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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광의 아프리카미술과 친해지기

에티오피아의 아세파(G. Ass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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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71호 편집팀⁄ 2010.05.24 15:44:45

정해광 (아프리카미술관 관장·갤러리통큰 대표) 아세파는 누구인가? 아세파(1967~)는 러시아의 모스크바 예술대학을 졸업한 후에 아디스아바바 미대에서 회화와 그래픽을 가르치고 있다. 아세파는 에티오피아의 여러 제한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여인’이라는 테마를 통해 예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면서 세계미술계에 이름을 각인시키고 있다. 그의 작품은 닿지 않았던 곳, 접하지 않았던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새로움에 대한 흥분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인들의 아름다움을 자연 본연의 아름다움과 음률에 연결시키면서 아라다(Arada)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그에게 있어 아라다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영감의 창구이자 평화로운 숙고를 위한 영혼으로서의 여정이다.

아세파의 여인과 클림트의 여인 아세파의 아라다 회화 시리즈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 예술적, 사회적 상황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 있는 ‘그림읽기’가 필요하다. 사실 그의 작품은 오스트리아의 클림트와 유사하다는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아세파의 근간이 되는 아라다 속의 여체는 클림트의 그것과는 다르다. 여체를 다루고 장식적인 배경을 사용한 게 유사점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클림트는 화려한 장식을 한 여성을 작품 전면에 등장시켜 여체 자체가 하나의 장식으로 기능 하게 한다. 아세파의 여인은 클림트의 여인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다. 그러나 아세파는 여체에 자유의지를 준다. 팜므파탈(femme fatale)을 재해석한 것이 클림트의 여인이라면, 아세파의 여인은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신비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세파가 사랑한 아라다의 역사, 음악, 여인 그리고 관객 아라다의 역사, 음악 그리고 여인은 아세파를 자극하는 열쇠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듯이 아라다도 세월의 변화를 비켜가지 못한다. 지금의 아라다는 예전의 아라다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 작가는 시대를 초월하려는 만용을 부리지 않는다. 과거로 돌아가거나 드러내려는 우를 범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관심사는 아름다운 아라다의 역사와 음악과 여성이 훼손되지 않게 보여주는 것이다. 아세파는 대중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아라다를 얘기하고 싶어 한다. 수용의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상하는 걸로 만족한다. 에티오피아에 처음으로 세워진 도시를 왜 배경화면으로 그리는지, 자연이 품고자 하는 음률을 왜 여인의 몸으로 표현하려는지…. 그렇게 아세파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라다의 이야기를 오늘도 들려주고 싶어 한다. 어느 날 보는 이의 시선이 아라다에 멈추어진다면 아세파는 환영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각자의 아라다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작가는 크게 기뻐할 것이다. 작품 속의 내용이나 소재 그리고 의미가 ‘나’에게로 향한다면, 그것은 아세파가 그토록 염원하던 자신과 관객이 하나의 세계로 일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통해 작가는 관객을 위한 존재가 되고, 관객은 작가를 위한 존재가 되는 것, 이는 아세파 혹은 아라다의 여인이 꿈꾸는 이데아의 정체일지도 모른다. 아라다는 이디오피아에 처음으로 들어선 ‘물랑루즈’와도 같은 공간으로 전통을 현대로 나아가게 상징적인 장소가 되어 많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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