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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희의 미디어아트 읽기

‘예술=미술’ 부정하며 20세기 현대예술 시작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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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62호 편집팀⁄ 2010.03.22 16:05:03

진선희 (독립 큐레이터) 인간문명의 역사와 문화에 있어 과학과 기술은 확연히 구분되어 발전해 왔다. 기술은 예술과도 엄연한 거리와 차이가 있었으나 사실 태고의 인간 문화가 발생하고 발전하던 시대에 플라톤은 ‘Philebe(필레보스)’에서 예술의 생산성과 창조성을 하나의 장으로 포괄했듯이 기술은 과학과 한 몸이었으며 예술의 다른 쓰임이었다. 19세기 말 사진의 사실 묘사성과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예견한 기술을 통한 예술의 기계적인 복제 생산 시대의 도래는 시대적 정신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음에도 실질적으로 시각적 예술 표현에 기계적인 기술의 확연한 개입은 초창기에 눈에 띄지 않았다. 그만큼 20세기 전까지 회화는 사실상 예술이란 명칭을 대치할 수도 있을 만큼 주된 작업이었다. 1차 세계전쟁 이후 모더니즘의 붕괴와 더불어 에 다루었듯이 회화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고 과거를 부정하는 자아출혈이 요구됐다. 우선 기존 예술이 가지는 예술성이 더 이상 예술품이라는 오브제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나아가 예술이 가지는 예술성 즉 개념과 아이디어가 중점이 되는 다양한 심미적 표현 방식을 창조하는 예술을 다시 정의 하는 작업이 절실히 필요했다. 전쟁 직후 산업문명을 비판하고 기계의 부조리성을 표출하는 다다이스트(Dadaist)들의 움직임은 스위스를 거점으로 유럽 전반에 걸쳐 미국 뉴욕에서까지 활발히 일어났다. 그들은 시와 언어, 회화, 설치 그리고 퍼포먼스 등 모든 예술 영역 안에 있는 표현 형식들을 붕괴하고 재구성하고자 했다. 그 중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마르셀 뒤샹(Mercel Duchamp)을 들 수 있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ude Descending a Staircase), 그리고 커다란 유리 속에 기계 부속처럼 구성된 ‘총각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The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는 기존 회화의 주제에서 벗어난 움직이는 요소들의 구성을 기계적으로 추상화시키면서 시간과 공간을 표현하고 있다.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의 소변기는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로 예술품과 일상 오브제 사이의 차이와 그 위치 그리고 장소에 따른 질문을 적나라하게 던짐으로써 과연 참다운 예술성은 어디에 있느냐는 의문으로 기존의 예술 개념을 타파한다. 이 같은 다다이스트들의 노력은 50년대와 60년대 젊은 예술가들이 예술을 오브제 중심에서 개념과 아이디어 중심으로, 캔버스에서 다양한 매체 형식으로 넓히는 데 밑거름이 됐다. 그들의 실험정신은 추상표현주의와 함께 50년대 후반 2차 세계전쟁 이후 새롭게 번영된 미국에 깊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 존 케이지(John Cage)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혼합매체의 실험과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chenberg),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그리고 데이비드 튜더(David Tudor)의 종합적인 예술적 시도가 대표적이었다. 특히 존 케이지는 아놀드 쉔베르그(Arnold Schonberg)의 영향으로 동양의 불교 사상과 현대 실험음악의 융합을 토대로 시도하며, 우연히 발생하는 예술적 창작에 가능성과 초점을 두고 발전시켜나갔다. 무형식의 음악과 잡음 또는 낭독, 거리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의 즉흥성은 관객의 주의와 참여를 유도했으며 예술을 거리로 내몰았다. 이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많은 젊은 예술가들의 호응으로 플럭서스(Fluxus)라는 국제적인 예술적 흐름을 형성했다. 그들의 작업은 주로 사진과 비디오로 찍히고 전시되는 형식을 취했는데 이는 예술가들에게 있어 비디오를 예술적 오브제로 작업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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