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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광의 아프리카미술과 친해지기

“시간은 거꾸로 흐를 수도 있다”는 타데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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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72호 편집팀⁄ 2010.05.31 16:30:00

정해광 (아프리카미술관 관장·갤러리통큰 대표) 타데쎄는 누구인가? 타데쎄(M. Tadesse, 1953∼ )는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스웨덴 외국인학교를 다녔고, 1972년에 아디스아바바 예술학교를 졸업했다. 1977년까지는 국립극장의 무대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러시아로 가 레핀 아카데미(Repin Academy)에서 회화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에 미국의 MAAA(Mid-American Arts Alliance) 장학재단의 지원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면서 세계미술 시장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타데쎄는 체코슬로바키아, 프랑스, 러시아, 중국 그리고 미국에서 여러 번의 개인전을 거치면서 세계 미술 시장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시간의 문을 그리는 타데쎄 타데쎄에게 있어서 시간은 흘러갈 수 있으나, 멈출 수도 있고 뒤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현재를 통해 과거를 이해하려고 한다. 오늘이라는 시간 안에는 어제의 시간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에 대한 성찰은 결국 과거를 이해하는 것이 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간은 현재를 기점으로 앞으로 움직이지 않고 뒤로 움직이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마음이 미래가 아닌 과거에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서 타데세는 사람의 몸을 ‘문’으로 표현함으로써 그것을 미래라는 생소한 세계로 열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경험했던 과거의 시간으로 향하게 함으로써 무한(無限)의 세계에 접속하여 인간의 존재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타데쎄 그림 읽기 타데쎄는 사람의 몸을 문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한다. 그에게 있어서 문이란, 열고 닫음에 익숙해야 하는 문이다. 그래서 그는 문이 항상 열려 있는 것을 반대한다. 왜냐하면 문이 항상 열려 있으면 그것은 문이 아니라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문이 항상 닫혀 있는 것을 경계한다. 왜냐하면 문이 항상 닫혀 있으면 그것은 문이 아니라 벽이기 때문이다. 문의 존재 의미가 열고 닫음에 익숙한 것처럼, 타데쎄는 사람의 마음도 문과 같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타데세는 긴 목을 통해 인간을 신 혹은 과거의 시간으로 향하게 한다. “신의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여자를 먼저 세상에 보냈다”는 말처럼 그의 시간은 평화로웠던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과거로 흘려보내는 가운데 인간은 자기 자신의 뿌리가 되는 조상신을 만나면서 밀접한 관계를 맺게 만든다. 이는 죽은 자와 산자의 관계를 둘이 아니라 하나로 파악하게 하고, 나아가 인간 사이의 관계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타데세는 여인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극복하는 방식을 찾아낸다.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어머니란 존재가 필요하듯이, 그는 여자라는 테마를 통해 현실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나 구체적인 힘을 찾아낸다. 그 힘은 아프리카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존재의 뿌리가 되는 신의 대한 의미를 모색하고,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자신의 내면 세계를 이해하는 단초가 되면서 인간의 존재 의미를 깨닫게 하는 중요한 계기를 형성한다. 크고 작은 여인들의 긴 목은 오늘이라는 시간의 과거로 향하는 멜로디와도 같다. 그것은 어제와 오늘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현대와 전통이 둘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소통함으로써 서로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미니멀한 현대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색채는 전통에 근거하고 있다. 전통의 이야기를 현대적인 형식으로 들려주고 있다. 문에 대한 의미, 정면 응시, 다양한 옆모습 등. 그런 점에서 타데쎄의 목이 긴 여인은 엘레강스한 모딜리아니의 여인과는 사뭇 다르다. 그에게 있어 긴 목은 오늘이라는 시간을, 내일이 아닌 어제로 향하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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