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 (독립큐레이터) 지난호(CNB저널 165호)에서 우리는 비디오 영상의 시간성에 대해 살펴봤다. 그러면 비디오 영상은 공간적으로 어떠한 특수성을 가지고 있을까? 영화는 평면 스크린에 영상을 투사시키는 2차원적 이미지의 한계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비디오는 비록 2차적인 평면 영상이지만 모니터의 여러 가지 형태와 다양한 구성으로 이미지들을 분할 또는 다단 설치를 통한 합체 방식들로 새롭게 2차원적 영상을 뛰어넘는 입체적 시공간을 연출한다. 예로 국립현대미술관 입구에 휘황찬란한 위엄을 과시하며 18미터 높이의 영상 첨탑으로 자리 잡은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이러한 맥락에서 여러 개의 영상 모니터의 조합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영상 메커니즘의 표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공간적 특수성으로 이미지들의 합성과 시간적 격차와 배열 그리고 이미지 간의 충돌에 의한 입체적 공간 창출을 들 수 있다. 비디오 아티스트들이 주로 초창기에 많이 이용한 것처럼 마그네틱을 사용해 물리적으로 모니터상의 이미지를 변형시켜서 전자파의 영상과 물리적인 충격을 직접적으로 노출한다. 박현기 작품의 돌은 이미지가 추상적 비물질이 아닌 중력을 가진 존재적 개체로 탈바꿈한다. 이는 모니터 내부에 존재하는 추상적 이미지를 모니터 외부로 이끌어내면서 공간적 영역을 확보한다. 또한 백남준의 작품 ‘달은 가장 오래된 TV이다’에서 보듯이 병렬로 둥글게 나열된 모니터들은 하나의 달을 제각기 다른 측면을 연출해 달의 자전을 보여주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우주의 한 공간에 무중력 상태에 서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관객에게 비디오에 시간차를 두며 분할 반복된 영상이 병렬적인 시각적 효과를 통해 얼마큼 복합 감각적이고 입체적 공간을 형성하는가에 대한 좋은 예다. 또 다른 공간적 특수성을 들자면 비디오는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데, 이는 관객의 움직임에 반응 즉 참여를 통해 인간과 메커니즘의 새로운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의 장을 형성한다. 이는 점차 인터랙티브(쌍방향) 아트를 본격적으로 예술 영역에서 발전시키는 서두가 되며 또한 인터넷의 출현으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아트를 창조한다. 이는 차후 우리가 심도 있게 다룰 것이다. 비디오 이미지의 공간적 특수성을 활용한 창작들은 대체로 설치라는 예술영역 속에 들어간다. 이는 추상적 이미지가 물리적인 장을 형성하는 영역이다. 설치미술은 조각이라는 예술적 장르의 연장선으로 해석될 수 있어 예술 안에 비교적 쉽게 안착할 수 있었다. 마이클 러시(Michael Rush)는 그의 책 ‘뉴미디어 아트(1999)’에서 “예술 창조의 과정을 스튜디오를 넘어 사회적 공간으로 확장시키고자 하는 다른 형식들과 마찬가지로 매체 설치는 게리 힐(Gary Hill)이 사용하는 의미처럼 모니터 밖의 공간에 대한 인식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비디오아트의 핵심적인 개념인 ‘시간’에 대한 탐구가 설치에서 강화된다고 역설하면서 “시간이 싱글 채널 비디오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조작될 수 있다면(중략) 여러 개의 테이프를 활용하는 비디오 설치는 이미지의 총량을 방대하게 증가시킴으로써 시간의 조작 가능성을 극적으로 확대 시킨다”라고 말한다. 비디오 영상에 있어 시간은 새로운 영상미학적 의미를 증폭시킨다. 그러나 이 시간적 요소는 현재와 과거 그리고 추상적으로 그려지는 공간적 연출을 관객에게 제공하면서 보다 직설적으로 개인적인 감성에 호소하게 된다. 비디오 영상은 하나의 구성적 설치 요소이자 복합체로서 그 자체적 특유의 공간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일방적으로 평면적 이미지만을 제공하는 영화와는 구별되는 특성이며 시청률만을 높이기 위한 낡은 대중적 이미지만을 생산하는 TV영상과는 엄연한 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