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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몸을 여자 입장에서 남자에 이해시킨다

사진 위에 그림 그리는 새 방식에 도전하는 권민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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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70호 김대희⁄ 2010.06.01 09:54:09

일반적으로 남성 화가가 그린 여성의 몸은 관능적이거나 매혹적으로 혹은 우아하게 그려진다. 물론 의도와 메시지에 따라 그 형태와 의미는 달라지지만 남성이 바라본 여성은 성(性)적인 대상으로 비친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서울 응암동 작업실에서 만난 권민경 작가의 그림에선 다르다. 그녀가 그리고 바라는 여성의 모습은 남자의 눈으로 보는 관능의 대상이 아니라, 여자 그 자체다. 선입관 없는, 꾸며지지 않은 여성 그 자체의 본질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권 작가가 그리는 작품에는 항상 여성이 등장한다. 주제는 여성이 몸과 관련해 세상에서 받는 압박, 그리고 성에 대한 비판이다. “나 자신이 여자로 태어났지만 여성을 성적으로 보는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도 인간 그 자체로 보이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비판을 담았다. 보이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그리니 ‘야한 걸 좋아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작품마다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권 작가의 작품에는 규칙이 있다. 먼저 배경이 있고, 인물이 나오고, 이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또한 작품마다 등장하는 여성은 바로 작가 자신이다. “모든 작품에는 나 자신이 나오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여성이라는 게 중요하다. 인간 그 자체, 자연인으로서의 여성이라는 메시지 전달이 핵심이다. 특히 보는 시각에서 남녀 간에 차이가 심하다. 여성은 잘 받아들이지만 남성은 반대다. 남성 관객에게 작업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권 작가의 작품 중 ‘슈퍼 우먼’은 슈퍼맨의 옷을 입은 원더우먼이다. 원더우먼에게 남자 슈퍼맨의 옷을 입힌 작품이다. 배경인 골목길은 슈퍼 영웅이 흔히 밤에 어두운 곳에서 활동한다는 의미로 그렸다.

“여자 몸을 여자 입장에서 그리니 ‘야한 걸 좋아하냐’는 사람도. 여자가 그린 여자를 여자는 잘 받아들여도 남자들은 잘 안 받아들이더라.” 어린 시절부터 입시 미술을 시작했다는 권 작가는 만화를 따라 그리는 등 그림을 좋아했다. 그 배경에는 미술에 관심이 많은 어머님의 든든한 후원이 있었다. 권 작가는 “난 지금 화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어머님은 사실 작가보다는 미술교사나 미술과 관련된 안정된 직업을 원하셨던 것 같다”라며 겸연쩍은 웃음을 보였다. 그녀는 또한 “대학을 졸업한 당시에는 작가를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취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결국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왔던 세월 탓에 쉽게 미술을 버릴 수 없었다. 미술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고 지금의 나에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권 작가의 작업은 작년 전반기까지만 해도 회화가 주를 이뤘다. 전통적인 유화와 아크릴을 이용한 캔버스 작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작업 방식을 바꾸면서 사진과 그림을 합성한 디지털프린트 작업을 시작했다. 얘기하려는 주제는 그대로지만 작품의 구성과 묘사 등에서 패턴이 완전히 달라졌다.

“회화 작업을 하면서 각종 부업 및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는데 그러던 와중에 컴퓨터를 다루는 기술이 늘고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작업 방식을 바꾸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작품의 보관 때문이었다. 작업은 많이 하고 싶지만 전시회도 없는데 캔버스에 그려놓기만 할 수도 없고 또한 전시 이후 팔리지 않는 작품을 쌓아놔야 하는 점이 답답했다. 그런 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파일로 보관하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작품 속 배경으로 사진을 쓴다. 사진은 직접 촬영해서 그 사진 위에 그림을 그린다. 기존 회화 작업에서 섬세함이 부족했는데 실제 사진을 이용해 보충했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점만 있는 건 아니다. 작업할 때 많은 도구를 사용하는 회화보다 깔끔하고 작업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 효율적이긴 하지만, 붓질로 표현하는 손맛은 떨어진다. 여기에 실제 회화작품보다 가벼워 보이고 색감이나 질감 등 풍기는 이미지가 약해 아쉽다고 한다. “작업 방식을 바꾸기 전에 고민이 많았던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회화를 접은 건 아니고 지금은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단계다. 앞으로 회화를 다시 시작해도 이 단계를 거쳐 더 발전하리라 생각한다.” 또한 작업 방식을 바꾸면서 처음으로 작업한 작품 ‘레드카펫’은 월미도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 그림을 그린 것이다. 가야 할 길과 희망은 보이지만 그 길이 위태해 보인다는 점을 나타냈다. 첫 작업을 시작하던 때 권 작가의 마음이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새로운 작업의 결과물로 개인전을 열고 싶다는 권 작가는, 그 이후 다시 회화 작업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더 발전된 작업을 할지도 고민 해봐야겠다고 한다. “새로운 작업 방식에 대해 ‘예전 시원한 붓질이 아쉽다’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작업도 재미있다는 말에 용기를 얻는다. 쉽게 생각하고 결정한 건 아니며 결국 내가 선택한 일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한 의지를 보인다. 권 작가의 도전정신이 만든 작품은 6월 4~28일 갤러리 아트사간에서 열리는 권민경-장미라 2인전 ‘몸에 대한 담론’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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