000만 원에 낙찰된 박수근 화백(1914~1965)의 작품 ‘빨래터’는 같은 해 12월 말 미술잡지 <아트레이드>가 ‘위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의혹이 불거지자 서울옥션은 한국미술품감정협회에 감정을 의뢰했고, 감정위원 20명은 이 작품을 진품으로 판정했다. 이에 <아트레이드> 쪽은 감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서울옥션은 2008년 1월 <아트레이드>를 상대로 3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법원에 냈다. 이후 2년 가까이 법적 공방으로 이어진 ‘빨래터’ 진위 논란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1월 4일 “원 소장자인 미국인 존 릭스 씨가 1954∼56년 한국에 근무하면서 박 화백의 그림 몇 점을 소장하게 됐다는 원고의 주장이 사실로 판단된다”며 “작품 ‘빨래터’ 역시 릭스 씨의 가족사진이나 비디오테이프에 나오는 박 화백의 그림들과 함께 릭스 씨가 박 화백에게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경매사가 주장한 출처, 즉 입수 과정의 신빙성에만 손을 들어줬지만, ‘빨래터’ 작품 자체에 대한 진위 판정은 하지 않았다. 가짜라는 의혹 제기도 정당하다고 판결한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경매 절차를 주관한 원고는 감정 결과에 대한 구체적 소개 없이 박 화백 장남의 진품 감정소견서만 제시해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법원은 ‘빨래터’에 사용된 표현기법이 박 화백의 전형적 스타일보다 생경하게 보이고 보존 상태 역시 너무 완벽해 의심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판단함으로써 ‘위작 논란’에 대한 불씨를 남겼다. 미술품 감정의 허점이 미술시장의 신뢰 추락 부추겨 사법사건으로 비화된 ‘빨래터’ 논란은 감정 시스템의 부재와 총체적 난맥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배경에는 ▲작가와 작품별 기초 자료 미확보 ▲작가(박수근)의 작품을 꿰는 전문가의 부재 ▲여론과 시간에 쫓겨 정밀 검증을 못한 점 ▲진품과 위작으로 갈라진 미술계의 여론 싸움 ▲사법부에 미술품의 진위 판단을 요구한 잘못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인정하는 감정기준과 ‘감정학’이 없는 점 등이 있다. ‘빨래터’에 앞서 천경자·이중섭의 위작 논란 사건 때도 이런 문제점들이 제기됐었지만,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논란의 진행 과정에서 ‘안목감정’에 대한 문제와 불신도 거론됐다. 비교할 만한 작품이 별로 없고 ‘박수근 전문가’가 없는 상황에서 안목감정을 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안목감정의 어려움은 전남 강진군의 청자 고가 매입 논란에서도 두드려졌다. 강진군은 청자상감모란문정병과 청자상감연국모란문과형주자를 각각 10억 원에 구입했는데, 몇몇 감정가들이 1억 원 미만이라며 감정가에 의문을 나타냈다. 이후 치러진 재감정에서도 감정위원들에 따라 1억 원 미만에서 10억 원까지 감정가에 큰 차이를 보였다. 미술품 감정은 미술 시장의 신뢰도와 거래 질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감정 시스템 부재와 난맥상은 미술 시장의 신뢰를 뒤흔드는데, ‘빨래터 논란’이 단적인 예다. 또 이번 논란을 거치면서 일반인들도 작품 유통 과정과 감정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감정의 방법론’을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해외의 경우 미술품에 대해 종류별·시기별로 세분화된 전문 영역을 가진 감정가들이 다른 전문가들과 상호 견제·협력하면서 객관성을 확보하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다. 또한 거래 시가 정보 공개도 활발하다. 프랑스의 ‘아트 프라이스’와 영국의 ‘아트 세일즈 인덱스’는 실시간으로 시가 감정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아트 프라이스는 2009년 현재 전 세계 2900개 경매장의 미술품 경매 결과 등 2500만 건에 이르는 경매 가격 정보를 온라인으로 공개하고 있다. ‘빨래터’ 공방 등을 계기로 전문가 감정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한 초보적 노력도 시작되고 있다. ‘빨래터’ 논란의 전모를 정리한 백서도 곧 출간된다. 이 백서는 애초 협회 자료집으로 나올 예정이었으나, 마로니에북스가 정식 책으로 올해 12월 25일 출간할 예정이다. 백서에는 2007년 말 <아트레이드>가 창간호에서 ‘최고 경매가 작품이 짝퉁?’이라는 위작 의혹을 제기한 때부터 올해 11월 4일 법원의 판결(‘진품인 것으로 추정된다’)에 이르기까지의 자료와 상황이 총정리된다. 옛 미술품에 대한 위작 논란도 이어지면서 진품을 가리려는 애호가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한국고미술협회는 12월 15~30일 문화재청 후원으로 종로구 수운회관 전시장에서 ‘한국 고미술대전, 진짜와 가짜의 세계’를 연다. 이번 전시는 비슷한 모양의 도자기·고가구의 진품과 위조품을 동시에 전시하여 직접 비교·분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특히 전시기간 중인 28~30일에는 무료로 자신의 소장품을 감정받을 수 있는 출장감정 행사도 함께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고미술협회 회원 등 개인 소장자들이 서화·도자기·목기·민속품 등 고미술품 1000여 점을 엄선해 출품할 예정이다. 모든 전시작들은 학계와 업계를 대표하는 감정 전문가들의 검증을 거친다. 이런 작업들을 통해 감정 전문가가 양성되고 객관적인 감정 시스템이 마련되길 미술계는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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