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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소망 그리고 진솔함이 담긴 집

돌가루-석재로 생활을 기록하는 독특한 작업 방식의 작가 인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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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68호 김대희⁄ 2010.05.04 09:16:16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그림을 본다. 보고 싶어 직접 찾아간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전시된 그림을. 또는 길을 걷다, 잡지를 읽다, TV를 보다 보게 되는 그림도 있다. 그 중 어떤 작품은 한눈에 마음과 시선을 사로잡는가 하면 어떤 작품은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느끼기 어렵다.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문득 그 어렵던, 도대체 뭘 그린 건지 알 수 없던 그림도 새로운 의미가 되어 마음에 들어올 때가 있다. 중요한 건 자신의 상황과 감정이 그림과 만나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와 공감을 형성하는 순간이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하고픈 말, 그리고 표현하고 싶었던 감정 등은 우리가 지금 느끼거나 아니면 잊었던 본질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솔함이 담긴 그림은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휴식이 되고, 희망이 되고 꿈이 될 수 있다. “누구나 느꼈던 경험들, 즉 첫사랑, 이별, 사고의 아픈 기억 등이 있다. 체험했던 시기와 경로는 다르지만 즐겁거나 슬프거나 하는 감정을 느끼는 건 똑같다. 사실 그림을 보면 이해 못하는 부분도 많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이 무의식적으로 나오기도 한다. 작가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감정의 표현이 색과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다. 순수한 마음과 정직한 느낌 속에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인동욱 작가를 만난 갤러리 옥상에서 바라다본 인왕산. 산 옆으로 집들이 빽빽이 들어선 모습은 마치 인 작가의 작품을 보는 듯했다. 구도와 형태는 다르지만 한눈에 흡사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도시의 뒷골목과 일상에 주목하며 수많은 감정을 기록해 나가는 벽화식 그림을 그리는 인 작가는 삐뚤삐뚤 금세 쓰러질 것처럼 형태를 왜곡시킨 집에 밝은 색채를 더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어릴 때부터 나만의 느낌으로 그림을 자주 그렸다. 그림에 취미가 있었고 공부보다는 그림이 좋았다. 잠깐 반짝하는 것보다 오래 남는 작가가 되고 싶다. 나의 작업 방식은 사소한 것 하나에도 욕심 없이 솔직하고 진실함을 담아 기록해 나가는 벽화식 그림이다. 사실 ‘작가’보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좋다.” “좋은 그림이 힘”이라고 그가 말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2008년 결혼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해 준 주인공이 다름 아닌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그림을 좋아했던 아내는 인 작가의 그림을 보고 만나고 싶어했고 어떤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인연이 됐다. ‘작품 활동에 큰 힘이 되는 사람’이라고 그는 귀띔했다.

돌가루와 석재를 이용해 하루 12~17시간씩 노동집약적인 작업을 하는 인 작가가 만드는 이미지는 집이다. 물론 하나의 건물이 아닌 수많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층층이 쌓여 하나의 동네를 연상시킨다. 인 작가는 같은 장소를 여러 번 스케치할 정도로 꼼꼼하다. 서울의 신촌, 대전, 대구 같은 각 도시의 마을을 하나로 붙여 평면에 재구성하는 작업을 한다.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작품의 보존 문제로 오래 남는 동굴 벽화처럼 돌가루와 석채를 사용한다. 우리말도 단어 하나가 여러 가지 뜻이 있듯 작품 속 집집에 저마다 느낌과 감정을 넣어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자세히 보면 집마다 우편번호도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2003년부터 시작된 집 작업은 초기에는 세로로만 작업했다. 형태가 불분명하고 채색도 지금과 달랐지만, 기본 모티브는 그대로인 채 형태와 패턴, 채색 등을 진화시켜 왔다. 그는 “그림에도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며 진화시켜 나간다. 형태를 파괴하며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는 인 작가는 기존의 정해진 캔버스 크기와 상관없이 화판도 직접 만든다. 작품 크기나 재료, 구도도 작가에게는 제약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집은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한다는 걸 깨고 마음이 느끼는 대로 그린다. 집은 우리가 사는 일반적인 곳이 아닌 각자가 느끼는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마음이 될 수도 있고, 그리움이 될 수도 있으며 여자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집이라는 게 중요하다. 생각하고 느끼는 차이만 있지 결과는 같다.” 이 같은 철학을 지닌 인 작가이기에 벌써 10년, 20년 아니 죽을 때까지 자신만의 계획을 세워 놨다. 외부적인 요인에 이끌려가지 않으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단다. 인 작가의 인기는 국내 아트페어 뿐 아니라 유명 갤러리의 개인전 의뢰도 마다했을 정도니 말이 필요 없다. 올해 10월 개인전을 가질 예정인 인 작가는 앞으로 기회가 되면 해외로도 진출하고 그림이 아닌 실제로 살 수 있는 집을 작품으로 만들어 집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개념을 적립하고 싶다는 바람도 말했다. 미술 작업은 대중과의 연애와도 같다고 말하는 인 작가는 “그냥 흥미롭다고 느끼는 작업보다 정말 괜찮은 작업을 보이고, 좋은 작업으로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5월 6일 서울을 떠나 강원도 문막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그러나 기억과 소망, 생활을 기록하는 그의 집 작업과 새로운 도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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