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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 이야기 나눈다

‘잊혔던 일과 현재 일어나는 상황’을 재구성하는 작가 권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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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69호 김대희⁄ 2010.05.10 15:52:33

예술작품은 참으로 많은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산다. 수많은 사람의 아픔과 비밀 그리고 기쁨과 이야기를 간직한 예술작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그리고 역사를…. 이처럼 잊힌 역사와 이야기를 담은 예술작품은 기억이 되어 다시금 나타나곤 한다. 그러한 기억은 또 다른 기억을 만들고 또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처음 대면할 때는 재미와 웃음을 주지만 바라볼수록 깊은 이야기로 생각을 일깨우는 권오인 작가는 고릴라 형상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그 작고 소소한 부분까지 포착해 보여주는 작업을 한다. 이러한 작업은 현재 일어나는 우리 주위의 모든 상황에서부터 과거의 이야기까지, 당시 간과했던 부분부터 시간이 흘러 잊었던 부분까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권 작가는 대학을 졸업하던 1999년 프랑스로 떠났다. “대학 졸업 후 작가로서 공모전 등을 통해야 하는 형식에 매이는 게 싫어 그림을 그만두려 했다. 여행과 함께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는데 사실 미술이 제일 자신 없었다. 하지만 작가로서 전시가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자신이 없는 미술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라마다 언어는 다르지만 전 세계가 함께 쓰는 공통적인 기호가 있듯, 미술은 이미지로 대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2009년 5월 한국으로 돌아온 권 작가는 10년여 가량을 프랑스에서 보내며 많은 점을 배우고 느꼈다. 회화, 조각, 설치 등 분류가 명확히 나뉜 국내와 달리 프랑스에선 작가의 작업 비중에 따라 설치조각, 설치미술 등 멀티 개념으로 분류가 명확하지 않았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느낀 점이라면 작가는 모든 방면에서 다재다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미지보다 개념적인 언어가 강했다. ‘어떻게 만들기보다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고민해라’는 프랑스 교수에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국은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중시하지만 프랑스는 사물 자체의 개념(존재)을 중시한다. 소통 자체가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색감이나 완성도, 형태 등 한국 작가들의 손재주는 정말 뛰어난 것 같다. 하지만 많은 작품을 보다보니 비슷해 보이고 다양성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잘 그리고 잘 만드는데 계속 보면 무엇인가 부족하고 허전하다. 좀 더 차별화된 재미있는 전시가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라고 한국에 돌아와 느낌 소감과 문제점도 털어놨다. 권 작가는 인간의 모습과 비슷한 고릴라를 주인공으로, 사회-문화-현대인 등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모습을 이미지로 남기며 이야기를 재구성해 풀어나간다. 그리고 이를 통해 관객과 대화하고자 한다. “사실 이야기의 주제는 무겁지만 재미있는 형상의 고릴라로 표현하면서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했다. 이미지가 가벼워도 관람하는 사람들이 깊이 있게 감상해준다. 여기에 전시 제목도 재미있게 만들어 웃음을 유발한다. 지난해에는 연예인의 죽음과 대통령의 죽음, 그리고 용산 사태 등 큰 사건이 많아 당시 개인전은 그 시대를 반영해 작업했다. 아무리 큰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조용해진다. 많은 정보가 쏟아지다보니 점점 무감각해지고 이슈도 빠르게 변하는 것 같다. 잊혔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는 작업이다.”

보면 볼수록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 그 표정과 감정이 느껴지는 권 작가의 고릴라는, 폴리에스테르에 채색으로 마무리된다. 고릴라의 주름과 털 모양까지 작업하니 어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권 작가는 채색보다 만드는 걸 더 잘하기 때문에 오히려 쉽다고 웃으며 말했다. “작가는 작품과, 작품은 관객과 소통한다”고 말하는 권 작가는 관객을 찾아가는 전시, 관객과 함께하는 전시를 희망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작가와 관객은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란다. 결국 주제는 같지만 관객마다 느끼는 점이 다르기에, 작가는 전시 시작과 함께 작품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말한다. 관객이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말이다. “전시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작품들은 모두 하나의 상황을 연출하면서 그 속에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오히려 관객이 작품을 보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게 재밌다. 내용과 이미지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작가는 화두를 던지는 사람으로 함께 토론하고 많은 의견을 수렴할 때 ‘정답’이 나올 수 있고 본질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이 같은 권 작가의 작업관은 플라톤의 ‘동굴 알레고리(비유)’에 큰 영향을 받은 결과다. 동굴 속 죄수들은 동굴 안쪽 벽면에 비춰진 실재의 그림자만을 평생 보고 사는데 그들은 친숙해진 그림자에 집착하며 감정이나 선입견에 사로잡힌다. 죄수들은 처음부터 사물의 진짜 모습(본질)보다는 입구의 불에 의해 동굴 맨 안쪽에 비친 그림자(허상)를 보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 삶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진리는 감각에 의해 인식된 것만으로 간주되는데 플라톤은 이를 두고 쇠사슬에 묶여 있는 그림자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대부분 예술가들이 가지는 고민, 그리고 궁극적인 목표는 어떤 수단으로 표현하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의도한 감정이나 메시지를 제대로 표현해낼 수 있느냐 없느냐일 테니 말이다. 앞으로 더 많은 주변 이야기와 사회적 이슈 등 무궁무진한 소재를 작업으로 보일 권 작가는 고릴라를 만드는 작가가 아닌 재미있는 전시를 하는 작가로 남고 싶다고 했다. 또한 자신만의 색을 가진,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전시를 만들어 세계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포부를 보였다.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재치 있게 전달하는 권 작가의 개인전은 홍대 근처에 있는 스페이스 홀앤코너에서 4월 30일부터 5월 2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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