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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희의 미디어아트 읽기

비디오 설치미술가들 - 빌 비올라와 게리 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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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69호 편집팀⁄ 2010.05.10 15:44:05

진선희 (독립큐레이터) 초기 비디오 설치작품들은 규모나 실험적인 작품 구상력에 있어 신선한 의도와 뛰어난 예지력으로 비디오의 기술적인 특수성을 발전시켜나갔다. 80년대 이후 비디오 설치 작가들은 보다 예민한 감성적 통찰력 그리고 개인적인 성찰과 철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의 내재적 완성도를 더욱더 높였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작가들의 깊은 관념적 이해는 비디오라는 특수한 매체를 통해 더욱 생생하고 감각적으로 시각화되면서 작품의 완성도가 한층 높아졌다. 대표적인 작가로 빌 비올라(Bill Viola)와 게리 힐(Gary Hill)을 들 수 있다. 1951년 미국 태생 빌 비올라는 흔히 시각적 시인이라는 칭송을 받는 설치예술가다. 백남준처럼 음향 공부를 한 그는 영상과 음악의 조화에 동서양의 여러 종교와 신비주의를 포함한 정신적 근원을 두고, 인간의 영적 경험과 자각적 성찰을 개인적으로 내재화시켰다. 또한 작가의 개인적 탐구 과정을 비디오로 영상화시키는 비디오와 멀티미디어 설치 작업에 있어 선구자적인 완성도를 갖춘 작가다. 이런 과정은 1983년 작품 ‘빈집을 두드리는 이유(Reason for Knocking at an Empty House)’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빌 비올라는 빈집에서 3일 동안 갇혀 잠들지 않는 고행을 비디오 영상에 담아 전시하면서 시간의 경과에 따라 육체적 고행이 인간에게 있어 얼마만큼의 경험치인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이 작품은 육체적 고행으로 인한 해탈의 과정과 시간, 그리고 육체의 제한적 조건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고통과 자각적 인식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또 ‘십자가의 성 요한을 위한 방(Room for St. John of the Cross)’에서는 16세기 종교재판에서 카르멜회(Carmelite)의 신비주의자를 가뒀던 작은 감옥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 뒤편에는 커다란 스크린 속에 눈 덮인 산이 펼쳐지며 영혼을 노래하는 성자의 시가 스페인어로 들려온다. 그러다 엄청난 폭음이 울려 퍼지며 웅장한 산 전체가 움직이는 청각적 영상은 갇힌 성자의 깨달음과 해탈을 공감각적으로 증폭시킨다. 관객에게 이처럼 불편하면서도 경건한, 그러나 작품이 주는 움직일 수 없는 강한 자극적인 쇼크는 프랑스 철학자 장 프랑수아가 말한 예술작품에 있어 ‘숭고’(Sublime)의 개념을 극명히 드러낸다. 이 숭고의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한 예로 2002년 작 ‘마지막 천사(The Last Angel)’를 들 수 있다. 심해의 해저 같은 어둠 속에 푸른 물결이 천천히 화면 전체에서 일렁이며 한순간 인간의 육체가 갑자기 폭발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수면 깊이 침몰한다. 소리는 참을 수 없이 일순간 높아지고 이해할 수 없는 철학적 계시를 관객은 접하게 된다. 작품 앞의 관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편한 감정에 휩싸이지만 옴짝달싹할 수 없게 하는 작품 속의 계시를 묵과 할 수 없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받아들어야만 하는 관객은 예술작품의 철학적이고 함축적인 깨달음 앞에 무력함을 느낀다. 이런 낯선 아름다움의 미학을 장 프랑수아 리요타는 ‘숭고’라 명명한다. 사람이 물 속으로 떨어지는 순간까지 흐르는 긴장감은 ‘숭고’의 개념을 잘 표현한다. 빌 비올라의 작품은 ‘숭고’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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