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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하나 하나에 담긴 추억과 이야기 찾는다

정교하고 섬세한 전통 애칭기법으로 감성적 나무 만드는 김민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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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173-174호 김대희⁄ 2010.06.14 15:32:03

삶을 살아오면서 지난 일들에 대한 추억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더불어 그 추억은 혼자만이 아닌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상대는 부모님이나 연인 등 사람뿐이 아닌 반지, 꽃, 나무 등 사물 그리고 음악이나 장소 등 형태가 없는 소리와 공간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추억 때문에 살고 지금도 훗날 회상할 추억을 쌓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만나는 사람, 귓가로 살며시 들어오는 음악, 뜨거운 햇살을 피해 서 있는 나무의 그늘 그리고 이 장소 등등 나에겐 아니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이 사람과 음악 그리고 이곳이 추억을 만들었던 곳일 지도 모른다. 서울 북아현동 작업실에서 만난 김민호 작가는 오리지널 전통 판화 그중 동판화 작업을 하며 인간과 자연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도 나무에 집중한다. 나무의 형태는 물론 그 나무가 간직한 추억과 이야기까지 하나씩 풀어간다. 일반적인 회화 속 나무와 달리 수많은 가지와 복잡한 형태를 가진 김 작가의 나무는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세세하게 표현됐다.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세심한 노동집약적인 노력과 정성이 녹아있는 작업임을 알 수 있다. “나무는 선을 하나하나 쌓아가면서 그린다. 선이 살아있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맞고 가장 잘 표현되는 게 동판화였다”고 설명했다.

먼저 나무의 사진을 찍고 필름으로 만들어 동판에 사진을 전사한다. 그 위에 부식 방지액을 바른 상태에서 니들(바느질 및 뜨개질용 바늘)로 나무 형태를 그린다. 특히 어두운 부분은 그리고 부식하기를 10번 정도 반복한다. 부식이 다 되면 판을 닦고 잉크로 그려서 프레스기로 찍어낸다. 쉽게 설명하면 지폐를 만드는 기술과도 같다고 한다. 이처럼 쉽지 않은 작업으로 1개의 작품이 나오기까지는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3~4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한 예로 2009년 10월 가진 첫 번째 개인전은 지난 5년 동안 작업한 결과를 보여준 전시라는 말에 시간과의 싸움을 버텨온 작업의 고됨이 드러났다. 젊은 작가가 오래된 방법을 쓰냐는 얘기에 이는 표현의 한 방법일 뿐 이 안에 어떤 걸 담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학원에 다녔으며 고교시절 미술부에 들어가면서부터 재미를 느끼고 그림을 그리고자 마음먹은 김 작가가 지금까지 순수한 마음으로 예술인으로서의 길을 걷는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림을 그리겠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리자 그림을 팔지 마라.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그림을 팔지 않겠다면 허락해주겠다. 돈과 관련되면 순수한 작업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또한 판화는 입시 상담을 할 때 선생님이 권유해서 하게 됐다. 처음엔 쉽지 않았지만 점차 익숙해지고 잘 맞았다고 한다. 대학시절엔 캔버스에 물감을 뿌리는 작업도 하는 등 열심히 했지만 알 수 없는 작업이라는 교수의 말에 잠시 여행을 떠나게 된 김 작가는 그곳에서 나무를 봤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지만 유독 눈에 띄는 나무에서 어머니의 느낌을 받았다.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어릴 적 만화를 즐겨본 그는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공주’ 등을 보며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대해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때는 나무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동판 작업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긁고 새기면서 만드는 라인애칭기법으로 작업을 했다. 어머니나무 시리즈는 선을 써서 나무를 표현했다. 잔가지를 그릴 때는 선이 너무 얇아져서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지며 나무를 쌓아간다는 생각으로 선도 짧아지고 가늘어졌다.” 성격도 급한 편이었지만 판화를 하면서 인내심과 참을성이 많아지는 등 점차 변하고 이러한 삶의 변화가 느껴지면서 작업이 즐겁고 행복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김 작가의 작업은 시리즈마다 주제가 다르다. 어머니나무 시리즈 이후 작업한 제주도 퐁나무 시리즈는 김 작가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제주엔 퐁나무가 많다. 고등학교까지 제주도에서 살았지만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어떤 나무든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대해 너무나도 무관심하게 살았다는 생각과 함께 오랜 세월이 흐르고 만난 퐁나무이기에 더욱 특별한 관심과 소중함을 표했다.” 퐁나무 시리즈 이후에는 느티나무 시리즈를 선보였다. 나무를 찾아 어머니 고향인 당진으로 내려가면서 그곳에서는 부모님과 함께 나무를 촬영하러 다녔다. “함께 다니는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나무에 대한 설명과 함께 나무에 얽힌 이야기들도 듣게 됐다. 그전에는 부모님과 대화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이를 계기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단순한 나무에서 나무 하나하나에 담긴 추억과 이야기는 계속 찾고 그려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김 작가의 작업실은 1층에 투명한 유리로 작업실이 훤히 보이는 가운데 문도 활짝 열려있다. 작가에게 있어 작업실은 개인적 공간으로 ‘비밀의 방’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작업실을 오픈스튜디오처럼 일반인에게 개방해 놓고 있다. “나는 이런 작업을 하는 작가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작업실을 열어 놓으니 동네 어르신들도 가끔 들어와 말도 건네신다. 사람들의 시선으로 놀지 않고 작업에 더 열중하게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오픈스튜디오는 외부와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에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작가의 손때와 흔적이 묻어 있는 공간으로 작품의 생생함이 더욱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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