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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산수에 가고, 산수가 마음에 들어온다”

자연과 공간 그리고 그곳에 가고 싶은 권정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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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65호 김대희⁄ 2010.04.12 14:49:06

길을 걷다가 혹은 여행을 떠나 무심히 보는 공간의 풍경은 누가 봐도 같은 모습일까. 사람마다 서울 남산을 보는 감상은 다를 수 있겠지만, 남산의 모양은 비슷할 것이다. 대통령이 보는 남산도, 내 친구가 보는 남산도, 나 자신이 보는 남산도 모양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돈 많은 부자가 보는 남산이라고 거리의 부랑인이 보는 남산보다 더 뛰어나진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같은 공간을 봐도 어떤 시각,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공간의 풍경은 눈으로 보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권정은 작가가 바라보는, 그리고 작업하는 풍경은 작가가 가고자 하는 공간이자 안식처다. 양재동 작업실에서 만난 권 작가는 공간을 그리는 것보다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더 좋아했다. 작품의 주된 주제는 산수(山水·산과 물, 경치를 이르는 동양화 용어)나 공원 등 풍경이다. 그는 이러한 풍경을 담은 공간을 ‘만든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특히 그리는 것보다는 칠하는 행위가 좋았다는 권 작가는 꿈에 대한 열정과 확신이 누구보다 강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장래 희망하는 직업도 첫 번째가 화가였고 두 번째가 선생님이었다. 당시 부모님께서 반대도 했지만 화가가 아니면 안 되고 거기에다가 또 동양화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동양화 대회에 출전해 상도 탔고 먹을 가는 행위와 먹 냄새도 좋았다”고 말했다. 어떤 이유도 계기도 없이 그냥 칠하는 게 좋았다는 권 작가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공간을 만드는 붓은 드릴이요, 캔버스는 아크릴이라… 대학 4학년 때 먹 작업을 했는데 판화 수업과 오브제 수업을 들으며 판화 수업 때 했던 아크릴을 오브제 수업에 이용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 지금 작업의 시초다. 또한 공간에 대한 의문도 많았던 권 작가는 공간 작업을 해보고자 했으며, 발전을 거듭해 지금의 작품이 나왔다. 자연과 공간을 대상으로 ‘모든 공간은 통한다’란 관점을 가진 권 작가의 작업관은 중국 북송의 범관(范寬)이 그린 ‘계산행려도(溪山行旅圖)’와 맥락을 같이한다. 특히 한지, 먹, 분채, 방해말, 옻지와 아크릴, 판화 잉크라는 재료, 즉 서로 다른 성질의 매체를 하나로 결합하면서 새로운 조형 언어를 구축한다.

“범관의 작품을 모티브로 삼아 수많은 점들이 이루어진 5장의 층으로 그 이미지를 재현했다. 투명한 아크릴에 스크래치를 내어 잉킹(잉크로 그림)을 해서 만든 층들과 수묵·채색화로 그린 작품을 겹겹이 놓아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공간을 이루는 작업을 한다. 지필묵 작업에서 지금은 화선지 대신 아크릴을, 붓 대신 전동 드릴과 여러 도구를 이용해 작업하는 이유도 이런 작업관을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재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교와 대학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현재 동양화 박사과정 중인 권 작가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대학시절 작품의 구상(具象)과 비구상(非具象)에 대한 고민, 그리고 미술사학이냐 미술경영이냐 하는 전공에 대한 고민 등 힘든 시간을 겪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고민 속에서 학원이나 갤러리를 다니며 지난해까지 2년여 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올해는 권 작가에게 있어 중요한 해다. 첫 번째 개인전이 바로 얼마 전인 3월 24일부터 30일까지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전시회 이름 또한 권 작가의 작업관이 담긴 ‘거_하다’였다. “거 자가 한문으로 두 가지 뜻을 갖는데 크다는 ‘거’ 그리고 거주하다는 ‘거’, 그래서 크고 거대한 공간에서 거주하다, 거주하고 싶다는 뜻이다. 내 눈으로 보는 풍경이 내 마음으로 들어와 그 풍경에 내 마음이 덧입혀지곤 한다. 내게 있어 자연과 공간은 존경과 동시에 두려움이 느껴지는 경외의 대상이면서 그 안에 거주하고 싶은 욕구를 일으키는 대상이다.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을 작품으로 담았다”고 그는 설명했다. 개인전에 앞서 권 작가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섰다고 한다. 길지 않은 준비 기간에 요즘 젊은 작가의 직설적이고 화려한 작품과는 대조되는 심플한 느낌의 작업 등 첫 개인전인 만큼 불안감이 없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개인전을 통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배우는 시간이 됐다. 지금은 시원섭섭한 감정에 허무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그는 웃었다. “재충전 시간을 갖고 다시 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싱그러운 봄에 새 출발의 발걸음을 내디딘 권 작가는 차가운 성질을 가진 아크릴에 따뜻하고 신비함을 가진 동양화를 접목함으로써 묘한 매력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낸다. 보는 이에게 쉬고 싶은 공간, 휴식과 편안함을 주는 안식처로서의 또 다른 공간으로 안내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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