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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과 한판 승부> 열여섯 번째 이야기

자살하려는 사람들은 어떤 인생관을 갖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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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69호 편집팀⁄ 2010.05.10 16:00:49

글·김윤식 자꾸만 짠해오는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무애는 맥이 풀려 처져 있는 미치코를 달래려는 듯, 그녀의 손을 잡아 끌면서 발을 구르는 개구쟁이 몸짓으로 재롱을 피웠다. 머리는 천하제일 천재일지라도 마음만은 어쩔 수 없이 천진난만한 어린이였다. 무애는 미치코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듣고서야, 아리따운 처녀처럼 보이는 그녀가 자신을 동생이 아닌 아들같이 느껴진다고 말한 연유를 알 수 있었다. 또한 ‘살아 있는 죽은 자’의 의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애는 침울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써 화제를 돌렸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미치코가 털어놓은 슬픈 사연의 여운이 가시질 않아 몇 번이고 곱씹어야 했다. 백중 보름달이 전에 없이 애절하고 처량한 모습으로 석양의 낭떠러지를 지켜보는 가운데, 우연하게 시작된 담론의 열기는 여전히 식을 줄을 몰랐다. 눌촌 거사가 자기정체성을 확립하여 멋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접근방법을 제시해주었지만, 다들 너무 추상적이라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는 듯 보였다. “거사님, 어쩌다가 이 땅에 태어나서 한세상 살아가야 하는데, 과연 어떤 인생이 의미 있고 값지고 보람 있는 삶인지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정녕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겁니까?” “흐음! 값진 인생이라……. 과연 그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려. 그렇다면 그대들은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견지해왔는지, 아니면 혹 이상적이라고 여겼던 인생은 어떤 것인지, 누구라도 한번 얘기해보면 어떻겠소?” 눌촌 거사는 이번에도 일행에게 어려운 숙제를 넘겨주었다. 한데, 눌촌의 제안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금까지 발언 기회를 늘 양보만 해왔던 왕문후가 선뜻 나서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저는 이번에 출가(出家 : 불교의 수도자로 입문함)를 결심하고 석양의 낭떠러지를 찾게 된 사람입니다. 때문에 제 인생의 목표는 득도(得道)하여 윤회(輪廻 : 생명이 있는 중생은 죽어서도 다시 태어나 생을 반복하게 됨)의 업보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만약 그에 미치지 못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깨달음을 얻고 선업(善業)을 쌓아, 다음 번 윤회에서 육도(六道) 중에 적어도 인간계나 천상계에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때문에 저의 인생은 오로지 깨달음을 찾고 선업을 쌓는 수도자의 길이 전부라 믿고 있습니다.” 석양의 낭떠러지에서 펼쳐지는 인생관 대토론 왕문후가 말한 육도란 윤회의 대상이 되는 6가지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지옥계(地獄界)·아귀계(餓鬼界)·축생계(畜生界)·아수라계(阿修羅界)·인간계(人間界)·천상계(天上界) 등이 있다. 왕문후가 불교적 신앙을 가지고 자기 인생의 뜻을 밝히자, 개신교 신자인 이기하가 곧바로 의견을 개진하고 나섰다. “저는 하나님이 애초에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우주와 인간을 창조했다는 확신으로부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고,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나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원불멸의 내세가 있고, 그 내세에는 당연히 천당과 지옥이 있고, 하나님의 믿음을 통해 구원받지 못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착한 삶을 찾아 기도하고,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이웃에 봉사하고, 수시로 저지르는 죄악을 회개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저의 인생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저의 인생이 늘 감사하고 기쁘고 행복할 따름입니다.” 일행 중에는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도 꽤 있었다. 이들은 앞서 두 사람이 보인 종교적 기반의 확고한 인생철학을 듣고 놀라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때, 신선처럼 도풍(道風)을 풍기며 앉아 있던 눌촌 거사가 다른 일행에게도 주저하지 말고 자유롭게 의견을 펼쳐보라는 듯 긴 지팡이로 신호를 보냈다. “옛말에 처세약대몽 호위로기생(處世若大夢 胡爲勞其生 : 세상살이란 큰 꿈과 같은 것이니, 어찌 그 삶을 수고롭게 할 것인가)이요, 인생여조로 하자고여차(人生如朝露 何自苦如此: 이슬 같은 덧없는 인생살이에 굳이 고생할 필요가 있으랴)라 했습니다. 그렇듯이 인생이 저무는 그때쯤 돌이켜 보면 일장춘몽(一場春夢) 같은 허무함만 남을 텐데, 그토록 난리법석을 치며 아등바등 살 필요가 있겠는지요?” “옛 성현이 말씀하시길, 천지소이여아자 기우연재(天地所以與我者 豈偶然哉 : 하늘이 내게 주신 사명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더욱 자중해서 할 일을 다해야 하느니라)라 했습니다. 이는 하늘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귀한 삶의 소명을 주었다는 뜻이지요. 그런 만큼, 우리 인생이란 한번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고, 그래서 오로지 자기만이 해야 할 일이 있고, 누구든지 기쁨과 희열을 맛보게 해주는 축복이라 믿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인연에 감사하고, 결코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나름의 인생의 가치와 보람을 찾아 한평생 열과 성을 다해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솔직히 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한평생 부귀영화를 톡톡히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어떻게 해서든 ‘출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부(富)든 명예든 권력이든 적어도 어느 한 가지는 크게 성취함으로써, 단 한 번뿐인 인생에 물질적 풍요나 명성이나 지위를 향유하여 잘난 척하며 사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런 욕망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출세의 일환으로 기필코 제세안민(濟世安民)과 경국대업(經國大業)의 야망을 성취하여, 나라를 번영시키고 백성을 행복하게 하는 역사적 위업을 이루고 싶습니다.” “옛말에 기부유어천지 묘창해지일속(寄 於天地 渺滄海之一粟 : 이 하루살이 몸을 천지에 의탁하니, 아득한 푸른 바다에 한 알의 좁쌀 같구나)이요, 일아이로 식아이사(佚我以老 息我以死 : 하늘은 우리에게 늙음을 주어 편하게 하며, 우리에게 죽음을 주어 쉬게 하느니라)라 했습니다. 이렇듯이 우리 인간은 찰나 속에 잠시 흩날렸다가 어디론가 사라지는 먼지와 같은데, 그럼에도 늙고 병들어 죽게 됨을 위로받아야 하는 딱한 존재라 봅니다. 하기에 인생철학, 삶의 의미, 존재가치, 인생의 열정, 삶의 경건함 등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옛 성현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생비조로 거세다둔건(人生譬朝露 居世多屯蹇 : 인생이란 아침 이슬처럼 덧없으니, 수시로 불운이 닥쳐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느니라)이요, 인생원시일괴뢰 지요근체재수(人生原是一傀儡 只要根 在手 : 인생은 원래 한갓 꼭두각시 놀음이니, 모름지기 그 뿌리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느니라)라 했습니다. 이는 자칫 허송세월로 귀한 인생을 낭비할 수도 있고,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재앙이 닥치기도 하고, 조직이나 체면에 속박되어 자신의 의지와 동떨어진 허수아비 삶을 살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임을 시사하는 말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자기존재에 대한 자긍심을 바탕으로 자신의 소질과 개성을 살리는 자기세계를 구현하여 끊임없이 자아성취를 도모하는 것이 진정한 인생이라 믿습니다.” 인생이란 아침 이슬 같은 덧없는 존재인가 “저는 이곳 석양의 낭떠러지에 올라 죽음의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묘한 감정 속에 참으로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몹시도 한이 되고 못내 미련이 남고 참으로 아쉬운 게 하나 있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동안 살아오면서 왜 주위에 베풀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만에 하나라도 제게 다시 한 번 삶의 기회가 찾아온다면, 남은 여생 저의 능력과 정성을 다 바쳐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봉사하고 헌신하고 베푸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은 욕망이 용솟음치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나서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인생의 단면에 대해 의견을 피력했다. 그중에는 참으로 냉소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소견도 있었지만, 자살까지 결심하게 된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볼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들이 표출한 소견은 비록 인생의 한 자락에 불과했지만, 그 속에는 삶의 애환이 면면히 묻어났다. “거사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생이란 화두는 참으로 난감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송구스럽지만, 이참에 우리 인생에 대하여 한 말씀 청하고 싶습니다.”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이자 국무원 소속 고위 공무원인 위자량(衛子亮)이 차분한 목소리로 인생에 대한 가르침을 청했다. “저 역시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정녕 나는 누구인지를 찾고자 이렇게 산과 계곡을 하릴없이 헤매는 어리석은 방랑자올시다. 그러니 다음과 같은 옛 가르침을 전하는 것으로 소승의 답변을 대신할까 하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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