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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광의 아프리카 미술과 친해지기

케냐의 피터 응구기 - 삶의 이데아와 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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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64호 편집팀⁄ 2010.04.05 17:07:54

정해광 (아프리카미술관 관장·갤러리통큰 대표) 피터 응구기는 누구인가? 피터 응구기(Peter Ngugi 1978~)는 대부분의 케냐 작가처럼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케냐의 미술대학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려온 천재적 작가들의 역량을 키워줄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블루칩 작가로 통하는 카툰(J. Cartoon)이나 젊은 작가들 그리고 응구기가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미대에 들어갈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지닌 재능이나 열정보다 대학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응구기는 외판원 생활을 하다가 20살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서구의 신구상주의를 독특한 색채와 형태로 풀어내면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이후 케냐 국립미술관에서의 전시를 필두로 베를린, 런던, 파리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그의 이름은 서구 미술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불과 십년만의 일이다. 자신의 작품을 ‘영원한 진행형’이라고 말하는 응구기는 지금이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TV 속에서 아이들을 즐겁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응구기를 화가로 만들었다 나이로비에서 티카(Thika)로 향하는 길가에는 커피와 바나나 농장이 광대하게 펼쳐져 있다. 응구기는 외판원 생활을 하면서 매일같이 그 길을 오고 갔다. 녹색 잎과 어우러진 붉은색의 커피 열매와 노란색의 바나나. 응구기는 자신도 모르게 색의 유혹에 빠져들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20살이 되었을 때 응구기는 일상을 접었다. 그의 집 앞에 있는 차니아(Chania)강 속의 거대한 하마들과 강둑을 뒤덮은 보라색 벚꽃, 자카란다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상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응구기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화가가 된 것이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연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떤 힘을 느낀다고 하였다. 그 힘으로 그림을 그리다보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피력했다. 그림의 바탕에 지문을 그려 놓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한다.

응구기의 그림읽기 과장되게 표현된 형태에서 삶에의 소망을 읽는다. 응구기의 그림에 등장하는 동물은 아주 뚱뚱하거나 아주 홀쭉하다. 그런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럽지만, 이는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게 하여 웃음을 짓게 한다. 현실은 고단할지라도 웃음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소망과 닮은꼴이라는 것이 응구기의 지론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동물을 유난히 뚱뚱하게 그리는 것은 결국 소망의 지수와 정비례하는 일이 된다. 파스텔 톤 색의 사용은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느 아프리카 작가와는 달리 응구기는 원색보다는 파스텔 톤의 색을 즐겨 사용한다. 원색이 열정 혹은 개성과 관련되는 것이라면 파스텔 톤의 색은 융합 내지는 소통을 의미한다. 40여 종족으로 이루어져 잦은 분쟁을 겪는 케냐에서 응구기의 색은 여러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가능성의 세계이기도 하다. 바탕 작업에서의 지문 문양은 정체성의 고리다. 응구기는 캔버스에 바탕색을 칠하고 난 뒤에 지문을 문양으로 그려 넣는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가를 알고픈 마음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문 위에 그려진 동물은 응구기와 분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동물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게 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결국 정체성의 인식이다. 응구기는 동물의 눈을 자신의 눈과 같은 모습으로 그려 넣었다. 그래서 응구기를 바라보는 동물의 시선은 응구기와 분리되지 않는다. 대상화된 자기가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 된다. 타아와 자아의 대화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응구기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인식과 직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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