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년이 넘는 역사를 시계와 함께 끊임없이 써 내려온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 그 무구한 시계 역사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이 훌륭한 업적을 가진 바쉐론 콘스탄틴의 시계가 한 나라의 왕에게 선택받은 영예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순종의 유별난 시계 사랑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순종이 사용한 바쉐론 콘스탄틴의 회중시계가 K 옥션 경매회사에 출품되어 시계 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 시계는 K 옥션 메이저 경매에 출품되어 경매가격 5000만 원으로 시작, 1억2500만 원의 낙찰가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개인 소장가의 손으로 넘어갔다. 우리나라가 여러 나라와 외교 접촉을 시작한 조선 말에 가장 많이 들어온 외래 문물 중 하나가 시계였다. 이때는 손목시계가 나오기 전이었으므로 모두 회중시계를 가지고 들어왔다. 이 시기에 왕실과 고위 관리들 사이에는 시계를 가지는 풍조가 유행하였는데, 특히 조선시대의 마지막 왕인 순종의 ‘시계 사랑’은 유명했다고 한다. 이런 순종이 거처하던 창덕궁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계가 있었고, 이 시계들이 시간을 알리기 위해 한꺼번에 각기 다른 소리로 울리는 종소리를 순종은 무척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덕수궁에서 지내던 고종에게 전화로 문안을 올릴 때도 꼬박꼬박 고종의 시계가 몇 시인지 시간을 물어보고, 고종의 시계와 창덕궁 시계의 시간을 맞추는 일이 하루 일과 중의 하나였다. 이번 경매에 출품된 ‘이화문(李花紋)’이 새겨진 바쉐론 콘스탄틴 회중시계는 순종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의 국장 과정과 부장품, 장례에 쓰인 도구 등 장례식의 세세한 부분에 초점을 맞춘 사진첩인 <어장의 사진첩>에 부장품으로 기록된 시계와 동일한 것이다. 이 시계 뒷면에는 ‘이화문’이 찍혀 있어 대한제국 황실에서 썼음을 증명해주고 있으며, 시계 뒤편의 뚜껑을 열면 이 제품을 만든 장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시계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청나라 황제들이 애용한 ‘황제 시계’
바쉐론 콘스탄틴의 오랜 역사에 어울리게 중국 시장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시계 시장이었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1755년 장 마르크 바쉐론(1730~1805)에 의해 스위스 제네바에 설립되었는데, 같은 시기에 청나라의 건륭제가 중국을 다스리고 있었다. 프랑소와 콘스탄틴은 1819년 바쉐론 콘스탄틴에 합류하여 대부분의 시간을 중국에 수출할 상품을 개발하는 데 할애했고, 그때까지 중국은 청나라의 7대 황제인 가경제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동시대에 스위스의 시계 제조자인 피쿠에 떼 메이랭은 중국의 독특한 취향을 만족시킬 만한 특별한 ‘황제’ 스타일의 시계를 디자인하였다. 이러한 황제 스타일 시계들은 각기 다른 에나멜로 장식되거나 귀족들이 선호하는 진주 보석으로 장식되었다. 이러한 시계들은 자주 황제를 위해 제작되었기 때문에 ‘황제 시계’로 불리었다. 19세기경에 중국은 유럽 시계 제조사들의 주요 수입원이 되었다. 영국인 윌리엄 일버리에 의해 소개된 ‘레파인 칼리버’는 중국의 귀족들 사이에서 특히 사랑받았다. 서태후의 아들인 청나라의 10대 황제 동치제는 1861년에 권좌를 물려받았다. 그의 왕위 계승을 축하하기 위해 다이아몬드가 파베 세팅되고 파란 에나멜이 입혀진 포켓 시계가 3년 후에 바쉐론 콘스탄틴에 주문되었고, 이는 중국 시장에서 바쉐론 콘스탄틴의 110주년으로 기록된다. 3명의 왕조들의 전설적인 사랑 이야기가 바쉐론 콘스탄틴에 의해 1926년에 제작된 중국 스타일의 탁상 시계에서 표현된다. 옥으로 만들어진 받침대가 지지하는 붉은 산호 실린더를 보면 바쉐론 콘스탄틴의 에나멜 작가들이 이룬 정밀한 작업의 진수를 알 수 있다. 여기에는 3명의 고대 전사들이 각기 다른 중국 무기를 들고 아치형의 문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중국 문화에 경의를 표하는 이 다이얼에는 고대 크로노그래프와 관련된 중국의 철자들이 표시되어 있다. 55개의 루비로 장식된 이집트 왕의 시계
바쉐론 콘스탄틴은 중국 이외에도, 1934년에 이집트의 킹 파로우크를 위해 당시로서는 가장 복잡한 시계 한 점을 직접 생산하였다. 파우드의 아들 파로우크(1920년 출생)는 시계에 대한 아버지의 열정을 그대로 이어받은 인물이다. 1937년에 스위스를 지나면서 그는 바쉐론 공장을 방문하기를 원했는데, 찰스 콘스탄틴이 가이드를 자청하여 워크숍을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어린 왕자였지만 해박한 시계 지식에 찰스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파로우크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수많은 시계들을 분해해봤습니다. 그 시계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일이지만요.” 하지만 그는 1934년의 공식 방문 때에 제네바 당국으로부터 선물받은 뛰어난 시계는 분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킹 파로우크를 위해 제작된 이 시계의 다이얼에는 자그마치 13개의 바늘이 있다. 시·분·초침에 더하여, 크로노그래프, 30분 토털라이저, 스플릿 세컨드 카운터, 알람, 파워 리저브 표시창, 울림 메커니즘, 윤년을 포함한 퍼페추얼 캘린더에 해당하는 시계바늘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미니트 리피터, 문 페이스 기능까지 포함하였다. 820개의 부품이 조립된 이 무브먼트는 55개의 루비로 장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