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아프리카 미술을 알면 마이클잭슨이 보인다 (중)

제2부 : 인간과 세계의 경계

  •  

cnbnews 제154호 편집팀⁄ 2010.01.25 17:23:31

정해광 (아프리카 미술관 관장·갤러리 통큰 대표) A.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마이클 잭슨이 태어난 1950년대는 많은 부조리가 있었다. 이데올로기는 둘째로 하더라도 흑인에 대한 차별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대중들이 타고 다니는 버스에도 흑인의 자리가 따로 있었고 많은 지역에서 흑인과 백인의 결혼이 법으로 금지돼 있었다. 이런 부조리가 긴 시간 동안 자행되고 있을 때, 마이클 잭슨은 인간과 삶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정형)을 바꿔놓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에서 인종차별은 물론 부자와 가난한 자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갈등이나 대립이 용납되지 않았다. 잭슨의 경계 넘나들기는 한편의 마술처럼 세상을 변화시켰다. 한 사람의 노력이 세상에 큰 믿음을 남긴 것이다. 이는 세네갈의 두츠(N. Douts)가 강조하는 “1=100, 100=1”라는 주제와 같은 맥락이다. ‘1=100’이라는 말은 하나가 모두와 같다기보다는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잭슨의 삶과 음악을 함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B. 모두는 하나를 위하여

잭슨은 자신의 곡에 자기 이름을 붙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드는 것은 자기의 일이지만 그것은 신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는 신이 주신 재능을 사용할 뿐이라고 했다. 자신의 모든 영광을 신에게 돌리려는 마음에서 현대음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가혹했다. 어린 시절에 겪은 아버지에 대한 공포는 세상 끝에 있는 사람들과 맞닿아 여기저기서 잭슨을 괴롭혔다. 그는 이 고통이 잠시 스쳐가는 신의 노여움이기를, 그리고 자신이 감내할만한 고통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면서 그는 절망을 경계했다. 왜냐하면 절망은 인간의 마음 속에 지옥을 만들기 때문이다. 콩고의 물람바(M. Mulamba)가 시련에 노출된 잭슨의 모습을 예수와 비슷하게 그린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의 음악이 기도가 되고 빛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C.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잭슨에게 춤은 인간성을 표출한다거나 이상적인 삶을 묘사하는 고도의 드라마와 같다. 일정한 리듬과 형식에 얽매이면서도 그것에 구애되지 않고 자기를 강력하게 표현하는 행위, 그러면서 자신과 관객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함께 엑스터시에 빠지는 데서 잭슨의 춤은 인간의 관계의미를 다시 끔 생각하게 한다. ‘모두가 주연’이라는 케냐의 카툰(J. Cartoon) 그림에서처럼 중심과 주변은 분리되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데서 주연과 조연은 서로의 중심이 된다. 이것은 자신을 대상세계와 분리시키지 않으려는 자타합일(自他合一)의 과정과도 같다. 물론 자기정체성을 드러내는 행위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잭슨의 춤은 인간 간의 관계를 분리시키지 않으려는 행위, 개인의 정체성을 공동체의 동질성으로 전환시키는 의식(儀式)이기도 하다. 이런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인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춤은 자신의 가치와 인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고도의 드라마가 된다.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