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태 편집국장 사람과 동물은 여러 모로 다르지만,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만큼 다른 분야도 드물다. 사람은 말로 가르치고, 동물은 몸으로 가르친다. 수십 명을 50분 동안 붙박이로 앉혀놓고 말로 가르치는 교육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동물 세계에서 이런 방법은 불가능하다. 동물은 50분 동안 한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도 이렇게 고정 자세로 오래 앉아 정보를 머릿속에 구겨넣는 건 쉽지 않다. 공부가 힘든 이유다. 동물은 말이 없으니 그저 몸으로 가르친다. 나는 법, 먹이 잡는 법을 세밀하게, 정직하게 보여주고, 새끼는 따라 할 뿐이다. 그래서 어미의 가르침은 어긋남이 없다. 어긋나면 새끼가 죽는다. 반면, 인간은 어떤가? 말이라는 편리한 수단이 있어 말과 행동을 따로 한다. 교육감님은 ‘오후에 가져오기로 한 청탁 대가 뇌물’을 생각하면서도 입으로는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하며 근엄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도 동물인지라,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에서가 아니라 행동에서 배운다. 입만 열면 “질서를 지켜라”고 설교하지만, 가장 먼저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널목에선 사람보다 앞서 가는 아버지에게서, 자녀들은 ‘공중 질서는 어기라고 있는 것’이며, ‘사람보다는 차가 먼저’라는 한국 사회의 진짜 진실을 배우고 행한다. 말이라는 게 참 웃긴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이클 거재니거 교수(캘리포니아대학 산타 바버라 캠퍼스)는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건 언어는 그 사람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확신시키며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한다”고 했다. 사람의 말이란 원래 ‘합리화의 수단’에 불과해, 말과 행동은 따로 놀게 돼 있다는 설명이다. 어떤 면에서, 한국인은 너무 약기 때문에 이러는지도 모른다. ‘너희는 착해져라’고 다른 사람들을 말로 설득하고, 그래서 그들이 착해지면 착해질수록 이기적인 나는 더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말로 설득하는 사람은 세상 모든 사람이 착해지길 원하지만, 자기 자식이나 친척이 너무 착해져 얻어맞고 들어오길 원치는 않는다. 또한 어차피 공중도덕이나 공중선(善)은 지켜질 수 없는 것이기에, ‘자식에게 재빠르게 행동하고, 성실성은 형식적으로 보내고, 사소한 거짓말을 맘껏 하고, 장래성 있는 일에 몰두하라고 가르치는 중·상류층이 성공에 잘 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미국의 저술가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 중에서). 어차피 대다수 한국인들이 말과 다른 행동을 하기로, 그렇게 자녀들을 가르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이제 한국인이 한국인을 보는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 즉, 말로가 아니라 행동만으로 보자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범죄자를 잡아내는 행동분석 전문가들은 혐의자의 진술을 녹화해 소리를 죽이고 행동거지·표정만을 볼 때 진실을 꿰뚫어보는 확률이 가장 높단다. 그러니, 우리도 이제 정치인이든, 교육자든, 재벌이든, 이들이 무슨 말을 할 때 볼륨을 제로로 내리고, 그 사람의 표정 변화, 그리고 그 사람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해온 행동으로만 판단하는 습관을 들여보자는 것이다. 말의 잔치에 그만 휘둘리고. 진실을 전하는 것은 행동뿐이다. 행동에서 배우고, 행동으로 가르치는 습관을 들이자. 동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