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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된 그림보다 그릴 때 행복이 더 중요”

순간의 감정을 쌓인 감정과 섞어 순간에 표현하는 작가 최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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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71호 김대희⁄ 2010.05.24 15:44:33

한 사람이 가지는 모습은 하나가 아니다. 어떤 모습으로 언제, 누구에게 보였느냐에 따라 사람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기억된다. 부모님이, 친구가, 직장 상사나 동료가, 연인이, 그리고 나 자신이 보는 나의 모습은 수없이 달라진다. 사람의 매 순간이 이렇게 시시각각 변하듯 모든 것은 변한다. 우리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 나조차도 수없이 변하는데 사람의 감정 또한 한자리에 머물 수 있나?” 2009년 12월 첫 개인전 이후 6개월여가 지나 다시 만난 최비오 작가에게 작품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최 작가의 작품은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에, 수년 동안 겪어온 수많은 경험의 조각들이 모여 비로소 하나로 이뤄진다.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머릿속 지식이 아닌, 느끼는 그대로의 감정을 그리기 때문이다. 아차! 하는 순간이다. 근황에 대해 최 작가는 “정말 쉴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말했다. “2009년 전시 후 미국으로 돌아가 작업에만 몰두했다. 올해 4월 개인전을 가졌고 5월에는 서울오픈아트페어에 참가했다. 11월 뉴욕 전시와 12월 마이애미 스코프 아트페어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첫 개인전 이후 이렇듯 왕성하고 공격적으로 전시를 하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해답은 바로 철저한 준비 기간에 있었다. 전시 경력은 짧지만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기 위한 준비 기간만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마음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고 변함이 없다. 오랜 시간 전시를 준비해왔기 때문에 이처럼 단기간에 쏟아낼 수 있다. 무엇보다 그림을 통한 경제적 활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경제적 여건은 중요하지만 끌려가는 게 싫었다. 작품이 숙제가 되면 안 된다. 내가 그리고 싶으면 아침부터라도 그리게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꼭 해야만 하는 숙제가 되기 때문이다.”

오랜 준비기간 동안 그는 자신만의 철학적 메시지가 묻어나는 그림을 기다렸다고 한다. 눈으로만 보는 그림이 아닌 마음으로 느끼고 교감하는 작품을 기다렸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일을 하며 힘든 경험도 했다. 그만큼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감사하는 마음도 많아졌다. 내가 알고 느껴야 그 감정이 그림으로 나온다. 내가 행복한 마음으로 그리니까 관람하는 사람들도 행복함을 느낀다고 한다. 내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며 서로의 마음이 교감을 이룬 결과다.” “눈-의식으로가 아니라 냄새 맡듯 무의식적 감성으로 내 그림 봐줬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 속에 최 작가의 현재 삶은 행복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최 작가의 그림들은 마치 외계 생명체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실과 같은 가느다란 선으로 끈김 없이 하나하나가 모두 연결돼 있다. 최 작가는 기분과 감정에 따라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그림으로 표출한다. 작업 또한 아침에 주로 이뤄지는데 밤에는 이것저것 생각이 복잡해져서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일반적인 작가와 달리 밑그림 없이 작업을 한다. 그때그때 생각이 날 때마다 바로 작업을 한다. 밑그림을 그리고 다시 옮기게 되면 느낌이 줄면서 감정이 반감되기 때문이란다. 에너지의 증폭과 전달에 중점을 두는 작가의 작업은 감정에서 나온다. “나는 무의식을 통해 에너지를 느끼고,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닌 몸 전체로 에너지의 진동을 느끼며, 그것을 가능한 한 빨리 그림으로 표현하려 한다. 우리가 보통 느끼는 의식은 눈을 통해 접한 정보를 뇌로 전달해 판단하지만, 인간의 시각은 사물의 근본을 왜곡한다. 결국 눈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는 에너지와 진동을 느낄 수는 없다”고 그는 말했다. 무의식의 세계가 모두 담겨 있는 그의 작품은, 글 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제2의 언어 같은 작가의 에너지로 그림을 그려나간 결과다. 최 작가는 “내 작품들을 의식의 창인 눈으로가 아니라 냄새를 맡는 듯한 무의식의 감성으로 느꼈으면 한다”며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라고 말했다. 최 작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행복한 일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 그리고 지금 느끼는 생각-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그 순간이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고 감동을 주고 의미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최 작가가 원하고 바랐던 일이다. “나의 행복은 존재에 대한 감사와 하나라는 통일감이다. 결국 단 하루라도 살아 있다고 느낄 때 행복함도 느끼는 것 같다. 감정의 전달이 중요하다. 감정은 변하고 앞으로도 달라진 감정을 계속 전하고 싶다. 그림의 결과가 행복한 사람보다, 그리는 과정에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그 과정을 계속 이어 가겠다”며 그는 환하게 웃었다. 그림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감정에, 또는 하나의 시간에 머무를 수 없지만 그림에는 그 순간, 그 느낌, 그 생각과 감정이 담긴다. 이게 바로 그림이 가지는 진정한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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