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윤식 보현보살은 중생들의 생명을 길게 해주는 덕을 펼치는 일명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어리석고 욕심 많은 가엾은 중생들에게 전생에서 쌓은 업보를 이승에서 풀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그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한편, 조금이라도 더 연장시켜주고자 하는 자비의 보살이다. 이러한 연유로, 석양의 낭떠러지에서 이승을 떠난 경우에는 비록 자살이라 하더라도 연명보살이 허락을 해준 ‘용서받은 작별’이기에 지옥에 가서 벌을 받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극락왕생할 수도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주는 또 다른 사유도 있다. 이는 죽은 자신의 영혼을 위해 누군가가 천도재를 지내주면 분명히 극락세계에 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희망에서 출발한다. 보현보살의 가르침을 대를 이어 따르고 실천하는 덕행의 하나로서, 매년 백중날이면 아미산의 최고 고승이 석양의 낭떠러지에서 죽은 영혼들을 위해 치러주는 천도재를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발 없이 천 리를 가는 소문인지라, 귀동냥을 통해 석양의 낭떠러지를 알게 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미산 정상에 숨어 있는 석양의 낭떠러지가 이제 더 이상 비밀스럽고 은밀한 장소가 아닐 날도 머지 않았다. 살아 있는 죽은 자 석양의 낭떠러지에서 낙하 일보 직전에 몸을 보존한 젊은 처자가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였다가 급작스럽게 이완되면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석곡아! 여기 보살님을 모시고 먼저 금정사에 올라가 쉬고 있거라.” 담운선사가 뒤늦게 석양의 낭떠러지에 도착한 석곡(石谷)이라는 남자 행자(속인으로서 절에 들어가 불도를 닦는 사람)에게 급히 서두르라고 일렀다 “소승도 같이 가겠습니다.” 그때 동자승 무애도 선뜻 나서 동행을 청하였다. 석양의 낭떠러지에서 다시 산 정상으로 되돌아 올라가는 행로는 여간 험난한 길이 아니다. 이 때문에, 자살하려고 홀로 석양의 낭떠러지를 찾았다가 마음이 바뀌어 돌아가려다 혼자 힘으로 도저히 가파른 골짜기를 오르지 못하여, 하는 수 없이 몸을 던지는 사람도 가끔 있다고 한다. 이것도 운명이라 체념하면서. 석곡은 스무 살 안팎의 청년으로서 무예가 출중하고 등반 경험이 많다고 했다. 그래선지, 젊은 처자와 무애를 데리고 무사히 산 정상으로 다시 올라가야 하는 책임을 떠안았지만, 염려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젊은 처자와 동자승은 짧은 사이에 깊은 감정적 교감이 싹튼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자연스레 잡은 손을 한시도 놓지 않은 채, 서로 도와가며 귀행(歸行)길에 올랐다. 버거운 표정을 애써 감춰가며 묵묵히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젊은 처자의 눈에는 아직도 이슬이 고여 있었다. 언제나 눈물이 마르려나 그저 안쓰러운지, 따뜻한 연민의 눈길로 위로를 보내는 어린 무애의 배려가 제법 사내다워보였다. 젊은 처자가 어느덧 안정을 되찾고 정상적인 행보에 무리가 없자, 숨이 차오는 발걸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무애는 이제 갓 여덟 살이지만,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귀엽고 앙증스러운 소년이다. 그런 꼬맹이하고 진지하게 담론을 주고받는 처자의 모습이 자못 의아스러웠다. 젊은 처자는 어린 동자승과 처음 몇 마디를 나누어보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해박한 지식, 논리적 언변, 사리 깊은 주장, 유창하게 구사하는 일본어 등 그 비범을 넘는 총명함에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과는 비교 자체가 민망스러운, 특별난 천재이면서도 상당한 도(道)에 이른, 정녕 예사 소년이 아님을 단박에 알아챌 수가 있었다. 어느새 무애와 둘도 없는 사이가 되어버린 이 젊은 처자는 일본에서 온 미치코(美智子)라 했다. 28살이라 하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귀티 나는 미모의 동안(童顔)이었다. 무애는 미치꼬를 스스럼없이 누나라고 불렀다. 미치코는 그런 무애가 동생이나 아들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꽤나 어른스러워 따뜻한 정감과 무한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무애를 바라보노라면 문득 꿈에도 못 잊을 그리운 누군가가 떠올라 가슴이 미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무애와 나누는 얘기가 점차 깊어지고 무르익자, 미치코는 왠지 모르게 자신의 기막히고 한 많은 사연을 몽땅 털어놓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치코는 먼저 특별한 인터넷 사이트 하나를 화제로 올리면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바로 ‘고통을 나누고 해결책 찾기(일명 고나해)’라는 전문 사이트이다. 이 사이트는 주로 중국·한국·일본 등 동아시아 네티즌을 대상으로 운영되는데, 날이 갈수록 소리 소문 없이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고나해 사이트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인생문제 주고받기’라는 토론광장이다. 이것이 특별히 주목받는 이유는 중국어·한국어·일본어 등을 동시에 구사하는 사람들에 한해서만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자살하기 위해 석양의 낭떠러지를 찾은 사람들과는 ‘인생문제 주고받기’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인연이라고 미치코는 말했다. 오늘 일행 중에는 중국·한국·일본 사람이 골고루 섞여 있는데, 사천성에 사는 장신(張信)이라는 회원이 이들을 석양의 낭떠러지로 이끌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고통을 참다 못해 끝내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자살 사이트’이다. 이 탐색 과정 중에 혹시 ‘죽지 않아도 되는 해결책’이 있을까 하는 미련 속에 찾아보는 곳이 바로 ‘고나해 사이트’라고 알려져 있다. 때로는 고통 해결책 차원에서 먼저 고나해를 찾았다가, 끝내 답을 못 찾고 절망에 빠져, 결국 자살 사이트로 내몰리는 경우도 종종 있는 모양이다. 고나해에는 보통사람들은 미처 상상도 할 수 없는 각양각색의 기구한 사연으로 고통을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 사연 하나하나가 얼마나 참담한지, 흡사 지옥에서 집행하고 있는 혹독한 형벌 메뉴와도 같다. 미치코는 한때 이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고통스럽고 불행하고 억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고나해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비로소 세상에는 자기 말고도 더 비참하고 가련한 사람이 즐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비통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이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고 여겨왔던 미치코이다. 하지만 고나해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된 인간의 세상살이란 고단함과 괴로움 그 자체였다. 정녕 가슴 아리고 통탄스럽고 혐오스럽고 원통하고 분하고 야비하고 서럽고 구차스럽기 그지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