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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시선]남성과 여성, 장애우와 비장애우, ‘따로 또 같이’

4월 8일부터 서울에서 동시에 열리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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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64호 편집팀⁄ 2010.04.05 16:03:09

글·윤영상 (ysangyn@naver.com) 지난주에 영화 <아쉬람>(이화여대 내 ‘모모하우스’에서 상영 중)을 보았다. 아쉬람은 인도의 갠지스강이 흐르는 바라나시를 배경으로 힌두교 율법 아래에서 살아가는 과부 여인들의 삶을 그린 영화이다. <아쉬람>의 주인공 ‘쭈이야’는 예쁘고 씩씩한 8살의 꼬마 숙녀이다. 혼인이 무엇인지, 과부가 무엇인지도 모를 아직은 천진난만하기만 한 어린 꼬마지만, 쭈이야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조혼 풍습에 따라 어느 늙은 남편의 부인이 되었고, 혼인을 하자마자 남편이 세상을 떠나 8살의 어린 과부가 되었다. ‘아쉬람’은 힌두교도들이 수행하는 일종의 기도원이나 수도원 같은 곳으로서, 특별히 이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있는 아쉬람은 과부들이 모여서 평생을 속죄하며 살아가는 곳이다. 남편의 죽음을 부인의 죄 탓으로 여기는 문화 때문에, 남편을 잃은 여인들은 삭발한 채로 평생을 고립과 멸시 속에서 속죄하며 살아가야 한다.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치기만 해도 재수 없다며 욕을 들어야 하고, 맛있는 과자도 먹을 수 없으며, 남자를 만날 수도, 행복을 추구할 권리도 그 여인들에게는 없다. 3년 전, 인도를 여행한 일이 있었다. 여행 전, 어떤 통계에서 인도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중 하나로 꼽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얼마나 행복한 나라일까 하고 기대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델리 공항에 내린 나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공항에서 숙소에 이르기까지 길게 늘어선 낡은 천막과 그곳에 기거하는, 아니 천막조차 갖지 못한 걸인들…동냥하는 아이들과 꼬마 도둑들…아니, 가난은 절대로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겠지만, 분명 내가 본 그들의 표정은 절대로 행복하지 못했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수드라’ 계층과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죽는 수많은 ‘불가촉천민’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운명에 수긍하며 현생의 행복을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처지를 전생의 죄 탓으로 여기는 종교 풍습 때문이며, 속죄와 환생을 거듭하여 다음 생애에 더 좋은 계급으로 태어나는 것이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힌두교 문화를 지키고 율법을 수호하는 사람들은 카스트 제도의 상위 계급들이다. 그들은 돈과 권력을 쥐고 있으며, 그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종교의 탈을 쓰고 세상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본다. 특정 종교를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제도와 문화를 악하게 만들어온 존재는 늘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아쉬람>에서도 과부들이 모이는 아쉬람은 상위 특권 계층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과부들을 핍박하며 과부들이 죽을 때까지 남편을 추모하면서 순결을 지킬 것을 강요하지만, 정작 특권층의 부자들은 아쉬람의 과부에게 매춘을 강요하며 자신들의 욕망을 채운다. 쭈이야의 친구 ‘깔랴니’는 아쉬람 안에서 유일하게 머리를 기르고 자신의 미모를 가꿀 수 있는 여자이지만, 그녀는 좋아하는 남자의 사랑을 얻지 못한 채, 늘 캄캄한 갠지스강을 건너 특권층의 저택에 불려가 몸을 팔아야 하는 운명을 가진 여성이다. <아쉬람>의 대사 가운데 나오는 말… “브라만에게 절대 명예란 없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경전을 해석하는 게 누구인가?” 특권층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가난한 자는 핍박받고, 그곳의 여인들은 평생을 덧없는 속죄를 하며 살아가야 한다. 과연 다른 나라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우리 사회 안에, 우리가 속해 있는 문화 속에 소외된 약자들을 향한 보이지 않는 폭력은 없는지, 우리 안의 보이지 않는 율법이 약자를 더욱 힘들고 고립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여권(女權)이 많이 신장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힘 있는 자는 남성이었고, 남성이 만들어낸 사회 구조는 여성에게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하고 여성을 보이지 않는 율법의 틀 속에 가두었다. 가장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장애우들의 생존권과 행복권은 비장애인들이 만든 사회 구조 속에서 때로는 짓밟히고 유린당하기도 했다. 휠체어에 앉아서 바라본 세상은 일어서서 걸으며 바라보는 세상과는 분명히 다르며, 노인과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건강한 젊은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과는 또한 사뭇 다르며, 남성과 여성이 바라보는 세상은 분명 다르지만, 우리는 서로의 시선과 각자의 세상을 외면해왔다. 세상은 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노인과 소년, 남한 주민과 북한이탈주민, 남성과 여성, 키가 큰 사람과 키가 작은 사람, 통통한 사람과 마른 사람, 한국인과 외국인 등…그리고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각자의 입장과 각자의 관점과 각자의 삶과 각자의 애환을 갖고 있지만,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가 특별히 사회적 강자도 아니라면, 나와 다른 그의 입장을 이해해보거나 서로의 삶을 공유해보려는 노력이 참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물 위에서 서로 섞이지 않는 여러 색의 유성 잉크로 만들어낸 ‘마블링’ 작품처럼,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의 시선과 삶을 공유하지 못한 채 그렇게 살아가지는 않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아쉬람의 여인들같이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폭력과 업압에 노출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러한 의미에서 4월에 열리는 두 가지 영화제를 소개하고 싶다. 하나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이고, 또 하나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이다. <아쉬람>을 통해 낯선 힌두교 여인들의 시선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듯이, 때때로 영화는 우리가 평소에 가져보지 못했던 다양한 시각들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지난주에 어느 친한 장애우와 극장에 가면서,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이동하고 극장에 앉고 식사를 하고 또 집으로 돌아오는 모든 과정을 함께하면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하루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많은 것을 느낀 적이 있는데, 우리가 비록 그들의 시선을 직접 경험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이 스크린에 담아낸 그들만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평소 가져보지 못했던 제3의 관점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비록 화려한 배우가 나오는 영화는 아니지만, 스크린에 진솔하게 담아낸 그들의 모습이 세상의 진짜 주인공의 모습임을 기대한다. 약자라는 이유로, 또는 건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사회의 조연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과는 달리, 세상의 주인공은 약자와 강자, 우리 모두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4월 8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신촌 아트레온 극장) 소개 :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캐치프레이즈로 시작하여 올해 12회를 맞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예술영화와 실험영화, 코미디 영화에서 스릴러 영화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통해 세계 여성영화의 최근 흐름을 소개하고 아시아 여성영화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세계 여성영화 축제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영화제다. 상영 영화 : <다가올 그날> <구글 베이비> <블레스드> <세네도키 뉴욕> <버림받은 아이> <레드마리아> 등 102편. 영화 관람료 : 조조 4000원, 일반 5000원.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4월 8일부터 10일까지 종로 피카디리 극장 3관) 소개 : 2003년도에 시작하여 올해로 여덟 번째 진행되는 영화제로서, 장애인의 삶을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제작한 영화들을 통해 장애인의 문제 혹은 현실을 알리고,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인식 전환의 계기를 만드는 동시에, 장애인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자리를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상영 영화 : <거침없이 잘살자> <그날 이후> <꿈많은 은하> <난초네 뉴스> <단돈 천 원> <동수 이야기> <둔촌고 뉴스> <사랑 만들기+더하기> <스물 다섯 홀로서기> <시선> <시설장애인의 역습> <장애인도 이동할 권리가 있다> 등. 영화 관람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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