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고종 황제 살린 ‘철가방’을 찾습니다”

명성황후 시해 뒤 언더우드 등 고종 위해 철가방에 ‘안전음식’ 배달

  •  

cnbnews 제165호 최영태⁄ 2010.04.12 14:29:04

지금으로부터 115년 전. 궁궐로 들어가던 ‘철가방’이 있었다. 요즘의 중화요리 철가방과는 다른 용도라면, 내용물이 일반 음식이 아니라 임금님이 드시는 ‘수라’였고 자물쇠까지 달린 철통 경비를 받는 철가방이었다는 점이다. 때는 1895년 10월 중순. 을미사변(10월 8일)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된 직후라 경복궁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홀로 남은 고종 황제는 궁의 친일파 세력이 자신마저 독살한다는 생각에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궁궐 안의 사람들마저 왕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조선 왕실은 풍전등화 같은 형국이었다. 당시 고종의 식사를 미국인 선교사의 ‘배달 철가방’이 도왔다. 후일 연세대를 세운 선교사 H. G. 언더우드가 미국 공관 등에서 선교사의 감독 아래 ‘안전하게’ 만든 음식을 양철통에 담아 자물쇠를 채워 선교사 일행이 직접 들고 궁중으로 들어가 임금이 보는 앞에서 자물쇠를 열어 수라를 드시게 했던 것이다. 궁궐을 사실상 점령한 일본군의 포로 신세인 고종 황제의 연명을 선교사가 맡은 셈이다.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의 김상태 교수는 당시의 사정에 대해 “언더우드의 편지, 에비슨(세브란스의전 설립자)의 회고록 등에서 고종의 수라를 날랐던 철가방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고 전했다. 당시 외로운 궁궐에서 적대적 세력에 둘러싸였던 고종은 당시 국립병원 ‘제중원’의 의사인 알렌을 일과시간이 지난 뒤에 불러 대화를 나누려 했고, 궁궐에서 입수한 서양 문물인 잎담배·사탕·과자·커피·홍차 등을 알렌에게 제공하는 등 선교사에게 상당한 신뢰를 보였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덕분에 알렌은 낮에는 제중원에서 환자를 보고, 밤에는 궁궐에 불려가 꾸벅꾸벅 졸면서 궁궐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고역을 치렀다는 기록도 있다. 이는 당시 궁궐 사람들이 낮에는 자고 밤에 활동하는 생활을 했기 때문이란다.

일본군에 점령당한 궁궐에서 공포에 떨던 고종 황제는 언더우드 등 선교사가 자물쇠를 채워 궁궐에 갖고 들어온 ‘수라’에 의존하여… 명성황후가 처참하게 피살당한 뒤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고종 황제를 구출하기 위해 친위대가 1895년 11월 28일 궁궐 동쪽 문인 춘생문(春生門)을 통해 궁궐 진입을 시도했지만 전투에 패했다. 포성이 밤새 궁궐을 울렸고, 고종은 언더우드와 에비슨을 방패 삼아 가까스로 피살을 모면했다. 이처럼 조선 왕실과 서양 선교사들의 인연을 보여준 ‘춘생문 사건’이 언더우드 내한 125주년인 올해를 맞아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지만, 배달에 쓰인 양철통 등 관련 유물은 행방이 묘연하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7일 연세대 박물관은 ‘춘생문 사건’을 재조명하고자 올해 초부터 선교사 보고서 등 관련 사료를 정리하는 한편, 당시 사용된 양철통과 사진 등의 유물을 찾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사실 이 사건은 다음해에 일어난 아관파천(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태)의 유명세에 가려 역사학계 바깥으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김도형 연세대박물관 관장(사학과 교수)은 “언더우드 등 선교사들은 민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고자 왕실과의 관계를 중시했다”며 “이런 흥미로운 사건을 대중에게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유물이 아직 나오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역사학계에 따르면, 고종과 선교사들의 관계에는 복잡한 외교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을미사변 뒤 김홍집이 이끄는 친일내각이 친미·친러파인 옛 세력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서양 선교사들이 입지를 넓히고자 고종을 적극적으로 도왔다는 해석이다. 실제 미국과 러시아 공사는 을미사변 이후 선교사들 못지 않게 자주 고종을 알현하며 왕의 신병을 보호하려 했고, 언더우드는 후일 친미파 고위 관료를 집에 숨겨주고 중국으로 망명하게 해줬다. 이 때문에 일본은 춘생문 사건을 ‘서양 세력이 주도한 국왕 강탈극’으로 폄하하기도 했다. 고종이 언더우드 등의 보호를 받았다는 점을 들어 미국이 사건을 주도했다고 비난하며 을미사변의 만행을 물타기하려 한 것이다. 연세대 박물관은 미국과 캐나다 등으로부터 언더우드의 철가방을 비롯한 당시의 유물을 기증받고자 계속 수소문할 계획이다.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