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그림은 대부분이 캔버스라는 소재 위에 그려진다. 사실 캔버스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 그리고 실제적 바탕일 뿐 무엇이든 캔버스가 될 수 있다. 물론 어디에 그리든 정해진 규칙은 없다. 예를 들면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하늘도 캔버스가 되고 석양으로 물드는 푸른 초원 바닷가 등도 캔버스가 되고 우리의 마음도 캔버스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멋진 풍경을 볼 때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라고 말하는데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바로 캔버스가 되고 그림이 된다. 홍익대학교에서 만난 강준영 작가는 항아리를 캔버스로 쓰는 작가로, 한국적 정서에 서양의 이미지를 담는다. 흙으로 빚은 한국적 항아리에 서양의 그라피티 아트(낙서 미술) 같은 서양의 이미지를 그려 넣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흙 위에 그림을 그린다고 볼 수 있다. 항아리의 주된 재료는 흙이므로 흙도 캔버스로 사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보통 항아리나 도자기 하면 떠올리는 것이 바로 ‘청자’나 ‘백자’다. 거기에는 학이나 소나무 그리고 난 등 우아한 소재가 그려진다. 하지만 강 작가는 같은 항아리를 만들지만 결과물은 다르다. 이 때문에 강 작가의 항아리를 보고 있자면 겉모습만 봐서는 항아리지만 오히려 회화 작품으로서의 기운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항아리에 그려진 그림이 눈을 사로잡으며 시선을 끌기 때문이다. 사실 항아리는 입체지만 일반 캔버스라 생각하고 항아리에 그려진 그림을 쭉 펼쳐놓는다면 말 그대로 하나의 회화 작품이 된다. 강 작가는 “도예를 전공했지만 그림도 참 좋아했다. 그래서 항아리를 만들면서 그림도 그렸다. 이러던 중 항아리와 그림을 어떻게 합치면 좋을까 하는 생각에 항아리를 캔버스 삼아 활용하는 지금의 작품이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좀 더 자세히 들어보자면 강 작가가 그리는 그림은 모두 작가의 유년시절 이야기다. “항아리에 그림을 그리기 전부터 그려왔던 대부분 그림은 나의 유년시절 이야기다. 유년시절을 외국에서 보냈는데 그곳에서 보고 느낀 걸 표현했다. 항아리에 그림을 그려 넣게 된 계기 또한 문득 유년시절을 회상하던 중 할머니와 함께 항아리가 떠올랐고 자연스레 항아리에 나의 이야기를 담게 됐다. 무엇보다 나에게 항아리는 어린 시절을 대표하는 소재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강 작가는 유난히 유년시절에 대한 행복감을 그리워하고 감사해 했다. 이에 강 작가의 그림 또한 90년대 외국 문화에 초점이 맞춰 있다. “유년기 시절은 나에게 있어 가장 행복하게 보낸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을 행복하게 해주신 부모님께 너무나 감사한다. 당시 생각을 잊고 싶지 않고 그런 감정과 그 시대 문화를 작업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2년여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로 인해 유년시절에 더욱 집중하면서 작업이 한층 성장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강 작가가 표현하는 색감은 진하고 강렬하다. 이는 잠시 호주에 갔을 때 호주 원주민의 원색에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한다. 강 작가의 그림을 보면 유독 화려한 금색과 함께 새와 나비가 많이 등장한다. “행복했던 유년시절을 얘기하다 보면 작업할 때도 행복해진다. 금색과 나비 그리고 새는 희망을 표현한 소재다. 보는 이들도 함께 희망을 느끼고 자신의 행복했던 시절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주고 싶다.” 강 작가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 앞만 보고 달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잠시나마 삶을 돌아보고 지난 추억 속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린다면 그것도 하나의 휴식이 되리라. 도예 작가보다 ‘도예’를 뺀 그냥 작가로 불리길 원하는 강 작가는 사실 하고 싶은 것이 따로 있다. 바로 패션 디자인이다. “언제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패션디자인은 꼭 해보고 싶다. 올해는 일단 공부를 더 할 계획이다. 물론 지금의 작업도 계속 이어나가겠지만 앞으로는 캔버스를 항아리 말고 다른 재료로도 쓰고 싶다. 나의 행복했던 시절의 향수를 계속해서 많은 이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캔버스를 항아리 말고 다른 재료로도 쓰고 싶다는 강 작가의 말에, 다음에는 어떤 곳에 그림을 그려 추억과 희망을 전할지 막연한 상상력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