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오지혜 분)과 베로니카(김세동 분)의 집 거실. 아들들의 싸움을 현명하게 해결해보자는 베로니카의 제안에 따라 가해 아이의 부모 알렝·아네트 부부는 미셸·베로니카 부부의 집을 찾는다. 다르푸르 분쟁과 아프리카에 조예가 깊은 베로니카는 피해 아이의 부모지만, 자기 아이뿐 아니라 가해 아이의 미래까지 보듬어주려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호의는 가해 아이의 아빠 알렝의 무례함 때문에 번번이 무너지고, 각자의 본심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은 급기야 몸싸움까지 서슴지 않는 ‘막장 드라마’까지 찍게 된다. 4월 6일부터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대학살의 신>(God of Carnage)은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는 말을 신랄하게 재연하는 연극이다. 비록 자신의 아이가 다쳤지만 지식인으로서 우아한 해결을 보려 하는 베로니카(오지혜 분), 아내 베로니카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알렝·아네트 쪽도 인정하는 줏대 없는 남편 미셸(김세동 분), 피해 아이에게 어서 빨리 사과하고 이 끔찍한 기분에서 벗어나고픈 아네트(서주희 분), 아이들 싸움을 부모가 의논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적정한 보상 뒤에 자신의 일상으로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알렝(박지일 분), 이들은 처음부터 위태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이들 부부의 대화는 알렝의 전화벨 소리 때문에 번번이 끊어지고, 신경은 점점 날카로워진다. 시간이 갈수록, 논쟁이 심화될수록 이들의 본심은 조심스럽게 새어 나오고, 베로니카의 구토로 인해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친다. <대학살의 신>은 2009년 토니상 연극부문 최우수 작품상·연출상·여우주연상을 비롯해 2009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 최우수 코미디상 등 권위 있는 시상식의 주요 부문을 휩쓴 화제의 연극이다. 사회 풍자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신작으로 2008년 3월 런던 윈드햄극장에서 초연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2009년 3월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이번에 오른 한국 초연은 배우들의 처절한 연기가 극의 80%를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뻔뻔함을 유지하는 박지일, 순종적이고 양심적인 모습을 보이다가도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말과 행동에서 폭소를 유발하는 서주희, 갈대처럼 이리저리 휘둘리지만 할 말은 다 하는 김세동, 마음속에는 유치함을 가득 품고 있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오지혜. 이들 연기파 배우 넷이 이루는 조화는 더없이 유쾌하다. 그러나 <대학살의 신>을 <라이어> <룸넘버13>과 같이 자지러지게 웃겨줄 코믹극으로 생각한 관객은 크게 실망할 수 있다. 지식인 네 명의 대화인 만큼 다소 어려운 단어가 오가고, 따라서 일반적인 코믹극보다 다소 지루할 수밖에 없다. 문의 02-577-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