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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희의 미디어아트 읽기

비디오 설치미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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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68호 편집팀⁄ 2010.05.03 15:10:49

진선희 (독립큐레이터) 1958년 비디오아트 초창기에 볼프 보스텔(Wolf Vostell)은 ‘TV 데콜라주’에서 캔버스 뒤에 비디오를 설치하고는 찢어진 하얀 캔버스 사이로 모니터의 전파를 흘러 내보낸다. 움직임이 없는 평면 또는 정적인 입체적 오브제를 예술품으로 관람하던 관객에게 캔버스 사이로 보이는 전파는 생생한 메시지이자 간과할 수 없는 신경 자극제로 주목을 끈다. 보스텔은 TV 모니터가 20세기의 조각이라고 명명하면서 소음, 오브제, 운동성, 색채 그리고 심리를 아우르는 ‘총체적 이벤트’를 마르셀 뒤샹과 플럭서스에 이어 새로운 예술로 즉 ‘설치예술’로서 재정하기에 이른다. 마이클 러시는 이러한 보스텔의 개념은 ‘예술 오브제의 비물질화’라는 비평가 루시 리퍼드의 언명에 필수적인 버팀목이 됐다고 말한다. 작품에 있어 물질적 형태는 예술의 배후에 있는 관념 혹은 개념보다 부수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개념적인 접근에 뿌리를 둔 퍼포먼스, 바디 아트 그리고 사운드 아트를 통합한 멀티미디어 설치미술은 미술영역에 진입한 다중적인 사물과 개념의 포괄성에 대한 응답으로서, 그리고 유력한 미디어제도, 특히 텔레비전과 그 동반자인 광고에 대한 도전으로서 발전한다고 언급한다. 일단 비디오 설치예술은 가정으로부터 텔레비전을 분리해 스크린을 독립적 개체로 즉 예술적 오브제로 보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예술가들에게 상업적인 대중성과 매스미디어의 정치적 획일성을 극복하며 환기시키려는 실험적이면서도 미학적 탐구를 요구했다. 초기 작품들은 창작적이며 실험적인 생생한 매체공간을 창출하는 백남준을 위시로 코너 구석구석에 모니터를 배치하고 몇 초의 시간차로 녹화와 상영을 반복함으로서 관객에게 이질적 자아를 선보이는 댄 그래험(Dan Graham)의 작업은 비디오의 시간적 특성과 공간적 특성을 잘 살리고 있다. 또 일방적인 방송에 길들여진 수동적인 시청자들을 모니터를 통해 역으로 바라봄으로서 각성시키는 감시적인 역할의 모니터링을 보여주는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의 ‘퍼포먼스 복도’(1968) 그리고 데이비드 골든버그(David Goldberg)의 ‘전자레인지와 냉장고 정물’(1992)은 감시카메라를 통한 관람자의 관음증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의 비례’를 비디오 설치를 통해 조각으로 분리한 신체의 영상인 카드린느 이캄(Catherine Ikam)의 ‘원형의 단편들’(1980)은 다수의 복합적인 모니터 영상으로 비디오 환경을 구성하는 작업이 아닌 세부적인 디테일과 분리된 단편들을 재구성하는 이미지로 새롭게 주목받았다. 건축적인 요소를 가미한 일본 조각 설치가 카추히로 야마구시의 작업들은 아치나 그리스 신전 같은 고전적 건축물들을 비디오 모니터로 모던하게 재구성하면서 고전과 현대의 문화적 충돌을 도모했다. 페미니즘 여성 예술가 오를랑(Orlan)은 ‘성 오를랑의 재생’을 통해 바로크 시대의 종교적 성상학을 비꼬며 성녀와 탕녀의 이미지를 여러 매체를 통해 교차 합성하며 시대적인 반전을 보여준다. 이는 바로크 시대 여성의 성개념과 오늘날 윤리관들의 매체 안에서 부딪치면서 관객에게 시대적인 여성의 윤리적 잣대가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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