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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희의 미디어아트 읽기

비디오 설치미술가들-빌 비올라와 게리 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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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70호 편집팀⁄ 2010.05.17 16:39:46

진선희 (독립큐레이터) 우리는 앞서 비디오 설치가 중 작가 내면의 인식적 개념을 작품화시키는 예술가로 빌 비올라(Bill Viola)와 게리 힐(Gary Hill)을 대표적으로 언급했다. 빌 비올라가 개인의 동양적인 내면의 성찰을 앞세워 작품을 시각적인 시로 완성해 나갔다면 게리 힐은 언어학자나 구성주의자들인 비트켄슈타인 (Wittgenstein), 블랑쇼(Blanchot), 데리다(Derrida), 레비나스(Levinas)와 같은 서구 철학가들의 인식론적 역사관을 기초로 작품을 구상화한다. 1951년생인 게리 힐은 조각가로 출발했지만 디지털 이미지를 조각의 한 부분으로 이용하다가 비디오 설치미술가로 확고히 자리 잡은 미국의 대표적 아티스트이다. 초기 작품인 ‘벽의 구멍’(Hole in the Wall, 1974)은 전시 한쪽에는 구멍이 반대쪽에는 작가가 벽을 부수는 행위가 영사된다. 게리 힐이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개념은 우리의 인식과 감성이 개개인의 독자적인 개성과 감각의 표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인식을 규정하는 언어나 구조적 또는 규칙적인 틀 안에서 규정되는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관심을 말한다. 특히 70년대 후반 언어유희에 대한 작가의 열정은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이미지와 언어의 복합적 감각으로 구성되어 인식에 대한 관찰로 드러난다. 이는 색채에 관한 감상(REMARKS ON COLOR, 1994)이라는 작품에서 잘 관찰할 수 있다. 한 소녀가 검은 배경에서 비트켄슈타인의 색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관객은 색을 화면에서 볼 수 없지만 소녀가 읽는 텍스트 내용은 비트켄슈타인의 언어적 탐구를 통해 그 색이 언어로 보일 수 있는 모든 가능성과 형용될 수 있는 감각적 지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는 색채가 단지 시각적 영역의 것만이 아닌, 더 나아가 우리의 색채 적 지각이 시각적 감각보다 어쩌면 언어적으로 인간의 감성적 표현에 잘 맞추어져 있지는 않은가라는 의구심을 갖도록 관객에게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장 프랑수와 리요타의 ‘숭고’의 개념을 빌 비올라가 예술적으로 가시화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비트켄슈타인이 관찰한 ‘구조적으로 언어가 사유에 설치해 놓은 획일적인 감성 기술성’을 관객이 작품을 통해 시청각적으로 각성하도록 미학적으로 승화시킨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의 또 다른 철학적 접근을 보여주는 큰 배(Tall Ships, 1992)는 레비나스(E. Levinas)의 타자에 대한 인식론적 접근이다. 관객이 전시공간에 들어가면 둘러싸여진 스크린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다가와 소곤거리고는 멀어진다. 서구의 데카르트적인, 즉 인식 주체를 ‘나’를 중심으로 하는 존재론에서 ‘타자’로 확대하는 일련의 작업이다. 물론 관객에게 이해되기 쉽지 않다. 빌 비올라의 작품이 굉음과 함께 불편한 숭고감을 관객에 제시하듯이 게리 힐은 관객에게 있어 언어놀이에 귀속된 감각적 획일성에 대한 자각 없이는 소녀의 연출은 이해될 수 없다. 그리고 ‘타자’의 소곤거림이 존재론적으로 중심이동이라는 개념은 개인적 성찰 없이는 납득되지 않는다. 80년대 이후 소위 제2세대 비디오 설치작가들의 작품은 원숙해진 개념미술과 융합되어 보다 개인적이며 내면적 성숙을 드러내면서 관객에게 다소 거리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예술의 표현력이 공감적이고 미적이기만 한 감성을 넘어 개인적 감수성의 반향과 내적인 성찰이 예술적으로 승화될 가능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자각할 수 없었거나 무심코 간과될 수 있는, 사회적 암묵 속에 감추어진 형식화된 인식의 방식 또는 지각의 표현들은 예술가의 끊임없는 실험적 각성으로 전환되어 우리의 삶을 환기시킨다. 이는 예술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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